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의 발전단계’라는, 그럴싸하게 들리는 ‘이론’이 있다. 언어학을 빙자해 꽤 오래 지성의 지하(地下)에서 유통되어온 이야기다.
글자는 그림으로 시작했으니 표의문자(表意文字 뜻글자)였다. 역사 지나며 알파벳으로 대표되는 표음문자(表音文字 소리글자)가 됐다. 둘 사이의 최종 승자(勝者)는 소리글자다. 소리글자가 발전단계의 최고(마지막) 단계다. 한글은 소리글자다. 고로 한글은 우수하다.
이 ‘이론’ 속에는 한자와 한자어(漢字語)보다 훈민정음이 토대가 된 한글이 훨씬 우수하다는 주장이 포함된다. ‘한글이 세계언어올림픽에서 수십 년 연속 우승했다. 어찌 자랑스럽지 않으랴’ 이런 애국적인 스토리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올림픽은 세상에 없다.
홍성 사과와 나주 배, 둘 중 어떤 것이 더 우수하냐고 묻는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한자를 사용하면 안 된다, 한자교육도 어불성설이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는 이들의 저런 논리에는 혹하는 이들 없지 않다.
이집트 상형문자 히에로글리프(Hierogly ph), 그림이어서 원래 뜻글자이던 것이 소리글자로 정체(正體)를 바꿨다. 우수해진 것인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파라오 등으로 인류 문명의 화려한 서막을 장식한 나라 이집트, 그 말을 적었던 (그림)문자는 인류에게 어떤 의미일까.
말(言 언)과 글(文 문), 뭐가 먼저지. 말이 먼저다. 인류 초기, 사람들이 사냥을 했다. 저걸 잡아야 우리가 산다, 그 간절한 염원(念願)을 서로 나눈 말이 황야의 큰 짐승의 이름(말)이 됐을까. 라스코 동굴의 옛 사람들은 사냥감인 큰 짐승을 그렸다. 그리고 그 이름을 불렀겠다.
창을 들고 사냥하던 동료가 죽으면 외마디로 슬퍼했다. 동굴벽화의 내용이다. “들소다” “아이고 서러워” 같은 말 들리는 것 같다. 그림의 이미지는 후에 기호가 되고 글자가 됐을 터. 말 다음 기호(글)가 등장하는 순서다.
많은 신(神)을 섬기던, 왕(王)인 파라오도 신과 같은 반열(班列)인 이집트, 그 나라 문자는 당초 (파라오와) 신을 섬기기 위한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신성(神性)문자라고 부른 이유다. 그 역할은 그 문자의 소멸 때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파라오와 왕족, 신관(神官), 그리고 읽고 쓰는 전문가 서기(書記) 등 소수의 사람들이 독점한 문자 체계였던 것이다. 일반에 공유되지 않은 ‘비밀의 정원’ 같았다고나 할까.
후발 세력 그리스문명에 밀려 히에로글리프(‘신성한 글자’ 뜻 그리스어)는 절멸(絶滅)된다. 기원전 3000년 무렵부터 서기 350년 무렵까지,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 쓰인 문자였다.
아무도 피라미드 스핑크스 오벨리스크 신상(神象) 사자(死者)의 서(書) 등의 엄청난 문자유적을 읽을 수 없었다. 소리도 뜻도 망각된 언어, 이집트는 인류의 미스터리로 남을 뻔했다.
나폴레옹 이집트원정대가 발견한 비석 로제타스톤을 샹폴리옹(1790~1832)이라는 프랑스의 언어학자가 읽어냈다. 신성문자와 이를 간략하게 고친 민중문자, 그리고 그리스문자의 3개 문자로 적힌 비석의 내용을 문자 간(間) 비교 연구로 해석한 것이다.
뜻글자로 봤던 신성문자가 실은 소리글자였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결정적인 성공요인이었다.
이집트 문명의 열쇠였던 로제타스톤은 현재 런던의 영국박물관에 있다. (下편에 계속)
강상헌 / 미래서원 원장ㆍ언론인
토막새김
이집트문자에는 그림 알파벳이 있다. ‘강’은 각각 K(크) A(아) N(은) G(응) 소릿값 가진 그림글자를 결합한다.(사진참조) 예를 들어, 그 중 새(鳥 조) 그림은 새의 뜻으로도 쓰이지만, 원칙적으로 ‘아’ 발음을 적는 기호(글자)다. 팔뚝모양 글자도 ‘아’ 발음 기호다.
태양(해)을 원래 ‘라’라고 했다. 글로 쓰려면 R(알 입모양)과 A(아 팔뚝모양)의 소릿값 가진 알파벳을 쓰고 오른쪽에 태양 모양 기호를 붙인다.(그림) 그 기호는 소리가 없고 ‘태양’의 뜻 나타내는 의미요소다. 여러 ‘라 RA’ (발음) 중에서 ‘태양’이란 ‘라’를 나타내는 방법이다.
입과 팔뚝모양의 의미를 생각하여 해석하려면 혼란이 온다. 마치 한국어 ‘무지개’ 중 ‘무’의 뜻이 뭔가 궁금해 하는 셈이다. 소리글자의 성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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