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즉 세상의 일(事 사)과 물질(物 물)에는 다 이름이 있다. 이름은 지 품은 뜻을 드러내는 겉가죽이다. 事物은 이름과 들어맞아야 바르다.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이다. ‘임금은 임금다워야…아비는 아비다워야…’ 하는 좀 빤해 보이는 얘기가 의외로 무거운 속셈을 지고 있다.
전남도에 의대와 부속병원을 만들고자 한다. 나라 전체 의사도 모자란 데다 남해안 다도해 특유의 의료 취약(脆弱)을 아우를 의사가 긴요하다. 주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순천대와 목포대가 새 이름으로 합치는 점 등에 있단다. 바른(좋은) 이름, 예민한 주제다.
사람 이름도 그렇다. 성웅(聖雄)이라면 모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떠올린다. 우리 마음의 충무공과 그의 삶과 죽음이 담은 거대함은 ‘임금은 임금다워야…’의 ‘정명론’을 너끈히 넘는다.
‘난중일기’나 역사책 말고도 남해안 곳곳 신화처럼 전하는 장군의 이야기는 여태 가슴을 뛰게 한다. 한양(서울) 출신 충청도 사람이다. 남해안 민초의 절대적 헌신적 지지와 성원을 업고, 경기도 사람 다산(茶山) 정약용처럼, 제 뜻과 역량을 한껏 펼쳤던 행운의 위인(偉人)이다.
장군 이름에 대해 얘기했었다. ‘명량’ ‘한산’ ‘노량’의 이순신 영화를 만든 김한민 감독이 무심한 듯 ‘여해(汝諧)’라고 이순신을 언급하는 것을 듣고서였다. 장수로서의 인상이 너무 커서 ‘충무공’ ‘이순신’ 말고는 다른 이름은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는 등의 대화였다.
汝諧는 이순신의 자(字)다. ‘네(汝·너 여)가 세상을 화평(諧·화합할 해)케 하라’는 바람을 담아 장군의 모친이 붙인 이름이다. 字는 이름을 소중히 여긴다는 뜻으로 본명(本名)을 덜 부르고 그 대신 부른다는 이름이다. ‘공자의 이름은 구(丘)인데, 字는 중니(仲尼)다’처럼.
충무공(忠武公)은 시호(諡號)다. 큰 인물이 죽은 뒤에 그의 공덕을 기려 붙인 이름이 諡號다. 충성(忠)스런 무공(武)에 대한 칭송(稱頌)이겠다.
장군은 덕암(德巖)이란 호(號)를 가졌다고 한다. 크고 덕스러운(德) 바위(巖)라는 뜻이다. 號에 우아하다는 雅를 달아 아호(雅號)라고 높여(정중하게) 부르기도 한다.
이 아호는 ‘서원겸사기’(書院兼史記)라는 문헌(文獻)의 임진왜란록(壬辰倭亂錄) 절의공신(節義功臣) 편에 중봉(重峯) 조헌, 천곡(泉谷) 송상현, 제봉(霽峯) 고경명 등과 함께 덕암(德巖) 이순신으로 쓰여 있다고 발표되며 알려졌다.
‘그리 되고 싶다’ ‘그렇게 살아라’며 스스로 붙이거나 주위에서 지어주는 이름인 만큼 자신의 이미지가 잘 드러나는 것이 號이겠다. 덜 알려졌으되 장군의 중요한 이름인 것이다.
덕곡(德谷)이라는 號도 있었다 한다. 작가 김성한이 ‘소설 임진왜란’에서 장군의 號가 德谷이라고 했다는 것. 덕스러운 골짜기(谷)라는 뜻이니 德巖(덕암)과도 통하는 이름이리라. 아호 관련한 몇 대목은 경향신문과 한정주 역사평론가의 오래된 글 등을 참조한 것이다.
덕해(德海), 너른 큰 바다, 익히 쓰이는 이미지다. 만상(萬象)을 담고도 품이 커서 덕스럽게 평온하다는 뜻이다. 학창 때, 목포 유달산에서 내려다보던 바다와 섬의 첫인상이 또한 그랬다. 德海는 德의 참 덕스런 뜻 이미지다.
순천은 대대포구(浦口)가 생태 명소로 탈바꿈하면서 바다 느낌 크지만, 온후한 표정의 세 봉우리와 두 물줄기 삼산이수(三山二水)가 원래 상징이었다. 덕암(德巖)의 巖자는 옛 갑골문에 세 덩어리 큰 바위(산) 그림이니, 그대로 三山일세. 동의어 암(嵒)자, 줄여 쓰는 岩자도 있다.
장군의 마음 담겼을 아호(雅號)의 두 글자 이미지가 남도의 해안선을 낙낙하게 휘감으니 성웅의 당당한 기개(氣槪)가 다시 우리의 ‘어떤 이름’이 되어 새 역사를 담으면 좋으련….
강상헌 / 슬기나무 언어원장·언론인
토막새김
이름짓기를 명명(命名)이라 한다. ‘이름(名)에 생명(命)을 불어 넣는다’는 문자의 뜻이니 응당 미래를 위함이다. 이름 받을 대상의 인연(因緣)들을 그러모아 삿된 것 지우고 곱고 씩씩한 뜻만을 깃발 세움이다. 그리고는 우리 모두가 그 푯대를 지켜가는 것이다.
우리 장군의 속마음일 아호 덕암(德巖)과 가슴 맞대는 命名의 실마리 쥐고 새해 기다리던 내내 설렜다. 이 주제, 뭇 사람들 마음에서 오래 살아 숨쉬기를 희망한다. 새해, 오늘이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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