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천벌이 두렵지 않다면 이런 농담인들 못하랴? 세상 살며 재미난 구경 중에 특별한 셋이 물(난리)구경, 불구경, 쌈(싸움)구경이렷다.
큰 폭포수나 화산의 장려(壯麗)함은 큰 영감(靈感)을 준다. 허나 우리의 관리 역량(力量)을 넘는 물과 불은 전쟁(싸움)처럼 재앙(災殃)이다. 신나는 구경? 그 동전 뒷면은 바로 지옥일세.
災는 물[川 천]과 불[火 화]의 합체다. 殃은 부서진 뼈 알(歹) 즉 죽음의 한 가운데[央]이니, 3500여 년 전 거북 등딱지의 갑골문이 이미 본질을 가리켰다. ‘처참한 낭만’일까, 인류 망가뜨리는 물․불 쌈의 굿(구경)은 이제 즐거움일 수만은 없다. 반성의 통찰(洞察)이 필요하다.
‘강 건너 불’ 속담은 완전히 새로워진 ‘기후변화의 자연’에 패륜의 행패가 됐다. 나에게 피해 또는 영향이 없다면 저 불이 ‘재미난 구경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격안관화(隔岸觀火·강 건너 불구경)를 지나 수수방관(袖手傍觀)에 속수무책(束手無策)이란 말, 내 일 아니니 상관없다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 내 집으로 날아오는 화마(火魔)와 무관할까?
담배 쥔 손 차창으로 내밀어 재 털고 꽁초 버리는 운전자를 늘 본다. 담배는 사소하니 상관없을까? 내 차로 날아든 담배꽁초 잔불에 소스라치는 경우 잦단다. 실은 필자의 경험담이다.
불을 끄다 순직(殉職)한 영령과 많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간절히 빈다. 엄청난 피해는, 이를 다 어찌할꼬...
원인? 다 실화(失火)다. 잘못(실수)해 불을 냈다, 고의(故意)라면 내란과 외환의 중대범죄다. 물론 방화(放火·불 지름)와 失火 사이에는 처벌 등 문책에 차이가 있다.
허나 우리가 처한 기후변화의 현 상황을 생각하면, 이제 저 ‘책임’에 대한 상식과 인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 행태는 구태(舊態) 그대로다. (산)불이 나는 것이다.
예초기 불티, 하루 이틀 일인가? 성묘객 등산객 쓰레기 태우기나 담배꽁초는 왜 계속될까? 논밭두렁 그슬리기는 다른 방법이 없나? 먹고사니즘과 의례(儀禮), 습관은 긴장을 느슨하게 한다. 나라 흔드는 미녀 경국지색(色)처럼 무서운 경국지화(傾國之火)를 우린 놓치고 있었다.
등산로 입구마다 적힌 ‘실화로 불을 낼지라도…’ 라는 문구가 그 증거 중 하나다.
잘못해 불을 내서 피해가 생기면 처벌된다는 뜻. 뒤집으면, 실수로 불을 내는 것은 (피해만 없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잠재의식의 표현이다. 저 글 쓴 이들(아마 관계공무원)의 생각이 저렇게 나타난 것이다. 재앙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로 적절한가?
‘실화로 불을 낼지라도…’ 라는 글 또는 관련 법규는 ‘불을 내면 무조건’ ‘위험한 행위 전체’로 싹 바꿔야 한다. ‘저 실수의 무책임함’이 부르는 국가적 위기를 모를 수 없다. 알면서도 저지른 실수는 고의로 봐야 한다. 어제도 산길 산책로 벤치 곁에서 담배꽁초를 보았다.
재앙의 시대, 기후변화의 민낯 그 위기를 적실하게 만나고 있다. 새 삶의 방식, 생존의 전략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오불관언의 수수방관은 바로 내 눈앞에 재앙을 부르는 행실이다.
극지(極地) 빙하가 녹아내리는 모습과 저 산불의 비극과의 관계에 대한 명상이 필요하다. 이제 ‘강 건너 불’의 세상이 아닌 것이다. 우선 명심하자, 失火는, 고의나 다름없는 범죄다.
강상헌 / 슬기나무언어원 원장·언론인
토막새김
잔불이 뭐지? 자디 잔(작은) 불쯤을 못 끄는가? 실제 들은 얘기다. 한글과 한자가 섞여 혼란이 오는 것이다. 山에 나는 불은 ‘山불’, 주불은 주요한 불(길) ‘主불’을 말함이겠다.
잔불, 남은 불씨라는 뜻이겠다. 어찌 쓰는 문자인지 물으니 관계자도 ‘모르겠다’ 한다. (녹다) 남은 눈이 잔설(殘雪)이니 ‘殘불’이지 않을까? 山火 主火 殘火라고 안 쓰는 걸 눈여겨본다.
불 지르는 방화(放火)와 불을 막는 방화(防火), 글자 방(놓은 放, 막을 防)의 뜻이 짊어진, 발음이 같은 두 단어의 상대적 의미를 구별할 것.
날아다니는 불씨 비화(飛火)는 진화(鎭火 화재진압)가 어려운 도깨비불이다. 목격자들은 ‘이쪽 불씨가 튀어 순간 건너 산자락 여기저기서 솟구치더라’고 했다. 알았으니 이제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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