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세계에 널리 알린 계기로 1988년 서울올림픽, 일본과 공동 개최한 2002년 월드컵을 꼽을 수 있다. 이후 한국의 위상을 더욱 높인 것은 단연 방탄소년단(BTS)을 필두로 한 케이팝(K-Pop)과 여전히 식지 않은 한국드라마다.
아카데미(오스카) 영화제에서 4관왕을 거머쥐며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등 한국영화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외에도 이스포츠(E-sports), LPGA 골프, 한식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이것을 통틀어 한류(韓流)라고 부른다.
한류는 대중문화 등 한국과 관련된 것이 외국에서 인기를 누리는 현상을 뜻한다. ‘한류’라는 단어는 1990년대에 대한민국 문화의 영향력이 급성장하면서 등장한 신조어다. 한국을 뜻하는 ‘한(韓)’에 어떤 특성이나 독특한 경향을 뜻하는 접미사 ‘~류(流)’를 붙인 것이다. 이 표현방식은 일본, 중국 등에서 시작되었는데, 특정국가의 문화가 해외에서 인기를 얻는 현상을 설명할 때 사용한다.
또 하나 유사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풍(風)’이다. 일본 느낌이 나는 경우 ‘화풍(和風, 와후)’, 중국 느낌이 물씬 풍기는 스타일은 ‘화풍(華風, 화펑)’으로 부른다. 문화는 시대에 따라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데 최근 한국문화가 세계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세계 지배할 변수는 ‘문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아무래도 문화적 내공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게 설득력이 있다. 한 나라의 문화가 꽃피고 열매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화를 생산해내는 토양, 요컨대 풍토(風土)와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으로 인해 문화적 토양을 굳건히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성장, 교육수준 향상 등과 더불어 그동안 내재돼 있던 문화적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일찍이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이란 연설문에서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 대해 설파한 적이 있다.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중략)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달랐다. 2000년도에 역대 정권 최초로 문화예산 1%를 달성하기도 했다. 일본과 상호 문화개방을 통해서 K-Pop 등 한류의 해외진출 교두보를 확보한 것도 과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문화를 통한 세계와의 교류에 힘을 보태면서 문화대통령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와 관련해 가장 인상 깊은 어록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이다.
문화의 중요성은 제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새뮤엘 헌팅턴은 <문화가 중요하다>는 저서에서 “문화는 한 사회 내에서 우세하게 발현하는 가치, 태도, 신념, 지향점 그리고 전제 조건 등이다”고 했다. 그는 이 책에서 ‘앞으로 세계를 지배할 핵심적인 변수는 자본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문화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회 혹은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고 그것을 현대적으로 수용하며 개선하는 것이 진보와 발전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색의 여유와 멋, 후대에 전수돼야
그렇다면 우리의 문화적 역량은 그 뿌리를 어디에 두고, 또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흔히 한국의 한(恨)과 남도의 한(恨)은 닮았다고 한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많은 곳이 남도(南道)라고도 얘기한다. 오래 전 남도사람들은 자연을 관조하고 사람과 교유하면서 한과 감흥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여유와 멋이 있었다. 산업사회가 진행되면서 그것이 직접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그저 사치로 치부해 버렸다.
가장 기품 있는 문화적 유산이 방치되고 홀대받은 셈이다. 그러는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남도문화는 국가적 행사의 소재로만 잠시 등장하며 한낱 변방의 전통문화로 전락하고 말았다. 88올림픽 개막 식전행사의 메인 이벤트로 장식됐던 고싸움, 소시민의 한(恨)을 풀어내는 판소리, 한국문학의 원류라 할 수 있는 백광홍, 송순, 정철 등의 가사문학, 그리고 그것들의 창조적 산실인 소쇄원, 송강정, 면앙정 등의 별서정원문화, 그 풍경을 그림으로 담아냈던 소치 허련 등의 남도수묵화, 도(道)와 삶을 넘나드는 다산 정약용, 초의선사에 의한 차(茶)문화 등이 있다.
역경의 역사 속에서도 빛났던 예술혼의 결실로 강강수월래, 임을 위한 행진곡, 그리고 손님을 대접하는 마음이 담긴 풍성한 남도음식 등 셀 수 없이 많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순응과 사람에 대한 존중,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며 살아온 남도사람들의 정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어떤 여건에서도 진정한 삶의 가치에 대해 사색할 줄 알았던 여유와 멋스러움이야말로 우리가 배워야 할 삶의 자세이고 미래세대에 전수해야 할 소중한 전통문화가 아닐까. 한류는 남도의 풍류정신에 문화적 뿌리를 두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미처 한류에 담지 못한 기품 있는 남도풍류의 진수(眞髓)를 적극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송태갑 / 광주전남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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