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문화 거인(巨人) 천경자(1924~2015·화가) 공옥진(1931~2012) 한창기(1936~1997·뿌리깊은나무 발행인) 등은 ‘큰 성취(成就)’이면서, 현재진행형의 의문부호 붙은 ‘묵은 숙제’다.
<꽃등올라/ 구름타고/ 무등으로/ 오르시다/ 그 무등등/ 사랑이고/ 평등이라> (2012년 8월 26일, 원효사) 문화재 학자 김희태 선생이 공옥진의 추억을 사진과 글로 보내왔다. 공 선생 삼우제(三虞祭) 때 사진. 보고 또 보고, 아 무등산이 그 혼백(魂魄) 품었구나.
내 마음 속 추한 용모(容貌)와 자태로 천상(天上)의 아름다움을 품어내는 여인, 예인(藝人) 공옥진의 마음이 그렇게 무등에 올랐더라. 몰랐다, 무등산 정상 바라보이는, 무담씨 가고잡던 원효사 누각에 서면 왜 그리도 설렜는지…
이윤선 선생이 주동이 되어 김도일 나승만 전인삼 선생 등이 함께 공옥진을 ‘소환’한다고 해서 광주행 열차를 탔다.
당시 전라남도 문화재 전문위원이었던 김희태 나승만 선생은 ‘1인창무극’이라는 이름으로 가까스로 ‘문화유산’(도문화재)으로 등재(登載)된 공옥진 예술의 비사(祕史)를 처음 털어놨다.
전일빌딩에서 25일 열린 ‘으로 비틀어 새긴 남도의 역사’ 세미나에서 새겨본 ‘공옥진’은 경이로운 세계였다. 전라도가 왜 전라도인지를 풀어 헤쳤다고나 할까.
판소리와 무용과 연극을 합친 창무극(唱舞劇), 唱과 舞를 앞세운 연극일까. 아니다. 공옥진 핵심은 무용(춤)이고 唱과 劇은 춤을 위한 요소임을 이날 새삼 알았다.
병신춤이 장애(인) 비하(卑下) 논쟁에 휩싸이자 그 춤에 소리(창)와 스토리(극)를 합쳐 업그레이드한 이름이 창무극이라네. 게다가 일인(一人) 창무극이니 당연 그 분야의 ‘원조’다.
무용(舞踊)의 춤춘다는 뜻 舞자를 보자. 아래의 ‘비틀(리)다’는 뜻 舛(천)은 옛 글자 살피면 서로 다른 방향, 바깥쪽을 향한 발[足(족) leg] 한 쌍의 그림이다.
무용은 스텝(step)이 바탕이다. 한 쌍 발이 반듯하게 앞으로 나아가면 이는 행진이지 무용이 아니다. 어그러진, 비틀린 발걸음이 무수한 춤을 만든다. 인간의 영성(靈性)은 여기서 출발하는가. ‘으로 비틀어 새긴 남도의 역사’ 제목의 ‘비튼다’는 말을 다시 읽는다.
기자로 일하던 1978년, 창경궁 곁 공간사랑의 매니저였던 문화기획자 故 강준혁 선생과 셋이 만났다. 특유의 넉살 공 선생은 “아따 전라도 촌년 본께 어찌요?” 농(弄) 걸었다. “서울서 본께 더 좋쏘이” 응수하니 손을 덥석 잡았다.
그 눈 기억한다. 코앞에서 이마와 목의 실룩거리는 힘줄 핏줄이 터져 오르는 기운, 매화향 같기도 한 기괴한 에너지였다. 세월 흘려보내고 생각하니 남도 현대사를 응축한 혼불이었을까. 분노와 슬픔, 해학과 풍자 소용돌이치는.
전쟁 때 경찰관 아내라고 송장 범벅 총살장에 끌려갔다. ‘노래 한자리 하고 죽게 해주소.’ 소원 청했더니 해보라 해서 인민군들을 감동시켰다더라. 예술이 그렇게 살려낸 공옥진, 나중에 그가 예술을 살렸다. 말도 못할 인생유전(人生流轉)이 그 눈에 다 들었더라.
우리 아는 공옥진은 본디의 천(千)분지 일이나 될까 말까…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에 감동하시는 당신께 공옥진의 千(1,000)의 얼굴, 舛(비틀릴 천)의 저 인류를 묻는다.
강상헌 / 미래서원 원장·언론인
토막새김
일제 때 일곱 살에 소리꾼 아버지 공대일의 지인인 도쿄의 최승희에게 팔려 7년을 큰 무용가의 몸종으로 살았다. 장애 동생과 조카의 비극이 뼈에 스몄다. 귀국해 고아 거지 환자 등의 배고픈다리 각설이패에 섞였다.
아버지와 재회해 소리를 배우고, 명창대회에서 장원도 한다. 생활고에 남편의 외도, 천은사 스님으로 살다 환속한다. ‘국창’ 임방울과 김연수 문하에서 춤추고 소리했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 송곳이었다. 30대 중반 제 극단을 세운다.
그의 예술은 전통 4할(割), 운명과 자습(自習)이 6할 정도였던 것 같다. 아니 3 대(對) 7일까. 세상이 쉬 인정하지 못할 독창(獨創)이었다. 베끼거나 따라하지 않았다. 뭘 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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