“최초 삼도수군통제영은 여수입니다. ‘한산도 설’은 전부 2차, 3차 사료들입니다. 조경남의 〈난중잡록〉, 박홍미의 〈두룡포기사비〉가 이순신 사후 기록이에요. 1차 사료 어디에도 ‘통제영’ ‘통영’ 용어는 보이지 않습니다. 임금 선조의 교서(敎書)를 보면, 겸직으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한다는 내용만 있어요. 이순신이 직접 쓴 〈난중일기〉나 ‘장계’에도 없어요. 이순신 전기물 원조에 해당하는 이분의 〈행록(行錄)〉, 이항복의 〈충민사기(忠愍祠記)〉에도 없습니다.”
임원빈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의 말이다. 지난 8월 29일 여수 진남문예회관에서 열린 ‘전라좌수영 겸 최초 삼도수군통제영 수군의 활약상 재조명을 위한 학술대회’에서다.
임 교수는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 독립된 삼군수군통제영은 존재하지 않았다”면서 “여수가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의 본영이고, 전라좌수영 겸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이라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여수를 언제나 ‘본영(本營)’이나 ‘영(營)’으로, 한산도는 ‘본진(本陣)’이나 ‘진(陣)’ ‘한산진(閑山陣)’으로 구분해 썼고, 명량대첩 이후 찾은 고하도와 고금도도 ‘진(陣)’으로 썼다”고 근거를 들었다.
임 교수는 “임진왜란 땐 ‘통제영’이란 용어가 사용되지 않고, 오직 ‘본영’이라는 용어만 사용됐다”면서 “본영이 바로 통제영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여수는 1593년(선조 26)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돼 전라·경상·충청 수군을 통제한 곳으로, 이순신이 겸직 교서를 받은 계사년(1593) 10월 1일 삼도수군통제사 효력이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말이다.
학술대회는 전라남도와 여수시가 공동 주최하고 (사)여수종고회가 주관됐다. 주제 발표는 임 교수 외에도 이민웅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임진왜란 시기 전라도수군의 조직과 병력 상황’, 제장명 순천향대 교수가 ‘임진왜란 초기 주요 해전과 흥양수군의 활동’에 대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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