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들고 총을 멘 ‘윤상원’이 무등산을 굽어보는 광주 한복판 메이홀 건물의 벽화(이상호 作)로 시민과 만났다. ‘5·18 광주’의 새 상징이 되겠다. 문화운동가 임의진 목사, 주홍 화가 등의 뜻의 결실이다. 고(故) 윤상원 열사는, 모두가(역사가) 인정하는, 5·18(당시)의 대변인이다.
큰 의미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만은 내 글에 오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여럽지만, 감정선(感情線)의 절제가 ‘앞서서 나가니/산 자여 따르라.’ 대목을 여태 넘어서지 못하는 까닭이다. 못 버릴, 못생긴 트라우마일 터.
빛고을의 새 ‘체 게바라 이미지’ 윤상원 벽화가 광주의 의미를 온 인류에 빛으로 쏘기 시작했다. 마침 (거의 공식적인) ‘5·18 역사해설사’로 활동해온 이돈삼 작가가 오래 만들어온 글과 사진, 그의 마음을 담은 책을 냈다.
이 책 ‘5·18 사적지 따라가는 오월길 여행-오월 소년의 기억을 걷다’(살림터 刊)는 이를테면 현(現) 대변인의 작품집이다. 윤상원 열사 등의 영령(英靈)의 광주에, 트라우마를 넘어 오래 묵은 빚을 갚을 때가 온 것이라 느꼈다. 기꺼이 5월 주제를 쓰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노벨상 한강 작가의 장탄식(長歎息) ‘5월 소년이 온다’를 품은 많은 국내외 젊음들에게 소년이 왜 어떻게 왔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한강과 저 젊음들을 이어주는 것이다.
‘소년’의 뜻을 짐작하게 하려는 의도겠다. 그에게 이 생각이 옳으냐 물었다. 싱긋 웃었다.
역사의 현장에서 의사(義士)들의 삶과 죽음을 되풀이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아플까? 기억의 그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도 없는 마음 약한 필자 같은 이들에게 그는 얼마나 고맙고 귀한가.
이 글은 신문에 연재되며 많은 독자를 얻었다. 그는 몇 해 전, 충무공 이순신 조선수군 재건 길을 답사한 내용을 담은 ‘남도 명랑의 기억을 걷다’라는 책을 냈다. 둘 다 ‘그랬다더라.’가 아닌, 발로 밟아 꼼꼼히 챙긴 진심의 더께다. 때로 함께 눈물지어야 하는 이유다.
소설 ‘타오르는 강’의 작가 문순태 선생이 예의상의 ‘주례사’가 아닌, 마음을 적은 글을 추천사로 썼다. 이 땅의 어른 중 한 분인 선생은 여러 슬픔과 분노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이 책의 뜻과 소용에 대한 기대였겠다.
“광주를 비롯한 전라도 지역 사람들이 목숨 바쳐가며 독재 군부세력과 맞선 역사적인 운동에 대해, 그들은 단순히 한풀이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나고 슬펐다.”
“그것은 아직도 외지 사람들이 5·18의 고통과 슬픔과 분노의 원인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문 선생의 이 물음은 우리들 뼈 속의 트라우마를 보듬어내는 치유의 정공법(正攻法)을 주문한다. 용기로 그 아픔을 돌파하고 이웃과 후세(後世) 사람들에게 ‘5월 광주’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방법이 이 책 안에 있다는 일갈(一喝)의 말씀이다.
이돈삼의 눈이 ‘객관(客觀)의 풍경’을 애써 유지하고 있음을 본다. ‘나처럼 보라’가 아니고, ‘무엇이 보이는가’를 독자가 느끼게 하려는 미덕(美德)이다.
다시 5월, 스러져간 英靈들을 그리워할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 절절히 기원한다.
강상헌 / 슬기나무 언어원장·언론인
토막새김
목차의 제목들 추려보면, 이 책의 마음인 5·18 성지(聖地)의 뜻 헤아릴 재료가 되리라.
△볕이 들고 꽃이 핀 밝은 쪽으로-소년 동호 걸었던 길, 한강 작가 걸었던 길 △‘내란의 밤’ 지나 항쟁의 거리로 △계엄군 총칼 앞에서 ‘인간’을 외치다 △가자! 광주로 우리 형제를 구하러 △일상에서 기억하면 계승된다 △그날의 현장 기억의 공간
잊지 않아야 잃지 않는다는 말, 늘 염두(念頭)에 올려두자는 뜻이 어느 대목에나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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