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공급자 중심의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자 인권감수성이 매우 부족한 조치라며 바로잡으라고 지시했다.”
강유정 대변인은 ‘공급자 중심’이란 말에 힘을 주었다. 일부 지역에서 소비쿠폰 색깔을 금액별로 달리한 것에 대한 대통령의 질타다.
‘공급자 중심 발상’이란 좀 생경한 말, 물어보니 담당자가 이재명 대통령 뜻을 마사지(손질)한 게 아니었다. 워딩(wording) 즉 육성을 그대로 전한 것이다. 외국어 마사지와 워딩은 말의 특별한 의미를 나타내려 부러 쓴, 언론동네 ‘용어’다. 가난한 이웃을 향한 마음을 느낀다.
저 일의 시시비비와는 별도로, 그 워딩에 주목한다. ‘공급자 중심’ 말고 ‘수요자(국민) 중심’ 행정을, 몸소 주문한 것이다. 당연하다. 허나 현대사 한국의 상황을 길게 읽으면 당연하지 않(았)다. 의미 큰 선언(宣言)처럼 들리는 까닭이다.
‘공급자 중심 발상’이란 말, 1980년대 중반 소시모(소비자시민모임)가 ‘타파(打破)의 대상’으로 지목한 개념이다. ‘소비자로서 환자의 권리’라는 충격적인 문제 제기였다.
또 실질적으로 모유를 못 먹이도록 구조화(構造化)된 병원과 분유업계에 대한 (엄마들을 대변한) 분노의 표현에도 ‘공급자 중심’이란 말이 핵심이었다. 권위 앞세우는 의사(선생님)들과 높다란 병원의 심리적 문턱을 타파하자는 것이었다.
허나, 정부(담당공무원)도 이를테면 ‘병원과 분유업계야말로 모유 수유(授乳) 분야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전문가(집단) 아니냐?’고 했다. ‘몽매(蒙昧)한 여자들이 뭘 알아’ 하는, 편견이 움직이는 세상이었다. 기업의 말만 들었다. 믿어지는가?
‘통설을 깨자’는 주장을 ‘평지풍파(平地風波)’라며 과소평가하기 일쑤였다. 정부의 물가조사(감시)나 혼식 분식, 저축 장려 등의 캠페인에 동원된 여성단체 활동과 다름없이 여기기도 했다. 좀 나은 데도 있었지만, (광고 등에 목매단) 언론도 결국 거기서 거기였다.
40년 전의 ‘공급자 중심 타파’ 깃발에는 세상의 저런 곡해(曲解)에 격노하고 꾸중하는 마음이 독하게 실렸다. 대통령이 ‘공급자 중심 타파’를 다짐하게 된 바탕일 것이다.
당시 깃발을 함께 든 소시모의 김재옥 전 회장과 송보경 전 서울여대 교수, 두 여걸(女傑)을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소환하는 까닭이다.
그 깃발, 소비자 권익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었다. 골재 채취 속셈으로 팔당호 바닥을 파서 뒤집자는 정부와 거침없이 벋섰다. 바닥 준설(浚渫)로 양수리의 호소(湖沼)를 정화한다는 명분에 대항해 (시민들이) 배를 띄웠다. 환경전문가 故 전상호 강원대교수가 잠수복을 입었다.
1990년 초겨울, ‘역사의 한 장(場)’이었다. 깃발은 태풍을 불렀다. 공급자(당국, 기업)와 수요자(시민, 소비자) 간의 정보 비대칭(非對稱)이 당연하던 세상에 ‘발상법의 혁명’으로 무장한 민초(民草)의 힘은, 차츰 세상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군관민(軍官民)이 원래 어순(語順)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정치인들부터) 민관군(民官軍)으로 바꿔 썼다. 저 순서는 정치(의 반영)일 터다. 소비대중의 힘과 뜻의 결집이 저열한 저 정치를 헤집어 마침내는 소년공 출신 대통령을 키워낸 저변(底邊)이 됐으리라.
대통령이 ‘전지적 수요자 시점이 옳다, 정부는 공급자 중심 발상을 버리라.’고 벼락을 쳤다. 상전벽해(桑田碧海)에 선 듯, 상큼하다. 시민의 짐 대신 짊어졌던 저 깃발의 두 영웅, 그들과 함께한 이들의 등대 같은 마음을 새긴다. 강상헌 / 슬기나무언어원장·언론인
토막새김
미국 소비자운동가 랄프 네이더(1934년~), 한때 선풍(旋風)이었다. ‘정치’에 한 발 담그며 반전운동가 히피 등 그를 ‘섬기던’ 청년들의 뇌리에서도 차츰 열기가 식었다.
그의 ‘이념’은 당시 미국경제 핵심 자동차업계에 ‘니네들 차 결코 안전하지 않아’ 하는 경고를 시작으로 기업, 정부, 국제적 범죄조직망(網)과 싸웠다. 소시모와 동아일보 초청으로 1996년 방한한 그를 안내한 기자는, 실은 네이더스 레이다(70년대 네이더 빠)의 정신적 동조자였다.
‘여러 생각과 캠페인은, 민권(民權) 즉 사람을 향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의 눈 참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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