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관련 기록 나주 ‘음식보(飮食譜)’의 기억을 제29회 국제남도음식문화큰잔치(10월 6~8일, 여수)가 재현했다. 종가(宗家) 기록의 지혜와 전통을 따라 남도의 첫 음식문헌이 전통의 식탁 위로 등단(登壇)한 것이다. 승천(昇天)의 뜻에 비길까.
서울 영남 강원 등과 달리 우리 지역에서는 이런 내용의 문헌(文獻)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동학혁명과 청일전쟁 등 외세가 지역을 파괴한 까닭이다.
전통 있는 음식축제의 활달함 속에서 ‘음식보’의 핵심 음식들은 진중하면서도 새뜻한 차림으로 ‘게미진 전라도 입맛’을 시각적(視覺的)으로 보여주었다.
첫선을 보이는 만큼 잘 요리하고, 그 ‘완성작’을 정밀한 해설과 함께 전시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이번 음식축제의 ‘남도종가음식문화’ 부문 기획자인 김홍렬 청주대 교수는 설명했다.
‘음식보’가 나온 가문인 나주 다도면의 풍산 홍(洪)씨 창애공파 석애 문중의 홍명석 종손(조선대 명예교수)이 김 교수와 함께 국내외 손님들을 맞았다.
홍 종손은 “어깨 너머 또 구전(口傳)으로 이해해온 남도음식의 미덕이 맞고 있는 세계문화 속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며 “향후 좋은 서사(敍事)와 함께하는 종가음식이 인류의 문화자산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의미로운 문중(門中 집안)의 맏이로 이어져 온 집안인 종가(宗家)의 음식은 봉제사(奉祭祀·제사 모심) 접빈객(接賓客·손님 접대)을 첫째로 내세우는 다소 권위적인 의례(儀禮) 상차림이다.
허나 ‘음식보’ 음식과 이번에 함께 선보인 종가음식은 의외로 계절과 생활 속의 활력과 기쁨을 표현하는 요리들이었다. 남파고택(종손 박경중, 전 나주문화원장)의 강정숙 종부는 ‘음식이 세상을 섬기는 일인 것을 잊지 않은 데서 나오는 남도음식의 낙낙한 품’이라고 풀었다.
나주 음식문화가 이렇게 계승되어온 바탕에는 나주문화원장을 지낸 故 박준영 선생의 열정과 통찰이 있었다. 그는 연구와 실연(實演), 교육으로 남도의 이 중요한 문화자원을 지켰다.
관객들은 이 분야의 주류로 인식되어왔던 음식디미방 수운잡방 등 다른 지역의 음식문헌과 비교되는 남도의 문헌이 제 몫을 하게 된 점에도 큰 관심을 표시했다.
관계자와 전문가 등에 따르면, 남도의 다른 여러 지역에서도 이 같은 문헌 등이 출토, 연구되고 있어 ‘음식왕국’으로서 이 지역의 새로운 문화지형을 세워 올릴 전망이다.
전라북도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가 있다. 비교적 최근 인물인 고단(高端·1922~2009)의 가사(歌詞) 작품집 소고당가(紹古堂歌) 중 ‘산외별곡’은 남도의 다양한 전통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소비되는지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주목을 받는다.
의병장 고경명의 후손으로 전주에서 활동한 장흥 출신 소고당(고단의 호)은 정읍 도강 김씨 문중의 종부다.
전주대 송영애 연구교수는 남도 생활문화의 개화(開花)를 마련한 고단의 작품을 주목해왔다. 기록(문헌)뿐 아니라 맛지고 상큼한 요리로도 이름 높았다고 평가했다.
남도문화가 국제적 관심의 표적이 되는 지금 ‘음식보’는 뜻있는 이정표 되리라. 그 가치는 서양 입맛에 휩쓸린 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우리 젊은이들의 ‘청춘(靑春)’에 답이 있다.
강상헌 / 미래서원 원장·언론인
토막새김
‘음식보’와 남파고택의 음식을 비롯, 이번 기획에는 여러 종가음식 중 비교적 대중 친화적인 보편성을 갖춘 다음 가문들(無順)의 밥상 주안상 다과상 등이 소개됐다. △장흥 고씨 양진재종가(기순도 명인) △담양 장흥 고씨 의열공파 학봉종가 △제주 양씨 창암공파 소쇄원종가 △제주 양씨 학포공파 통덕랑공종가 △해남 윤씨 어초은공파 녹우당종가.
종가의 여러 덕목(德目) 중 ‘음식’은 뛰어난 남도음식의 핵심이어서 후세에 물려주어야 할 자원이라고 소쇄원 양재혁 대표는 강조한다. 대중에게, 또 국제무대로 뛰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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