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사’는 (마음이) 굽은(曲) 사람(士)이다. 나비의 꿈 호접지몽(胡蝶之夢) 우화(寓話)로 세상을 오래 잔잔히 흔드는, 장자(莊子)가 지적한 어떤 인간상이다.
장자는 노자(老子)와 함께 유불도(儒佛道) 동양사상 중 도교(道敎)의 주요인물이다. 신선(神仙)을 지향(志向)하는 신비스런 분위기의 도교는 알게 모르게 우리 삶 곳곳에 스며있다.
호랑이 탄 할아버지가 웃고 있는 절집의 신선각(神仙閣)이나 질병(疾病)을 낫게 해줄 약사전(藥師殿)은 도교와 불교와의 오랜 습합(習合)으로도 보인다. 신선처럼 매양 웃고만 계시는 것 같은 장자 선생이 모처럼 독하게 주신 말씀 있으니, 새겨보자.
[마음이 굽은 사람에게는 도(道)를 말해줄 수 없다.(曲士不可語道 곡사불가어도)]
특정 관점(觀點)에 근거해 얻은 특정 지식을 진리로 여기는 사람, 장자가 제시한 곡사라는 인물상이다. 중국의 장자학자 왕보 교수(북경대 철학과)가 최근 어떤 강연에서 한 설명이다. 요즘 우리 상황으로 말하자면, 특정 의도로 모은 특정 정보를 팩트(사실)라고 우기는 것이겠다. 개미진 우화로 장자는 여러 상황을 익숙하게 풍자한다. 더 절실한 문구가 이어졌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말해줄 수 없다.(井蛙不可以語海 정와불가이어해)]
마음 굽은 사람은 우물 안 개구리다. 장자의 말씀으로 왕보 선생의 설명이지만, 하도 당연해서 이를 모를 사람은 없다. 상식인 것이다. 느닷없는 계엄(戒嚴)과 이에 따른 탄핵(彈劾)의 황당한 시국에서 무수히 듣고, 장자의 곡사론(論)이 이것이려니 아하, 고개 끄덕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필자가 ‘곡사’로 점찍은 윤석열 대통령 부류는 거꾸로 필자 같은 부류를 곡사라고 여길 수 있겠다. 판단은 두 부류 이외 부류의 몫인가?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맛을 봐야 안단 말이지?
이런 어려움에는 초월(超越 넘어섬)이나 극복(克服 이겨냄)의 사색과 결단이 필요할 수 있다. 내 지금 처한 곳이 우물 안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기도 해야 하고, 역시 장자의 우화 소요유(逍遙遊)편에 나오는 터무니없는 존재 같은 곤(鯤)을 떠올려보기도 해야 한다.
鯤이란 이름의 물고기는 길이가 몇천 리인지 모를 만큼 크다.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면, 하늘마저도 구름에 덮일 듯… 하루에 9만 리를 난다는 새, 대붕(大鵬)이 된다. 치우친 생각에 얽매이거나 또는 안개 속을 헤매는 상황과 마주서는 지혜와 용기를 떠올리는 것이다. 아름답기까지 한 ‘나비의 꿈’은 장자 제물론(齊物論)편에 나온다.
꿈속에서 나비로 즐겁다가 본래의 나(장자)로 깨어나니 내가 나비인지 나비의 꿈을 꾼 장자인지 모르겠다, 나비와 장자는 하나인가? 다만 그걸 보는 관점에 달라지는 현상인가.
보편(普遍), 두루 여럿에 미치는 일치된(흡사한) 생각 또는 개념이 가능하지 않음을 넌지시 일러준다. 그 물고기 鯤과 大鵬의 너른 등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 볼까나.
필자는 이렇게 보았으니, 이제 윤석열 대통령의 그 부류 또한 鯤과 大鵬의 등에 올라 세상을 볼 일이다. 절대(絶對)란 없다. 역(易) 즉 바뀜의 원리다. 무한(공간)과 영원(시간), 저 우주는 ‘나’만을 내세우는 옹졸한 집착으로는 짐작도 못 한다. 공부는 배움을 향한 (겸허한) 자세다. 曲士 굴레는 벗어야 비로소 글은 깨쳤다 하리라.
강상헌 / 슬기나무언어원 원장·언론인
토막새김
도교의 시조인 노자의 생각이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자연에 인공(人工) 즉 사람의 손길을 가하지 않는 것을 말함인가? 춘추시대에 벌써 ‘자연보호’를 외쳤다는 것인가?
영어 네이쳐(nature)를 일본이 번역한 한자어가 ‘자연’이다. 스스로(저절로) 自와 그러할 然, 自然을 노자가 쓴 사연(事緣) 즉 원래 뜻은 서양의 그 ‘네이쳐’를 다 담아내고도 품이 낙낙하다. 단순하고도 깊은 (서양식 표현으로는 철학적인) 어휘다.
그 일본제(製) ‘자연’은 1900년대 초 이 땅에 전해졌다. 개화(開化)의 와중에 자연스레 왜색 曲士도 생겼으리라. 지금껏 넘어서거나 이겨내지 못한 왜적의 잔재(殘滓)일 것이니….
(58564)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 오룡길 1 전남새뜸편집실 TEL : 061-286-2072 FAX :061-286-4722 copyright(c) jeollanamdo,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