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이 사자성어가 아니라는 언론의 저 단언(斷言)이 황당하다. 한 뉴스공급사(통신사)가 ‘한글날’을 기억하자고 쓴 글 한 대목을 지적한다.
‘자강두천’ ‘복세편살’이란 말도 가리키며 국립국어원을 인용해 ‘교훈이나 유래를 담지 않아’ 사자성어가 아니라고 했다. ‘말’의 뜻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오해할 것이 안타깝다.
한자로 四字成語라고 병기(倂記)했으니 ‘네(四) 글자(字)로 된(成) 말(語)’일 터다. 각각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내로남불),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자강두천), 복잡한 세상 편히 살자(복세편살)는 뜻 유행어라고 했다.
익히 쓰는 말 숙어(熟語)와도 비슷한 이 성어들은, 한글날 기념 지면에 마땅한지 여부(與否)를 떠나, 그 단언과는 달리, 마땅히 사자성어다. 세상사 추세(趨勢)에 따라 때로 의미의 변이(變移)가 생기기는 할 터이나, 말에는 (바뀔 수 없는) 고유한 뜻이 있다.
언론을 포함한 사전편찬자 등 어문(語文) 종사자 등의 오인(誤認)이나 무지, 무절제가 때로 말과 글의 순수성을 망가뜨리는 경우에 대한 경계(警戒)다.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은 사자성어를 ‘한자 네 자로 이루어진 성어. 교훈이나 유래를 담고 있다.’고 풀었다. 한국어대사전(고려대)은 ‘네 개의 한자로 이루어져 관용적으로 쓰이는 글귀’라며 관련어로 ‘고사성어’를 들었다. 국립 사전이 (고려대 사전에 비해) 무절제하다고 본다.
지 맘 끌리는 대로 공공의(우리 모두의) 언어체계인 사전의 말을 풀었다는 것이다. 또 한자로만 4글자가 구성돼야 한다고 푼 점은, 둘 다, 지식(업무)의 남용이나 난용(亂用)으로 본다.
사자성어라는 말 어디에도 한자로 교훈이나 유래를 담아야 한다는 뜻이 없다. 저 언론사는 ‘표준’ ‘국립’이란 이름 붙은 사전의 권위에 기대어 독자를 오도(誤導)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낫 놓고 기역(ㄱ)자도 모른다.’는 말을 새삼스레 떠올릴 필요도 없는 상황이려니.
기자(記者)도 말(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아마 고사성어(故事成語)를 사자성어라고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겠다. ‘지난’ ‘옛’의 뜻인 고(古)자에 ‘치다’ ‘때린다’는 攵(복)이 붙어 故는 ‘옛(古) 일(事) 때문에’라는, 유래(由來)라는 뜻이 됐다.
고사성어는 역사 설화 등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옛일에 바탕을 두고 후세 사람들이 두루 인용하는 말이다. 때로 4글자가 되기도 하여 4자성어라고 하던 것이 혼동을 부른 것으로 본다. 두 글자든 다섯 글자던 같은 이치다.
고사성어 등 저런 말들이 교훈을 위해 빗대(비유적으로) 쓰인다는 식의 해설(해석)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지성(지식)이 여태 삼국지(연의)에 머물러 (퇴보하고) 있는 것을, 세상의 변화와 함께 숙고하자는 것이다.
입시 용(用) 읍참마속(泣斬馬謖) 와신상담(臥薪嘗膽) 따위는 선배세대에게 재미는 될지언정, 언어교육의 지표나 생각의 도구가 되기에는 시대착오적이다. 말의 뜻 사라져 사자성어와 고사성어를 구분할 수 없게 된 연유겠다. 내로남불 전성시대, 한글 한국어의 현실, 다시 보자.
강상헌 / 슬기나무 언어원장·언론인
토막새김
훈민정음의 오늘날 이름 한글은 ‘큰 문자’라는 장중한 뜻이다. 용비어천가의 ‘하다’는 ‘크다’는 말(의 고어)이다. 또 겨레 이름 대한(大韓)과 글(契)을 합친 이름이 韓契(한글)이다.
‘계’로 읽어 ‘(작은) 경제 모임’이란 뜻으로 주로 써온 글자 契의 ‘잊고 있었던’ 뜻이다. 갑골문 등 이 글자의 생성과 변천(變遷)에는, 인문학 첫 계단으로서의, 아름다움이 번져난다. 고대사의 이웃 겨레 이름 거란(契丹 글단)에 든 글자이기도 하다.
홍산문화 전문가 사학자 정건재 박사는 고(故) 진태하 박사의 문자학 이론과 동북아시아 상고사 옥(玉)문화에 비친 언어현상을 인용하며 ‘韓契’의 범(凡)인류적 의미를 강조한다.
겨레 역사의 크기가 반만년(半萬年)이 아니라 1만 년이라는 학문적 주장과 함께 펼친 거대한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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