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 고백과도 같은 필자의 낡은 얘기나 흡사 ‘남도인물사’ 같은 특출한 세 분 선생의 음식 얘기를 앞에서 꺼낸 까닭은, 선배 세대가 지닌 우리 음식문화의 은근한 자긍(自矜)을 펼쳐 보이고자 함이다.
남도에서 남도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남도인(人) 여러분들에게는 하도 당연한 얘기여서, 또 불출(不出)같은 우리 자랑이 여러워서, 문장이나 벼슬, 의병(義兵) 같은 근사한 얘기 아닌 먹을 것 얘기라 유치해서 등의 이유로 앞의 얘기가 못마땅하실 분도 있으리라.
본론을 꺼내자. 마시고(飮) 먹는(食) 음식과 이에 따른 행실이나 생각은 사람의 활동(흔히 文化라는 말로 표현되는) 중 원초적 본능이 가장 활달하게 기능하는 마당(場 장)이다. 인간의 본디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물(事物·일과 물질)이 음식인 것이다.
‘바디’는 판소리의 잘 정리된 줄거리다. 또 베틀이나 가마니 짜는 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우연히도, 서양말로도 그 발음이 신체(바디 body)의 뜻이다. 종가(宗家)는 큰집의 큰집, 제사(祭祀) 지내는 집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큰 음식 만드는 집이다.
이 ‘경건한 마음’이 낙낙한 인심과 함께 ‘푸근한 땅, 전라도’를 이룬 중요한 요소일 것으로, 필자는 조심스럽게 짐작해왔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종가의 음식은 남도(문화)의 살아있는 증거다. 기적과도 같은 우리 문화의 실존(實存)인 것이다. 문화의 전승(傳承) 말고도, 세속(世俗)에서 인기 있는 말로 경제적 (부가)가치의 담보(擔保)이고 곳간이다. 이는 우리가 잘 아는, 의심의 여지없는 진리다.
세상은 변했고 우리도 적극 글로벌 시대에 처하고 있으매 종가를 포함한 남도의 고매한 선배님 선비님들도 이런 생각에 가슴 열어 주심을 본다. 그리하여 차세대의 주역인 우리 청년들의 웅비(雄飛)를 힘껏 응원하시는 충심(衷心)에 감사한다.
물론 남도 종가문화의 그윽한 문향(文香)과 얽히고설킨 애국 애향(愛鄕)의 의미심장한 전통이 자칫 ‘음식타령’으로 훼손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우(杞憂)도 없지 않겠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음식의 제목과 뜻은 ‘사람을 섬기는 하늘의 음식’의 이미지로 더 큰 보람을 세울 수 있을 것이리라. 결국은 그 ‘기우’도 일맥상통의 뜻일 터다. 다만, 이제 시대(時代)와 시절(時節)의 운수(運數)를 꼼꼼히 붙들고 만들어야 한다.
남도의 제일 큰 이미지는 무엇일까? 예향(藝鄕 예술)이고 의향(義鄕 의리)이지만 미향(味鄕 맛)의 이름이 단연 크다. 삼성(SAMSUNG) 브랜드가 국제적으로도 뛰어난 이름값 떨친다고 하나, ‘게미’로 상징되는 남도밥상이나 전라도음식의 이름 크기를 어찌 넘으랴?
사족(蛇足)을 더하자면, ‘전라도음식이 좋다.’에 반대표는 없다. (거의) 전원 일치 의견이다. 심지어 남도에 대해 (까닭 모를 또는 근거 없는) 거부감을 가진 상당수 사람들조차 수긍(首肯)한다. “저 사람들, 그래도 음식 하나는 제대로 해먹지!”라는 얘기나 생각 말이다.
실로 기적 같은 평판(評判)이고 놀라운 브랜드다. ‘세계 3대 음식’이라는 프랑스도 터키도 중국도 음식으로 이렇게 전원일치 공감의 ‘판정승’을 거두지는 못한다. 해외 지성계에도 이런 생각(한국의 남도와 남도음식)과 공감은 상당히 퍼져있다. ‘인류의 재산’이기도 한 것이다.
다만, 이를 제 구실 하도록 다듬어야 하는 숙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하도 당연하기에 새삼스레 ‘세계의 맛’이라는 이름으로 깃발 세울 생각을 누구도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젊음들은, 그 깃발 휘둘러 세계의 노스탤지어(향수)를 몰아오라. 인류를 향한 큰 공헌(貢獻)이다.
강상헌 / 미래서원 원장·언론인
토막새김
우리(동양)보다 좀 솔직한 듯 보이는 서양의 ‘음식인문학’(가칭)에서, “당신이 먹는 것을 (모두) 보여주오, 당신이 어떤 (성품의) 사람인지 말해 주리다.”라는 얘기는 상식이다. 이제 AI(인공지능)까지 가세하면 이 상식은 지구촌 삶의 더 큰 원리가 되지 않을지.
‘음식은 곧 그 사람’이라는 중요한 뜻이다. 우리 철학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니 음식은 사람이고 하늘일 터. ‘밥으로 하늘을 삼는 것(식위천 食爲天)’이 (어진) 정치라는 우리네 전통의 생각도 맥(脈)이 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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