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질다’는 인(仁)이다. 그림이 문자다. 사람이 둘(2)이라는 그림이다. 여기서 ‘생각’은 시작된다. 사람은 人(인)이다. 亻(인)은 人과 같은 글자다. 작대기 두 개 이(二)를 함께 쓰려고 디자인을 손질한 것이다.
그림은 뜻이다. 뜻(의미) 담은 문자가 그림문자 또는 표의문자다.
‘가다’ ‘하다’는 뜻 行은 교차로 그림이다. ‘同行’을 쓴(그린) 서예 작품을 보았다. 네(4)거리 그림이 行자일세, 갑골문의 표현이기도 하다. 동행은 갈래 길에서(도) 함께(同) 가는 것이다.
그 네거리 한가운데에 바로 직(直)자를 넣어보자. 直은 눈(目 목)을 뜨고 똑바로 바라보는 그림이다. 바른 눈으로 교차로에서 (가야 할) 길을 파악한다. 원래의 德(덕)자다. 行의 오른쪽 부분(그림)은 (디자인적 완성도를 높이려) 생략됐다고 본다.
나중에 그 눈 아래에 마음(心 심)이 붙었다. (거리라는) 현실 속에서 바른 안목(眼目)에다 사람의 마음(人心 인심)이 더해진 것, 동아시아 (문자의) 역사가 창출한 德이라는 큰 가치로구나. 어질면서도 큰마음이 德인 줄 알겠다.
德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람의 몸(體 체)에서 나온다. ‘건전한 신체, 건전한 정신’은 서양에서 온 말이지만 이미 동아시아에서는 당연한 지혜였다. 보편의 상식이기도 하리라. 아프지 않아야 아름다운 생각을 (더 잘) 할 수 있다.
건강한 몸에서 빚어진 아름다운 마음은 좋은 지식을 담는 슬기의 바탕이겠다. 체(體)와 덕(德)과 지(智)다. 그 셋을 합쳐도 아름답지만, 그 순서 體德智면 아름다움에 더해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운 것은 ‘스스로(自) 그러하다(然)’는 것, 순리(順理)에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이제껏 지덕체를 우리 삶이나 교육의 의미로 삼았다. 생명으로써의 첫 계단인 몸(體)이 뒤로 오고, 영리하다는 뜻으로 오도(誤導)된 글자 지(智)가 앞장을 섰다. 순서는 중요하다.
가령, 전엔 군관민(軍官民)이 나라의 (인적) 기틀이었다. 군대가 먼저고 관청이 다음, 국민은 마지막이었다. 박정희 전두환 등의 시절에는 국민에게 햇살이 오지 않았다. 나중에 ‘한 표’가 중요해지자 순서가 슬몃 민관군(民官軍)으로 바뀌었다. 저 순서, 정치이면서 권력의 음모다.
지덕체의 순서는 우리 교육의 (실질적) 바탕이 됐다. 영리한 점수 따기의 격렬한 경쟁의 장(場)이 우리 2세를 ‘섬기는’(키우는) 실존적 원칙이 됐다. 죽음의 교육 아닌가. 묻는다. 나부터, 우리 아이부터 저런 죽음의 경쟁에서 구할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덕(德)은 스러지고 사라졌다. 제도 수호를 위한 법(法)의 정신(마음)이나, 의학의 바탕일 인술(仁術)의 의미를 우리는 지니고 있는가. 재승덕(才勝德), 재주가 넘쳐 덕스러움 쯤은 졸로 보는 세상 여러 ‘주인공’들의 저 모습을 바로 보자. 그들도 실은 지덕체의 희생자일 수 있다.
體(체) 즉 우리와 2세들의 몸을 학교는 제대로 가꿔 왔는가. 왜 운동해? 그 시간에 공부해야지, 우리를 망가뜨려온 이 생각을 저어한다. 구렁텅이로 ‘사람’을 몰아 영리한 늑대 또는 남을 짓밟는 ‘위너’를 만드는가. 돈 있으면 되지 몸이 덕이 무슨 대수랴? 지덕체의 결과인가.
학교에서 아침마다 30분 운동을 시키니 성적이 오르고 아이들 사이의 관계가 좋아지더라는 얘기 늘 듣는다. 연구결과도 많다. 이런 시도는 아이들의 기(氣)를 틔워주는 첫 단계다.
몸을 살리고 덕을 키워 바른 지식을 갖게 한다는 순서 ‘체덕지’의 주장을, 교육 이념을 논의하는 공적인 강연에서 (처음) 들었다. 이제야 교육이 제 정신을 차리려는가, 예의 주시한다.
두 사람(이상)이 함께 사는(仁) 본디로의 회귀, 반본(返本)으로 본다. 동행을 위한, 어진 세상의 새 바탕일 터다. 큰 가치 德을 세우는 것이니.
강상헌 / 슬기나무언어원 원장·언론인
토막새김
‘디지털 시대 교육의 변화’ 제목의 네이버 ‘열린연단’, 국회의원도 지낸 물리학자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이 인공지능(AI)이 충격을 던지는 전쟁과 재앙의 새 시대를 맞는 우리 교육에 관해 강연했다.
수학자 민경찬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정 토론자로서 꺼낸 뜻 중 하나가 지덕체의 순서를 대신할 새 순서 ‘체덕지(體德智)’였다. 플로어(참석자)까지 위세 만만치 않았던 이 강연에서 등장한 새뜻한 체덕지의 개념은 시대의 대전환을 위한 키워드로 작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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