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하지만, 그 화려한 축제의 이면에는 정치와 무관하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싶은 시민의 권리가 위축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민주주의 핵심인 ‘일상의 자유’가 보이지 않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가까이 지내는 한 공직자와 나눈 대화가 마음에 남았다. 그는 붉은색을 좋아하지만, 빨간 넥타이나 점퍼를 입는 일이 늘 망설여진다고 했다. 단순한 취향일 뿐인데, 혹시 특정 정치 성향으로 오해받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것이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지난 겨울, 조카가 선물해 준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나섰다가 ‘정치적 의미가 있냐’는 말을 들었다.
농담처럼 건넨 얘기였지만, 그 목도리는 더 이상 따뜻한 선물이 아니었다. 이후 목도리는 옷장 깊숙이 들어갔다. 입지 않아서가 아니라, 입는 순간 따라붙을 해명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선거철이 되면 옷차림 하나에도 괜한 의미가 덧씌워질까 조심해진다. 빨간색뿐 아니라 파란색 점퍼나 목도리 역시 특정 진영의 상징으로 읽힐 수 있다는 이유로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가장 무난한 선택은 회색이나 검은색 같은 무채색이 된다. 옷장이 단조로워지는 것은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정치가 색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온 결과다.
우리는 언제쯤 색을 보며 정치가 아닌, 사람을 먼저 떠올릴 수 있을까. 우리 남도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큰 희생을 감내해 온 고장이다. 표현의 자유와 평범한 일상의 자유를 위해 거리로 나선 역사가 살아 있는 곳이다.
옷차림 하나를 두고 정치적 꼬리표를 붙여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지켜온 민주주의 정신과 어긋난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생각이 공존해도 개인의 취향과 일상이 존중받는 체제여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백의민족’이라 불러왔다. 색으로 사람을 가르지 않았던 공동체적 기억의 상징이다. 이제는 ‘색깔론’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냥 이 색이 좋아서 입었다’는 말이 아무런 해명 없이 받아들여지는 사회, 그것이 성숙한 민주사회다.
정치 경쟁은 옷의 색이 아니라 정책과 비전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치가 시민의 옷장을 넘어 사적 영역까지 간섭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올봄에는 옷장 속에 잠자던, 빨강 파랑의 원색이 다시 자유롭게 거리로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봄이 오면 우리가 옷장 속 색을 꺼내듯, 서로의 생각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 시민이 아무 걱정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고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번 선거를 통해 다시 확인해야 할 민주주의의 품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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