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머니! 안에 계세요. 저희 왔어요.”
김미경 씨와 이순희 씨가 해남군 북평면 이진마을에 있는 한 어르신 댁을 찾았다. 김 씨와 이 씨는 북평면주민자치위원이다. 북평면의 장기 발전 계획을 그려 나가고 있다. 매주 화요일엔 반찬꾸러미를 들고 어르신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있다.
“어서들 와.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었구먼.”
“방이 왜 이리 추워요? 춥게 지내시면 안 돼요. 큰일 나요. 병원비가 더 들어간다니까요!”
김 씨가 주름이 자글자글한 어르신의 손을 감싸며 타박(?)한다. 영락없는 딸의 잔소리다. 어르신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두 사람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 이 씨는 집안을 고비샅샅 훑는다. 이내 능숙한 솜씨로 체온과 혈압을 잰다. 이 씨는 어르신을 보살피는 일에 있어 프로다. 동네에 있는 요양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혈압이 높아요. 약 드셨어요?”
“먹었어. 머리가 많이 질었는디….”
“가세를 깜빡했어요. 다음에 잘라드릴게요. 반찬은 부족하지 않나요?”
“안 부족해. 이눔도 많아. 맛도 좋고. 봐봐 살만 포동포동 찐당께. 피부도 많이 고와졌어. 처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애.”
어르신의 농익는 입담에 모두들 자지러진다. 낭창낭창한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고샅에 울려 퍼진다. 어르신과의 수다는 그렇게 한참 계속됐다.
“내 평생 이런 호강은 처음이여. 잊지 않고 찾아와 말동무도 해주고, 청소하고 빨래도 해 준당께. 얼매나 고마운 줄 몰러. 내가 무슨 복을 타고났는지 느지막하게 딸이 생겼당께. 이 공을 다 어찌 갚을까잉.”
어르신의 입이 귀에 걸렸다.
청소·빨래·목욕 봉사까지
지난해 전국주민자치박람회 최우수상에 빛나는 해남군 북평면주민자치위원회의 사회복지 프로그램인 ‘푸드레터’ 사업 현장이다. 푸드레터는 혼자 살면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매주 화요일 반찬꾸러미를 전달하는 사업이다. 벌써 60회가 넘었다. 해남의 여러 마을에 공동체 생활의 화수분이 되고 있다.
김 씨와 이 씨는 이날 덜덜거리는 경차에 반찬꾸러미를 싣고 오후 4시까지 북평면 구석구석을 누볐다. 오산마을의 ‘삼부자네’를 시작으로 이진·남창·영전마을에 사는 어르신 여섯 가구에 반찬꾸러미를 전달했다. 이진마을 어르신 댁에서는 치매 예방을 위한 그림 그리기와 청소, 빨래도 했다.
어르신들께 전달한 반찬은 동태탕에 간장닭갈비, 멸치견과류볶음, 연근조림, 세발나물, 무생채, 장아찌였다. 여기에 남창오일장에 있는 매일수산이 기부한 전복을 듬뿍 넣어 끓인 전복미역국이 추가됐다. 반찬꾸러미 사업을 하는 예비사회적기업 ‘산들바다애’가 정성스럽게 조리한 음식이다. 산들바다애는 정기 회원들에게 보내는 반찬꾸러미를 만들 때 어르신에게 전달할 반찬도 함께 조리한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어르신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생활이 정말 취약함에도 외지에 자녀가 살고 있다는 이유로, 전답이 조금 있다는 이유로 복지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런 분들도 챙겨야 합니다.”
푸드레터 운전기사를 자청하고 나선 노명석 위원장의 말이다. 북평면주민자치위원회가 마을 문화자원을 이용한 마을기업 설립을 서두르는 이유 중 하나다.
경로당 문 하루빨리 열었으면
북평면주민자치위가 푸드레터를 시작한 건 지난 2019년 12월. 해남군의 주민주도형 ‘읍면 장기발전계획수립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스스로 마을 발전계획을 수립하던 때였다.
“주민자치 교육을 받으면서 마을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그즈음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끼니 해결이 쉽지 않다는 얘기를 접했어요. 살펴보니 반찬이 문제더라고요. 밥은 전기밥솥을 사용하면 그만인데 반찬은…. 일주일에 한 번 반찬을 만들어 드리자고 제안했죠.”
푸드레터 사업을 이끌고 있는 김미경 씨의 말이다. 북평면주민자치회가 푸드레터 사업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상자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과 위기 가정 중에서 마을 부녀회장의 추천을 받아 선정했다. 비용은 주민자치위원들과 지역의 뜻있는 이들이 십시일반 모아 마련했다. 축제 등에서 동네대표 수산물인 낙지를 팔아 수익금을 보태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푸드레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날 무렵 코로나19 국내 확진자가 발생했다. 곧이어 경로당과 마을회관이 폐쇄됐다. 마을경로당에서 한 끼를 해결하고 주민들과 어울리던 즐거움이 사라졌다. 운신의 폭도 좁아졌다. 코로나19가 어르신들의 일상을 빼앗아 버린것이다. 주민자치위는 ‘이럴 때일수록 어르신들께 더 다가가자’고 서로를 독려했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거르지 않고 푸드레터를 시행한 원동력이었다.
“코로나19로 경로당이 폐쇄되면서 어르신들이 집안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체력이 많이 약해졌어요. 우울해하시는 분도 부쩍 늘었고요. 젊은 사람도 방안에 덩그러니 있으면 견디기 힘드는 데, 하물며…. 코로나19 최대 피해자가 아닐까 합니다. 하루빨리 경로당 문을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반찬꾸러미를 전달하고 한참이나 서성이던 이순희 원장의 안타까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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