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이다. 서양의 틀로 움직인다. 현대사 와중에 어쩌다 민주주의가 됐다. 당연한가?
동양에는 덕(德)이 있다. 悳으로도 쓴다. ‘크다’가 훈(訓)이다. 다닐 행(行) 눈 목(目) 곧을 직(直) 마음 심(心)이 어울린 글자다. 진선미(眞善美) 넘는, 윤리와 도덕 한 수 위의 하늘같이 큰 뜻이라고 푼다. 쩨쩨하면 덕이 없는 것, 부덕(不德)이다.
서양에도 德이 있나? 1대 1로 대응할 개념을 찾기는 어렵다. 선과 악(good & evil 또는 virtue & vice)의 대비가 우선이었다. 에띡(ethic 윤리)이나 모럴(moral 도덕)의 주제다. 종교로 세워진 문명이라 당초 그 신(神)의 마음이 기준이었다.
그 기준, 신의 뜻을 따라야 했다. 해석은 교회 몫이었다. 인쇄술 등으로 성경(의 뜻)이 세상에 퍼지면서 변화가 생겼다. 종교에 얽매였던 선악(善惡)의 뜻도 일렁이지 않았겠는가? 신학(神學)과, 선악 예술 학문 등의 만나고 헤어짐이 문명의 줄기가 됐다.
마키아벨리가 깃발을 들었다. 500여 년 전의 이탈리아 정치가다. 그 깃발은 정치뿐 아니라 현대 사상사에서 두루 나부낀다. 저서 ‘군주론’(君主論)의 마키아벨리즘이다.
완전할 수 없는 인간에게 신의 정치, 또는 윤리의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신성(神性)과 인간성 사이의 간격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 불가피성(不可避性)이 인정돼야 하는 것이다… 주요한 내용 중 하나다.
정치가 사람을 바라보다. 당시 극히 진보적인 사상이었다. 이기심과 같은 인간의 속성을 지닌 인간들을 다스리는, 역시 인간인 군주(위정자) 사이의 새로운 ‘거래 기준’이었겠다. 기왕의 (종교적) 윤리나 도덕에 ‘사람’을 더한 새 기준의 정치, 그 깃발의 내용이었다.
교회나 위정자, 인습에 젖은 기성세력들의 강압과 비난을 피할 수 없었겠다. ‘마키아벨리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의 화신(化身)이다’라는 오래된 평가의 원천이다. 일본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과도 관련된 얘기다.
일본은 마키아벨리즘을 왜곡해 맹목적 국가주의에 악용했다. 여태 우리가 마키아벨리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원인이기도 하다. 마키아벨리의 생각을 ‘서양의 德’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근거들이다. 어쩌면 인류의 정치는 그 깃발을 따라 시나브로 첫 틀을 잡지 않았을까?
한편, 정작 德의 고향인 동양은 그 향기를 잃고 있었나 보다. 혹 부덕지수(不德指數)라는 인덱스(index)를 만든다면, ‘부덕의 소치(所致)들’ 투성이 한국은 어떤 점수를 받을까?
서양 사상으로 德을 바라보았듯, 부덕의 상황을 서양 과학에 비춰보면 또한 의미심장하다.
‘최소량의 법칙’을 설명하는 리비히(Liebig)의 물통은 얼핏 엉성해 보이지만, 의미는 심각하고 엄정하다. 높이가 다른 널빤지를 이어 붙여 만들었다고 상정(想定)한다.
한 성분이라도 (조건에) 못 미치면, 제대로 채워지지 않는 물통의 예(例)처럼, 식물은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 한 원소가 필요한 최소량에 이르지 못하면, 비록 다른 원소가 넉넉해도, 생장에 큰 지장이 온다, 부족한 원소가 그 식물의 생육을 좌우한다는 법칙이다.
사회에 德은 필요한가, 뭔 짓을 해도 무죄판결만 받으면 되는가? ‘사람 되라’는 말은 뭐지?
사람을 이루는 요소, 사랑이나 체덕지(體德智) 등에서 德이 부족하면 어찌 될까? 혹 돈이나 ‘빽’이, 학벌이나 부모의 권세가 저 ‘법칙’을 극복하게 해줄까? 德 따위, 없어도 된다고?
서양산(産) 귀감(龜鑑)일세, 마키아벨리와 저 물통을 또 하나의 거울로 삼아볼까.
강상헌 / 미래서원 원장ㆍ언론인
토막새김
세상은 그물망(網)이다. 또 돌고 돈다. 저 물통은 농업을 위한 화학에서 왔다.
질소 인산 칼륨, 비료의 3요소 중 자연 상태에서 구하기 어려운 질소의 부족이 식물의 생장에 초래하는 결과를 설명하는 독일 화학자 리비히(1803~1873)의 이미지였다. 콩과식물의 뿌리혹박테리아가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固定)해 뿌리에 공급하는 것과도 관련 있다.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1909년 공기 중의 질소를 암모니아로 합성하면서 질소비료를 만들었다. 멜서스의 예언처럼 식량위기에 처했던 인류를 크게 도왔다. ‘공기로 빵을 만들다’는 칭송과 함께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이 질소(의 생산단계)는 1차 세계대전이 터지며 바로 폭약이 됐다. 또 하버의 연구팀은 독일군의 염소 독가스를 만들었다. 최초의 참혹한 화학전이 벌어졌다. 德도 함께 공부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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