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1일은 ‘의병의 날’이었다.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분들을 기리며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날이다. 의병은 나라가 전쟁 등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떨쳐 일어난다.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오직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자발적으로 몸과 마음을 바친다.
단재 신채호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이분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의미로 지난 2010년 의병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됐다.
의병투쟁은 호남에서 가장 활발했다. 역사학자이면서 독립운동가였던 박은식은 ‘한국의 의병투쟁은 전라도에서 가장 활발했다’고 했다. 일제의 자료에서도 확인이 된다. 한말에 희생된 의병이 1만5000명, 이 가운데 호남의병이 절반이나 됐다.
쌍봉사 인근 깊은 산중에 위치
남도는 항일 의병의 싸움터였다. 화순에는 의병을 훈련시키고 지휘했던 장소가 있었다. 쌍산에 있는 의로운 장소, 쌍산의소(雙山義所)다. 여기에 가면 한말 의병들이 어떻게 전투를 준비하고, 활동을 했는지 희미하게나마 그려볼 수 있다.
쌍산의소는 쌍봉사 인근, 깊은 산중에 있다. 화순군 이양면 증리 계당산 자락 쌍산의 왕피나무골이다. 여기에 한말 의병들이 쌓은 성이 있고, 의병들이 함께 먹고 자며 훈련을 했던 막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의병들이 탄약과 무기를 만들던 대장간의 터도 있다. 탄약의 재료인 유황을 채취했던 유황굴의 흔적도 남아 있다. 문화재청으로부터 사적 지정을 받았다.
쌍산의소를 대표하는 의병이 양회일이다. 학포 양팽손의 후손으로 1856년 능주에서 태어났다. 증동마을의 유지 임노복과 함께 의병활동을 결의하고 의병을 모아 의병성과 막사, 무기제작소 등을 직접 준비하고 전투부대를 꾸렸다. 겨울동안 훈련을 거쳐 1907년 3월 능주를 점령하고, 화순으로 진격해 관아와 분견소를 습격하며 승승장구를 했다. 동복을 거쳐 광주를 공격하려다가 일본군의 기습을 받았다.
양회일이 임노복과 함께 의병을 결의했던 집이 증동마을에 복원돼 있다. 양회일이 1906년 12월, 그 집에 살고 있던 임노복을 찾아가서 의병활동을 처음 결의하며 모의했던 집이다. 당시 의병을 일으킨 집이고, 이후 의병지휘본부 역할을 했고, 군량미를 비축한 집으로도 알려져 있다.
쌍산의소 의병들의 위패를 모셔둔 사당 의병사도 만들어져 있다.
진주성까지 달려간 최경회와 논개
화순 동면에 임진왜란 의병장 최경회를 모신 사당 충의사도 있다. 논개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 의암영각도 같이 있다.
논개는 진주성 함락을 기념한 일본장수들의 촉석루 자축연에 기생으로 위장해 참석, 일본군 장수를 촉석루 아래 의암에서 끌어안고 함께 투신한 의인이다. 그의 남편이 화순 출신 의병장 최경회였다. 논개는 남편의 원수를 갚고, 일본군 장수도 죽인 의로운 여성이었다.
최경회는 어머니 상중에도 불구하고 경운·경장 두 형과 아들 홍기, 조카 홍재·홍우와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전라우도 의병장이 됐다. 상복차림으로 금산과 무주전투에 참가해 일본군을 무찔렀다.
이후 경상우도 순찰사의 지원 요청을 받고, ‘영남도 우리 땅’이라며 진주성으로 달려갔다. 1차 진주성 싸움에선 크게 이겼다. 이듬해 2차 진주성 싸움에서 김천일·고종후와 함께 10만 일본군에 맞서 9일 밤낮을 싸웠다. 중과부적으로 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투신해 순절했다.
충의사에 최경회를 모신 사당과 기념관이 있다. ‘영남도 우리 땅’이라는 어록비와 동상이 세워져 있다. 부인 논개의 영정을 모신 의암영각도 여기에 있다.
최경회가 의병청을 설치한 고사정도 화순읍내에 있다. 능주에 있는 삼충각도 최경회를 비롯 문홍헌·조현 등 세 충신을 기리는 정려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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