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오면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을 떠올릴 이들 많다. 패티김은 이렇게 사람들 마음에 이별의 가을을 심었다. ‘진하다 못해 징허네…’ 하던 친구 떠오른다. <…사랑할수록 깊어지는 슬픔에/ 눈물은 향기로운 꿈이었나…> 흥얼거려 본다. 맞다, 그러네.
전에 ‘아버지 선생님’으로 초대돼 초등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초가을이었다. 가을 하면 생각나는 걸 적어보라고 했더니, 전원 외마디 ‘가을비 우산 속’이었다. 가수 최헌(작고)이 불렀던, ‘가을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던 노래(1978년)다.
우리 느끼는 세상은 이렇게 ‘마음’이고, 그 표현의 방법과 기억의 형태는 언어 즉 말과 글이다. 어떤 선배(시니어) 세대의 마음에는 ‘가을의 전설’이란 말 무성하리라. 슬픔이 은근히 가슴을 후벼오는, 미국영화의 제목(원제 Legends Of The Fall, 1995년)이다.
저 전설(傳說)이란 말(어휘)은 (말과 글로) ‘전해오는 이야기’라는 인간 정서의 쌓임 곧 누적(累積)이다. 왜 가을은 (우리 마음에서) 저렇게 인용(引用)될까? ‘당신은 가을의 이미지를 어떻게 그릴 건가요?’ 하는 의문문이다.
이 ‘그린다’는 표현은 그림(畵 화)으로, 또 글(文字 문자)로도 본질이 같다. 원래 글자의 바탕은 마음(을 사진 찍은 듯한) 그림이다. 뜻글자인 상형문자(象形文字)의 첫 의미다.
가을은 왜 가을이지? ‘가을의 어원’ 질문에 AI(인공지능)는 이렇게 청산유수(靑山流水)다.
‘갓다’(끊다, 곡식을 거두다)라는 (옛)말과의 연관에서 수확의 계절 가실로, 또 가을로 천이(遷移·옮기어 바뀜)됐겠다. ‘썰’일 수 있다는 토가 달리긴 했지만, 가능성이나 개연성(蓋然性·그러지 않을까 하는 기미)은 낙낙하다. 가위의 지역어에 ‘가새’란 말이 있음도 참고할 것.
그 AI는, 가을의 한자 추(秋)를 ‘벼(禾 화)와 불(火 화)의 합체’라고 했다. 현대의 한자 모양인 해서체(楷書體)로는 그렇게 풀 수 있다. (쌀알을 품은) 벼와 불이니, 구워 먹는다? 그럴까?
미국 여성작가 펄 벅의 ‘대지’(大地·The Good Earth·193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에서는 중국 벌판을 초토화(焦土化)하는 거대한 메뚜기 떼 얘기가 실감난다. 그 메뚜기는 불이 해결했다.
(우리도) 메뚜기를 구워 먹었다. 저 禾자는 원래 갑골문에서 메뚜기 그림이었다. 3000년 전 동아시아의 ‘가을의 전설’의 한 장면이다. 싱겁다고 ‘애개개’ 할까? ‘사랑할수록…’이나 ‘…우산 속’ 같은 신식(新式) 또는 서구적 정서에 오래 익숙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이는 ‘옳은 게 뭐냐’를 찾자는 주제가 아니다. 본디 즉 ‘그러함’의 뜻을 생각하자는 얘기다. 스스로(自) 그러함(然)이 自然(자연)이다. 대기(大氣) 등 지구의 상황이 영어로 네이처(nature)인데, 동아시아에서 (약속처럼) 이를 ‘자연’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임을 알자.
하나 더, 가을(秋)이 메뚜기 굽는 그림이듯, 세상 본디인 자연의 然(연)자는 고기(⺼ 육, 肉) 개(犬 견) 불(火 화)의 합체이니 곧 ‘개불고기’다. 이 음식(개불고기)이 맛있냐? 그렇다, 맛있다! 해서 ‘그렇다(그럴) 然’이 됐다고도 한다.
음식 관련 이 문자는 서양과학의 자연 즉 네이처의 핵심으로 변전(變轉)해 왔다. 한자를, 또 그 그림을 읽는 것은 이렇게 역사 속에서 뜻과 모양의 변화를 추적하는, 마치 탐험(探險)이다.
영어의 가을은 서정적이다. 가을 폴(fall)은 ‘떨어진다’는 뜻도 있으니, 낙엽이나 기온의 하강(下降)으로 파악된다. 오텀(autumn)은 수확(收穫)과 성숙의 뜻 라틴어에서 왔다.
강상헌 / 슬기나무언어원장·언론인
토막새김
단풍(丹楓)은 낙엽(落葉)처럼 가을의 현상이자 대표적 풍경화다. 떨어져(落) 썩어야 마른 저 잎(枯葉 고엽)은, 이브 몽땅의 샹송처럼 의미 있다. 썩은 낙엽이 신록(新祿)의 깃발 행세를 하면,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치다. 국내외 뭇 인사들의 상황에서 요즘도 우리는 본다.
‘낙엽의 향연’ 그 휘황(輝煌)한 끝판은 아무래도 내장산(정읍)이나 무등산(광주 화순 담양)의 단풍러시다. 아름다워 더 기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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