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음식 전통이 어떤 바탕에서 나왔는지 설명하는 것은 중요하다. 타 지역과의 차별성을 설명하는 자료이기도 할 터다. 그 음식의 개념이나 맛에 관한 평가나 논평은 물론이고, 그 음식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 땅과 ‘그 땅의 과거와 현재의 사람들’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전라도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터다. ‘음식’으로 ‘사람’과 ‘땅’을 보여준다. ‘전라도의 순정(純情)’을 ‘음식’을 기점(起點)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알면 의당 좋아하게 된다. 혐오를 직업으로 삼는 이들은 빼기로 하자.
전략(戰略)의 차원이다. 여러 차원의 전투나 작전 같은 전술(戰術)은 전략의 큰 그림 아래에서 그려내야 한다. 판을 바꾸어 생각 달리 하니 새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판을 키워 이 생각을 세계 전역으로 비추면, BTS이고 한류(韓流)다. 그리 당하고도 그 수난 속에서도 (겨레는) 이렇게 당당하게 서 있으니 도대체 ‘우리’는 (인류에게) 누구인가?
우리의 종가가 실은 한국의 큰 줄기로구나. 역병(疫病) 코로나와 기후재난, 전쟁의 강습(强襲)에 무너지는 와중(渦中)의 인류, 특히 서구(西歐)에 물심(物心) 심신(心身) 성속(聖俗) 여러 측면에 훈수나 가르침을 주어야 하는, ‘어른’으로서의 종가의 의미를 다시 본다.
우리 종가는 이제 겸양 떨치고 희생의 깃발로 세상에 나서야 하리라. 그 필연(必然)의 증거가 오늘날 새롭게 떠오르는 지구촌 문화의 주제인 ‘음식’일 것이다. ‘남도음식’의 혼(魂)이야 날로 희석(稀釋)되고 있지만, 종가의 음식문화가 이를 안간힘으로나마 일부 보존하고 있으니 민관(民官)의 그간의 공덕(功德)에 박수 보낼 만하다. 이를 보듬어 관리하는 전라남도 문화당국의 체계적 종가문화 존숭(尊崇)을 평가하는 까닭이다.
이런 뜻에서 남도의 한 시기 오방 최흥종(1880~1966)과 남도 사람들의 모습을 새롭게 바라본다. 오방(五放) 선생은 광주 양림동과 여수․나주 등을 터전으로 당시에는 천형(天刑)이라고 모두가 외면한 나병(한센씨병) 환자를 돌봤다. 그 결과로 소록도병원도 태동시켰다.
‘팔도 문둥이 다 전라도로 모태냐?!’는 비난에도 오방은 당당했다. 어깨와 주먹, 약간의 재산을 믿기도 했지만, ‘전라도(사람)의 마음’을 신뢰한 데서 나온 인류적 사랑의 실천이었다.
기억한다. 어릴 적, 남루한 서너 명 나환자(한센씨병 환자) 가는 길을 철없는 아이들이 (두려움에) 소리를 지르거나 놀리기도 했지만, “그러지들 마라.”며 어른들은 없는 살림에도 김치와 보리밥을 마을 바깥 길가에 두었다.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ㄹ닐니리...> 슬프고 아름다운 한하운의 ‘필 닐니리...’하는 그 시(詩) ‘보리피리’는 어쩌면 그 보리밥의 마음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숨 막히는 더위 속 붉은 황토길,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설운 소록도 가는 길에는 ‘전라도의 마음’이 있었다.
대부분 놓치고 있는 주제지만, 전라도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다. 남도 인심이라고들 다소곳이 자랑스러워하는 전라도의 마음이, 다른 지역에 비해 과연 다른가? 다르다면 그것은 어떻게 형성됐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실증적 답변이다. ‘논리적’ 연구 결과 아니라고, 누가 부정하랴.
그 ‘논리’란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아시아는 미개하고, 흑인은 노예가 당연하다 믿던 (지금도 상당수가 믿는) 식민제국주의 서구 철학과 학문 구조로 ‘전라도의 마음’을 가늠하지 말 것. 우리 스스로도 고쳐 생각할 대목이다.
남도밥상의 게미는 산과 들, 바다의 풍요와 마음 이쁜 사람들의 당연한 기적이다. 음식은 마음이 만든다. 오늘도 오방의 뜻은 당연히 작동한다. 우리 마음을 보자. 진짜 용기(勇氣)다.
강상헌 / 미래서원 원장·언론인
토막새김
무등산 우러러 보이는 광주천변 버드나무 숲(양림 楊林) 그늘을, 오방은 나병 환자들을 위한 생존의 터전으로 삼았더라. 지금도 부근 큰길가에는 한센씨병 전문병원이 있다. 양림동 언덕에는 ‘오방최흥종기념관’이 등대처럼, 서 있다.
오방 선생은 당시 이 지역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마치 등대 같은 존재였다. 해방 후 김구 선생이 찾아와 건국(建國)의 대업에 나서달라고 청했을 때도 선생은 사절(謝絶)했다. 목사였던 그는 당시 기독교의 회심(回心)을 요구하며 단식에 나서기도 했다. 지역사이면서 한국 의료사(醫療史)에도 빛나는 인걸(人傑)과 남도인심의 만남, 장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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