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방방곡곡(坊坊曲曲)의 언덕과 나루터마다 여러 사람 살고, 그 여럿의 생각 또한 여럿이다. 어느 언덕에선 돌판에 신탁을 새기고 다른 곳에선 거북 등딱지로 언약을 받았다. 종교나 언어 따위로 갈무리한, 여태 전해오기도 하는, 인류의 지식 또는 지혜다.
‘귀감’은 타(他)의 모범이라는 뜻이다. 사전은 귀감(龜鑑)을 ‘거울로 삼아 본받을 만한 모범’이라고 했다. 귀(龜)는 거북, 감(鑑)은 거울이다. 거북은 ‘본받을 만한 모범’의 뜻인가, 왜?
말을 새긴 기호(글자) 일점일획(一點一劃)에 뜻 없는 것이란 없다. 왜 龜鑑에 거북이 들어갔느냐 묻지 말 것, 우리의 무지(無知)가 세월 속에서 그 龜를 잊고서 마침내 잃은 것이니.
글자의 뜻을 모르고 말로 쓰다 보면 남의 옷 입은 양 어색하기 일쑤다. 글자 뜻을 정확(正確)히 적확(的確)히 ‘시러 펴지 못한’(훈민정음 서문의 문구) 것이겠다.
거북의 껍질(등딱지)은 동아시아 상고사(上古史)에서 신탁(오라클 oracle)을 받는 연모였다. 주로 동이(東夷)겨레가 거기 살던 시기에 금문(金文)과 함께 시작된 갑골문(甲骨文)의 그 甲이다. 옛 역사는 실은 ‘언어학’이다.
상고문헌학자인 중국 낙빈기(駱賓基·1917~1994)의 ‘금문신고(金文新攷)’와, 낙빈기와의 오랜 교류와 토론을 통해 ‘금문 속의 고조선’(2011년 刊) 등의 저서를 펴낸 우리 학자 소남자 김재섭(1931~2023)의 학문적 업적은 우리 겨레 역사의 틀을 단번에 뒤집는다.
신화(神話)의 세계였던 단군조선의 실체를 역사의 장(場)에 올린 놀라운 일도 그중 하나다. 중국 동북공정과 일본 식민사학(植民史學)이 비틀어놓은 우리 역사의 막힌 숨통을 홍산문명과 옥(玉)문화 전공 역사가인 정건재 박사(전 전남과학대 교수)가 그 ‘낙빈기’와 ‘소남자’를 활용해 반듯이 펴서 뚫고 있는 현 상황의 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강 박사, 이병도가 한민족인 줄 아는가?”라는 의문문으로 유명한 외교관 출신 중국법 학자 강효백 교수의 여러 ‘증언’은 새로운 우리 상고사를 세우는 저런 상황의 명징한 기틀일 터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1929~2022)은 저 말로 강 교수에게 ‘왜(倭)의 앞잡이’ 이병도와 그 추종자들의 조작된 역사를 경계하라고 논파(論破)했다. 첫 단추를 잘못 꿴 역사를 겨레의 역사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사의 정의(正義)를 말하는 것이다.
인공지능(AI)이 ‘새로운 도구’를 넘어 인간(실존)의 바탕을 흔드는 상황을 심각하게 살핀다. 늦기 전에 ‘거울삼아야 할 저 거북’의 실체를 바로 보는, (인공지능 아닌) 사람 지능의 과업 즉 ‘생각하기’를 되살려야 한다. 가톨릭의 교황만 저렇게 걱정할 일이 아닌 것이다.
거북(龜)과 거울(鑑)을 다시 생각한다. 종교가 발명되기 전 인간(지능)의 활동은 그림이었다. 그 그림은 인간의 염원(念願)을 담은 기호로, 또 인간의 말(생각)을 품는 문자로 옮아갔다.
거북 딱지에 불을 놓아 벌어지는 모양으로 (지 염원을 확인하거나 신에게 조르는) 점을 친다. 점괘와 함께 그 딱지에 눈에 보이는 것과, 생각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을 새겼다. 뜻을 그린 갑골문(龜)이다. 청동 거울이나 향로에 그 뜻을 얹었으니 금문(鑑)이다. 신탁이고 언약이다.
그 신탁과 언약은 마땅히 인간의 해야 할 바였을 것이니, 거북과 거울의 귀감이 ‘그 귀감’이 된 것이다. 그 귀감 곧 생각을 버리면, AI에게 뜻을 줘버리면, 좋은 세상이 될까?
강상헌 / 슬기나무 언어원장·언론인
토막새김
인두겁 곧 사람 껍질 쓰고 저주의 언어로 세상 어지럽히는 못된 스타벅스를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서 꾸중한다. 사이렌을 왜 그날 울렸냐, 5·18에 탱크로 어떻게 하겠다고? ‘탁!’ 치니 (죽어) 기분 좋더냐?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龜鑑 못 배운 저 장사치들을 어찌해야 쓸꼬.
李 대통령은 그 무렵 국민배당금 관련 기사로 청와대의 항의를 받고 국내 언론과는 달리 깔끔히 정정보도한 블룸버그에 대해 “귀감 삼을만 한 정론직필”이라고 龜鑑이란 어휘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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