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팍들이 다 고인돌이었을까? 영암 해남 순천 광주 두루 옮아 살았던 어린 시절의 엷은 기억들을 떠올린다. 밭 한가운데, 돌담 아래, 둠벙 위 너른 터, 오솔길 가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던 널찍하고 편편한 돌들의 기억이다. 반석(磐石) 같았다. 올라 밟고 놀았다.
크면서 이 고장이 고인돌의 텃밭이라고 들었다. 쌔고도 쌨었다. 그땐 어디나 다 그런 줄 알았다. 근대화 바람 속에 그 많던 초가지붕처럼 대부분은 비명도 없이 스러져 갔다.
고인돌이 ‘생명에 대한 인간의 첫 생각의 증거’라는 인식 들어서면서도 ‘조국근대화의 새벽종’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슬레이트로 지붕 덮고 경지정리로 조붓한 논길 밀어버리던 거센 웃풍에 우리들의 정신줄도 혼불 떠나듯 씻겨 나가지는 않았을지.
돌은 목재나 쇠보다 오래 간다. 쪼개져 주춧돌 되고 정원석 되기도 했을 터이지만 뒷켠 산비탈과 능선 아래 고인돌들은 살아남았다. 그 숫자가 세계에서 제일 많다고 학계는 증언한다.
서양 학문이 돌멘(dolmen)이라고 가르쳐준 그 도팍들은 그렇게 ‘관광자원’이 됐다. 고인돌공원을 꾸렸다. ‘어서 오시라.’ 깃발도 올렸다. 그런데 왜 저 도팍들은 저런 후한 대접을 받지?
모르면, 또 그 뜻에 우리가 설레지 않으면, 저 공원은 하릴없는 ‘허영의 시장’이다. ‘우리 이런 것도 있어’하는 자기만족밖에는 건질 게 없다.
바탕이 부실하니 환상열석(環狀列石) 스톤헨지(영국)나 알타미라 동굴(스페인)의 들소 그림처럼 지구촌의 경이(驚異)의 눈길을 붙잡지 못하는 것 아닌가.
생명(현상)은 삶과 죽음 양면의 동전이다. 삶이 죽음을 처음 발견하고 그 이채로움에 경탄(驚歎)하는 방법, 첫 의례(儀禮)이면서 생명사상의 첫발자국이려니. 경이로움의 공감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어제까지 체온 나누던 그 사람이 죽기도 하는구나, 그런 감수성(感受性) 말이다.
여러 사람의 슬픔과 추도(追悼)가 모이면 수십 톤 무게의 고인돌이 됐다. 4500명도 넘게 모여 울력하는, 첫 권력(權力)의 생성이기도 했다. 동굴과 바위의 암각화(岩刻畵)와는 다른, 문명 전개의 진전된 증거였다. 옹관(甕棺)이 죽은 자의 집이 된 마한 땅의 바탕이려니.
어디건 고인돌밭은 배산임수(背山臨水)다. 뒤로 산 둘러있고, 앞은 실팍한 개천이다. 변한 지형(地形)도 있으나 원래 땅 형세 따져보면 어김없다. 풍수학(風水學)도 없이, 사람 살기 가장 좋은, 물산(物産) 풍부한 곳에 고인돌을 세웠던 것이다. 가보면 안다.
이 땅의 우리 조상들 얘기다. 거기서 우리의 본디를 본다. 화순 고창 강화도의 고인돌 군락(群落)은 이 땅 문명 새벽의 사람들이 물결치는 모습이다. 마음으로 보아야 할 인류사의 감동이다. 그때 세상에서 제일 번화했던, 우리 사는 곳의 모습이다.
풍부한 물산에서 낙낙한 부유(富裕)와 인심(人心)이 자랐고, 음식은 그 마음에서 생겼다. 우두머리 추장과 함께 대자연을 섬겼다. 경건한 일상은 평화를 빚었다. 죽은 조상을 예배(禮拜)한 증거가 무덤 고인돌이다. 세계에서 제일 많은 고인돌밭의 뜻은. 겨레 성품의 증거다.
강상헌 / 미래서원 원장·언론인
토막새김
이 땅의 고인돌을 탁월한 인류학자 정수일 선생은 먼저 경탄했다. 세상을 오래 두루 살핀 큰 학문의 그 시선(視線)은 우리에게, 인류에게도 기적이다. 인용한다.
-고인돌은 한반도에 두루 무리 지어 밀도가 높고, 형태나 부장품도 다양하다. 세계에 5만5000여 기의 각종 거석유물이 있는데, 그 중 고인돌은 그리 많지 않다. 거석유물 많은 아일랜드에도 고인돌은 기껏 1500기다. 이 땅엔 4만여 기(북한의 1만5000여기 포함)가 집중됐다.
그 중 전남북만 2만여 기이니,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고인돌 밀집지역이다. 그래서 유네스코는 2000년 화순 고창 강화 고인돌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고인돌이 대표적 거석기념물임을 감안할 때, 우리는 큰 문화적 긍지를 갖게 된다. (한겨레, 2004년 6월)
지금도 고인돌이 발견되고 있다. 진행 중인 것이다. 남도는 ‘고인돌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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