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심코 ‘어린 시절이 참 좋았지’라거나 ‘고향풍경이 그립다’는 말을 종종 한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나 할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혹시 너무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으로 인해 생긴 옛것에 대한 그리움은 아닐까. 점점 사라져가는 유년의 원풍경(原風景)에 대한 동경이 마치 향수병처럼 마음 한쪽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은 근대화·산업화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른 성장을 이룬 것에 대해 안팎으로 찬사를 받아왔다. 마땅히 높은 교육열과 근면으로 이루어낸 성과는 칭찬받아야 하고 또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고, 소홀했던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는 있다.
세계화 경쟁은 갈수록 가속화되고
‘좀 더 빠르게, 좀 더 높게, 좀 더 강하게’라는 근대올림픽의 슬로건은 비단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어쩌면 모든 사람의 삶의 신조(motto)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올림픽이 추구하는 기본정신과 무관하게 ‘경쟁’이라는 배타적인 단어가 자리잡도록 하는 데 적잖이 기여한 게 사실이다. 올림픽 메달을 따는 순간 자신의 꿈을 실현한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 위상이나 경제력이 일순 높아지게 된다. 이런 풍조는 교육, 종교, 산업현장 등 분야를 불문하고 만연되어 있다.
우리는 한국전쟁 후 폐허와 절대적인 빈곤 등 열악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피와 땀을 흘렸으며, 그 결과 유례없는 성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결과에 도취된 나머지 이런저런 과오를 눈감아주거나 간과함으로써 또 다른 문제와 마주하게 됐다. 이는 한국에만 국한하는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나 개인들이 ‘거대주의(gigantism)’라는 우상 숭배에 빠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그런 와중에 환경은 날로 악화되고 사회공동체 역시 피폐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세계화로 인해 경쟁은 갈수록 가속화하고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제 더 이상 한 나라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전 세계가 대혼란을 겪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 사태만 봐도 그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인류가 지향해온 속도가 아이러니하게도 COVID-19 사태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예전 같으면 한 국가의 국지적인 문제에 그쳤을 지도 모를 일이 더 이상 한 지역이나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그것은 비단 질병이나 바이러스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가 그 영향 아래에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한때는 그 속도가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경쟁력이라고 여겼고, 여전히 그것이 유효하다고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남보다 앞서는 게 우리의 목적인가
작금의 사회는 머리 회전이나 동작이 굼뜬 사람보다는 민첩하고 빠른 사람들을 선호한다. 반대로 느린 사람은 능력이 없다거나 고집이 세다고 여기기도 하고 심지어 게을러터진 사람으로 낙인찍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새로운 변화로 이끌어가는 것을 좋은 지도자의 덕목으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의 저자 피에르 쌍소(Pierre Sansot)의 말에 잠시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건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지혜가 있다. 그것은 갑자기 달려드는 시간에게 허를 찔리지 않고, 허둥지둥 시간에게 쫓겨나지도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로 알 수 있는 지혜이다. 우리는 그 능력을 ‘느림’이라고 부른다.”
하용조 목사의 속도와 방향에 대한 이야기도 경청할만 하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늦어서 실패하는 사람도 있고 너무 빨라서 일을 망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속도에는 욕심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방향이 있는 삶, 목적이 이끄는 삶, 절제가 있는 삶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빠르게 대처할 일이 있고 느리게 생각하며 해야 할 일이 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은 속도보다 목적과 방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목적이 남보다 앞서가는 것인가? 아니면 다함께 손잡고 가는 것인가?
성서에는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전도서1:9)’라고 했다. 불현듯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 떠오른다. 한 번쯤 멈춰 서서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송태갑 / 광주전남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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