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光州)가 행정구역상 전남(全南)과 별개일 때도 무심코 ‘전남(전라도) 광주’라고들 했다. 오류로 느껴지기도 했던 그 지명이 2026년 7월부터 다시 바른 제 이름이 됐다.
‘통합’과 ‘특별’이란 장식어(裝飾語)도 달았다. 이 두 단어는 이 지역이 한국현대사에서 가지는, 일면 쓰라린 뜻을 보듬었다. 쓰라림의 그 농도가 옅어질 즈음, 그 이산(離散)은 문득 마침의 종을 쳤다. 너끈히 넘어선 것이다. 광주가 전라도 아니고, 그럼 뭐요?
‘디바이드&룰(devide&rule)’의 의도였을까? 쪼개서 힘을 약하게 하거나, 쪼개진 부분들이 서로 반목하게 하는, 고대사로부터 활용되어온 통치의 꾀가 남도(南道)에서도 성공했을까.
남도라 부르는 전라남도 이름의 남녘 南, 동서남북(東西南北)의 한 방위(方位) 이름이다. 그러나 南은 우리 모두를 설레게 하는 또 하나의 거대한 뜻을 지닌다.
중요한 한자교재 천자문(千字文)의 여러 판본(板本)들이 南을 ‘앞’이라고 풀었다. 옛(당시) 표기로는 ‘앏’이다. 南이 전면(前面 front)이라니, 남녁 南이면서 앞(앏) 南인 것이다. 광주천자문(1575) 석봉천자문(1601)이 그렇고, 비슷한 시기의 한자교재 훈몽자회(訓蒙字會)나 신증유합(新增類合) 등 권위 있는 책들의 내용이다. 한자가 우리 생활에서 차츰 멀어지며 상당수가 잊고 살지만, 이 진취(進就)적 상징성을 어찌 외면하랴.
둥근 지구를 걸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면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날 것(윤석중 동요 ‘앞으로’의 취지)이란 뜻은 참 크다. 호연지기(浩然之氣)다. 제주 바다와 함께 넘실 요동치는 태평양을 건널 기세다. 중국에는 없는, 이 ‘앏(앞)’이란 우리 겨레의 훈(訓)은 어떤 내력을 지닐까.
‘전진(前進) 앞으로’라는 남도의 뜻이다. 땅끝이 아니다. 대양(大洋)을 향한, 우주로 도약하는 뜀틀이다. 돌아보지 마라, 폰 말고, 저 바다와 창공(蒼空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볼 일이다. 광주는 이 통합으로 수십 년 만에 ‘앞으로’의, 그 무구(無垢)의 순진(純眞)을 회복한다.
전남은? 보배섬 진도엔 ‘삼별초 왕국’의 증좌(證左) 용장산성이 솟대처럼 솟았다. 또는 장흥까지 뻗어 내려온 동학(東學)의 맑고도 거센 기운을 아는가.
나주의 남파고택은 여태 대한의 학생독립운동 역사의 은은한 증거다. ‘우리는 피 끓은 학생이다. 오직 바른 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 (광주일고 교정의 기념탑)
마침내 5·18민주항쟁의 오직 의로운 마음은, 그 횃불은, 빛고을의 진산(鎭山) 무등산에 떴다. 박달임금 단군(檀君) 할아버지 이름을 무당산이라는 또 하나의 뜻으로 품은 저 산 위 찬란한 빛을 우러른다. 영원히 지지 않는다. 무등산은 알고 있다.
이제 전남은, 광주비엔날레의 취지처럼 그 불빛을 인류 모두에 쏘아 보내는 명분(名分)과 당위(當爲)를 회복한다. 우리는, 내일을 향해 쏴라. 미래처럼, 여태도 광주는 전남이었다.
에이아이(AI)가, 인공지능의 인류 대혁신이 이미 문 앞에 서 있다. 이 통합이 없으면 우리는 이 시대에서도 판을 못 바꾸는 처지에 갇히게 되었을지 모른다.
강상헌 / 언론인·동이겨레원 원장
토막새김
전남광주의 ‘광주(光州)’와 경기도 ‘광주(廣州)’는 어떻게 다를까? 하나는 짧게, 다른 하나는 길게 ‘광’을 발음한다. 한자가 달라서 그렇다.
전남광주의 光은 ‘빛 광’이다. 문자(한자)학 원리로 읽으면 光이 짦은소리(단음)인 [광주]다.
경기도 광주의 ‘넓을 廣’은 탁 트인 지형의 반영일 터. 긴소리(장음)여서 [광:주]다.
어떤 한자사전엔 평상거입(平上去入)의 4성(聲) 표시가 있다. 이에 따라 평성(平聲)과 입성(入聲)은 대개 짧게, 상성(上聲)과 거성(去聲)은 길게 읽는다. 이는 현대중국어의 4성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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