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腦電症), 지랄(병)이라 하던 간질(癎疾)을 이르는 말이다. 그 이름이 있어서 ‘지랄하네’와 그 병의 실제는 다른 것이 됐다. 병은 자상하게 치료받아야 하는 대상이다. 癎疾도 비하 의도는 없는 이름이지만 ‘지랄하네’ 쪽으로 오염돼 새 이름 ‘뇌전증’이 필요했던 것이다.
‘염병하네’의 염병(染病)이 장(腸)티프스(typhus)를 말하는 것인지 모르는 이들도 있다. 병에 시달리는 이들을 되레 차별 천시(賤視)하는 우리 사회 잔인함의 무신경한 언어적 표출(表出)이려니. 지랄(간질)이나 염병은 그나마 ‘눈에 띄어서’ 저렇게 손질할 수 있었다.
피고인 한덕수가 자기를 측은하게 봐달라고 구실 삼았던 것(감형 사유)이 ‘경도인지장애’다. ‘진단자료’를 제출했다고 한다. 언론들, 뜻 몰라도 (상관없이) 대충 쓰고 보는 것일까?
‘경도인지 장애’라고 띄어 쓴 매체도 있다. ‘경도인지’라는 병으로 생각했을까. 그런 거 없다. 輕度認知障礙 또는 輕度 認知障礙는 가벼운(輕 경) 정도(度 도)의 인지장애다. 그게 뭐지? 누구 하나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건 치매(癡呆)다. 몰랐을까. 輕度이니 초기 치매네.
거푸 큰 벼슬 하고, 대통령도 하겠다고 5·18 성역에서 손나발로 “저도 호남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짖던 그 인상적인 상황이 초기 치매 때문이었다는 고백일까? ‘나, 실은 치매에 들어섰다오.’ 말고 ‘경도인지장애’를 내세운 것은 어쩌면 정황을 가리려는 사이비다.
말(언어)의 바른 이름 논의인 정명론(正名論)은 오랜 역사 속 ‘약속’이면서, 본질 곧 사실과 진실 위에 서야 뜻이 있는 것이다. 공자(孔子)에게서 온 말 사이비(似而非), 비슷하기는(似) 하지만(而) 진짜가 아닌(非) 것, 대개 사기(詐欺)다.
언어의 그 약속 기능을 조율하거나 재설정하는 것이 국립국어원 같은 언어당국의 역할이다. 오용(誤用)이나 오염(汚染)이 심한 말은, 지랄(간질)을 뇌전증으로 바꾼 것처럼, 손질하고서 법률적 또는 공적 의미를 부여하여 널리 펴야 ‘당국’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 당국은 혹 ‘공수’와 ‘(산지)직송’이 시중에서 같은 말로 쓰이고 있음을 알까? 자장면과 짜장면은 어감(語感)의 차이지만, 공수(空輸·항공운송의 준말)와 직송(直送·바로 보냄)은 의미(뜻)의 차이다. 본질 다르니 다수결로도 바꿀 수 없는 사안이다.
글자의 본디를 염두(念頭·생각의 머리)에 (올려)두면 언어가 맑아진다. 요즘말로 해상도(海象度)가 높아지는 것이다. 선명(鮮明) 청명(晴明)하여 다른 어떤 말과도 혼동되지 않고 개운한 느낌을 준다. 역사를 생각하듯 (말의) 뜻을 생각해야 좋은 (말 가진) 겨레다.
허나 치매라는 병명은 문제다. 치매와 인지장애를 함께 머릿속에서 굴려보는 것은, 훗날 당신일 수도 있는 또는 지금 당신이 사랑하는 부모일 수도 있는 ‘귀한 분’의 존엄(尊嚴)을 위해 중요하다. 환자와 가족을 잘 돌보는 것, 큰 인도주의(人道主義)다.
언젠가부터 우리 의료인 중 상당수도 치매라 않고 인지장애라 한다. 문자(文字)의 뜻을 아는(생각하는) 이들이겠다. 요즘엔 ‘반려견(伴侶犬) 인지장애’라는 말도 흔히 듣는다. 개를 키우는 이들은 ‘치매’라고 안 한단다. 사람과 개는 어떤 (언어상) 차이가 있을까?
치매의 癡(치)는 ‘병들어 기댄다’는 疒(녁)에 의심할 疑(의)가 들었다. 疑 대신 알 知(지)가 든 痴(치)도 있다. 어리석다는 뜻이 생겨난 바탕이다. 일본은 치매 대신 ‘인지증’을 공식 병명으로 쓴다. 呆(매)는 이불로 싼 아기 그림,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뜻이 거기서 나왔다.
어리석은 게 아니고 질병인 것이다. ‘인지장애’라는 병 또는 증상을 바로 알자. 이후로는 치매란 말 쓰기 싫어질 것이다. 말을 바꾸자. 인지장애 환자(患者)와 그 가족을 응원한다.
강상헌 / 슬기나무 언어원장·언론인
토막새김
영어 디멘시아(dementia), 멘털(정신)이 없어졌다는(de-) 뜻이다. 이 이름의 번역어로 욕설과 다름없는, ‘늙어 망령’이란 뜻의 ‘치매’가 붙었다. 허나 그 병의 본질이 노망(老妄)이 아니다. 치료 보호가 필요한 환자를 ‘어리석은 미치광이’라고 욕하는 셈이니, 제 정신들인가.
알츠하이머는 이 병의 첫 보고자(의학자) 이름으로 병명이 됐다. 디멘시아나 알츠하이머에는 모욕의 뜻이 없다. 그게 맞다. ‘치매검사를 하라’는 말에 (당신은) 기분이 흔쾌(欣快)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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