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트레이시 바이든은 미국의 교육자이자 제46대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의 아내이다. 인물을 설명하는 이 문장의 순서는 정치적이다. 미국의 퍼스트레이디라는 이미지가 세컨드(두 번째)로 밀렸다. 다른 공식·비공식 문장에서도 ‘닥터(Dr.) 질 바이든’이나 질 바이든 교수와 같은 학위나 직업명을 먼저 쓴다. 상식적이지 않다. 그의 희망에 따른 것이라 한다.
그의 시도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본다. 당당한 이 미국 여성, 질 바이든 박사에게는 배울 점이 많다. 그의 ‘정치적 의도’가 무엇인지, 특이한 시사(示唆)점을 살피자.
미국은 공부 중이다. 미국의 전문대인 커뮤니티 칼리지를 지목해 하는 말이다. 질 바이든 교수의 직장이다. (남편 덕분에) 잘 나가기 시작할 때 4년제 대학의 초빙(招聘) 제의도 받았으나 그는 커뮤니티 칼리지를 고수했다. 지금도 거기서 강의한다. 그 일이 즐겁다고 한다.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녔다. 일하며 4년제를 졸업하고, 석사학위 2개를 얻은 후 50대에 교육학 박사가 됐다. ‘커뮤니티 칼리지의 학생 유지(維持)에 관한 연구’가 박사학위 논문 제목이다.
내로라하는 유명 대학들 말고도 커뮤니티 칼리지는 미국의 서민을 가르치는 중요한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 지금은 퍼스트레이디의 (막강한) 응원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더 특별한 점은 그의 강의가 글쓰기인 점이다. 나이 든 직장인이나 이민자, 난민, 소외계층 등을 주로 가르치는 이 대학에서 그의 역할은 줄곧 작문(作文) 지도였다. 그 사회는 그런 대상들에게(도) 글쓰기를 가르치는구나, 글 쓰는 것이 사는 데 필요한 세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시민들에게 필요한 수준의 글을 쓸 수 있도록 돕는 사회인 것이다.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생산하도록 한다. 이는 그들의 자녀(이웃)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효과도 있다.
엄마(부모) 선생님 선배가 ‘따다 붙이기’를 글쓰기의 (유일한) 방법으로 믿고 가르치는, 한국 같은 글과 지식의 도적질 세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표절(剽竊)은 생각이나 글쓰기를 망친다. 미국은 하고, 한국은 안 하는 교육(의 한 장르)이다. 한국 사람에게는 글쓰기가 필요 없을까.
질 바이든 박사의 교수법에 또 주목한다. 남편의 일 때문에 함께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을 타고서도 학생들의 작문 답안에 일일이 평가 노트를 적어주는 채점을 하더라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글을 읽어 손잡고 대화하며 가르치는 것이 눈에 선하다. 글쓰기 지도의 본디다.
이론 늘어놓고 “알았니?”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 보는 생각과 안목(眼目)을 나누고, 이를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글 가르치고 배우는 원래 모습이다.
축구 얘기에 ‘닥공’이란 말이 있다. ‘닥치고 공격’이다. 거창한 이론이나 비결이 왜 없으랴. 그러나 압도적인 힘과 열정으로 공을 몰아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모를 사람 없다.
글쓰기는 더하다. ‘닥치고 쓰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다. 과외나 컨설팅, 다 허망하다. (엄마들도) 대개는 안다. 가르치는 이들도 실은 안다. 이론 형식 기술은 그 다음인 것이다.
그러나 그 요령만 배워주면 시간 들여 쓰지 않고도 고득점을 얻으리라는 환상 또는 착각을 버리지 못한다. 결말은 대개 대리(代理) 집필 자소서(자기소개서)다. 그런 강사를 ‘소설가’라 농치는 것은 이런 이유다. 상술(商術)이 넘어서는 이니 될 선을 넘고 있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도 교육은 필요하다. ‘생각하기’를 바탕으로 하는 글쓰기를 가르치고 배우는 미국의 교육은 어쩌면 우리에게 의외일 수 있다. 동영상과 코딩 밖에는 관심 없는 우리 교육이 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동영상과 코딩의 바탕은 생각하기와 그것을 표현하는 글쓰기다.
퍼스트레이디 교수님 질 바이든 박사의 커뮤니티 칼리지와 글쓰기 지도에 대한 열정을 배워야 한다. ‘출세를 위한 방법’을 넘는, 함께 사는 세상(커뮤니티·공동체)을 위한 진짜 공부다.
토막새김
미국의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는 하버드나 예일처럼 폼 나는 대학이 아니다. 그러나 정규대학에 못 가는 소위 루저들만이 가는 곳도 아니다. 4년제 대학으로의 편입 절차를 제공한다. 엄청나게 비싼 대학 등록금 때문에 상당수 고교 졸업자들이 이를 선택한다.
학위와 상관없이 직장을 가진 성인들을 (재)교육하는 역할도 한다. 평생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인 것이다. 건강한 시민사회를 유지하는 ‘미국의 비밀병기’로 평가되기도 하는 이유다. 인생의 패자부활전이 가능하도록 돕는 기구로도 인식된다.
‘동동한 기회’(equal opportunity)는 이렇게 주어지고 유지되는 것이다.
강상헌 / 미래서원 원장·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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