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는 1780년(정조 4년) ‘진보적인’ 생각 말고는 쥐뿔도 없는 조선의 선비가 어쩌다 청나라 황제 생일파티 축하사절의 한 사람으로 다녀온 ‘기록’이다. 당시 저 대륙(을 차지한 淸)은, 우리에게, 천하(天下)였다.
이 글 퍼진 이후 이 땅의 ‘지성인 사회’가 술렁거렸다. 지금까지도 번역본 등 여러 책이 나왔다. 대개는 이 글을 장님 코끼리 만지듯 찬탄 늘어놓다가 슬그머니 고개 돌리는 모양새다.
역부족(力不足)을 느꼈거나 부끄러웠기 때문이리라. ‘문학성 엄지 척’ ‘기행산문 개가’ 따위 논평들, 대개 가짜다.
아는 체는 해야 축에 낄 텐데 이해 못 할 얘기 범벅에, ‘호질(虎叱)’ ‘허생전(許生傳)’처럼 재미로 끼워놓은 이야기는 ‘상것들’의 탈춤처럼 행세하는 양반들 조지는 속셈이 죽창(竹槍)처럼 숨어있지 않은가.
책 읽는 자들, 내색하긴 어려웠어도 속으로 얼마나 신이 났을까. 임금도 ‘문체반정(文體反正)하라’고, 순정한 글 쓰라며 꾸중하고 나섰다. 그러나 글은, 생각은 이래야 한다.
세상 뒤집을 야망 가진 글이 어찌 잔잔하기만 하랴. 젊은 지성들마저 ‘어른들’에게 순종하고 직장 달라며 제 밥줄 호소(구걸 )하는 상황이라면, 좋은 세상 아니다.
겨레 정기 희미해질 무렵에는 으레 연암 같은 ‘또라이’가 나왔다. 세상이 정한 ‘그 규격’에 맞춰(갇혀) 살 수 없는 ‘인종(人種)’을 불러본 이름이다. 또라이는, 또 나와야 한다.
사진작가 박하선은 ‘사진가의 열하일기’에서 연암보다 더 열하일기의 현장을 톺았다. ‘발로 쓴 열하일기’였다. 연암의 240년 전(前) 눈길을 문득문득 느끼게 한다.
책 팔려고, 대중에 영합하는 의도는 없다. ‘그런 또라이’를 키워내고 싶었을까? ‘바보’ 소리 듣더라도 선배는 이래야 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고대 우리 역사에서 찾은 ‘선배’의 모습을 본다. 재미없는 흑백사진이 마음을 흔든다. 이제 후배들이 또라이 되어 그 손 맞잡으라.
전에 요동지역의 백암산성 달밤을 찍은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있다. 고구려의 혼, 우리 얼이 서렸더라고 했다. 독수리에게 사람의 주검을 먹게 하는 티베트의 천장(天葬)을 처음으로 찍어 세계의 ‘문명’에 독한 가르침을 주었다. 인간의 뜻은 그 얼에 있다. 문명은 단지 그릇이다.
연암이 요양 근처 석문령에서 뻥 뚫린 시야, 탁 트인 경계를 음유(吟遊)한, ‘호곡장(好哭場)이니 가이곡의(可以哭矣)로다’라고 한 대목을 되풀이 읽은 기억이 났다. 울기에 좋은 곳이니 한 판 크게 울어 보리라 한 마음이었다. 엄혹한 박정희 독재 치하였다.
상상을 넘어 현실의 경치로 호연(浩然)하고도 호한(豪悍)한 경지를 직접 본 그 큰 한숨을 연암과 공감했던 것이다. 박하선도 거기서 제대로 울었던지, 그 사진 절절하다. 더 스러지기 전에 열하일기의 유적을 사진과 이야기로 남겼다. 그 험했을 노고, 고맙다.
연암 박지원도, 사진작가 박하선도 호곡장에 서서 ‘쩨쩨하면 진다’는 마음 후세에 전했으리라. 그 살벌한 들판, 갈대숲이 부르는 명상으로 아시아의 혼백(魂魄)을 부활시킬 일이다. 새 시대, 개벽(開闢)을 부르는 징조는 오래 전에 이 땅에 있었더니라.
연암을, 열하일기를 존경하거나 미화하지 말자. 그 의미는 정직하고 솔직한 데 있다. 제대로 보고 제대로 적었다는 점이 위대한 것이다. 그 ‘제대로’를 방해하는 것은 여럿이다. 우리의 무지(無知)도 그 중 하나다. ‘고전’을 제대로 읽는 방법일 터다.
강상헌 / 미래서원 원장·언론인
토막새김
‘열하일기’ 작가는 비분강개가 아닌 비유(比喩)로, 때로 유머로 제 모습 숨김없이 드러내 공감을 부른다. 연암이 뒤집고 싶었던 세상의 모습을 여러 (실제와 허구의) 등장인물을 통해 드러내는 기술도 뛰어나다. 신(神)의 경지를 느끼게도 한다.
망한 명(明)나라를 마음으로 섬기며 명을 부수고 세계적인 강국이 된 청(淸)나라를 멸시하는, 그러면서도 청에 ‘충성’을 바치러 가는 상황의 묘사는 절묘하다. 그 맥락(脈絡 콘텍스트)은 지정학적으로 외세(外勢)와 관련 깊은 한국의 교과서 아닌가. 큰 책은, 크게 읽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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