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를 꿈꾸며’, 한반도 위 옛 고구려 큰 터에서 기개를 떨친 겨레의 나라 발해(渤海)를 사모하는 시(詩)로 늘 마음에 떠오른다. 예인(藝人) 서태지가 여태 아니 잊히는 까닭이다. 나라 이름에 물 수(氵, 水)와 바다 해(海)가 들어 발해는 ‘바다’가 압도적이다. 15세기 이후 대항해시대에 바다 향한 마음을 잃어 서구의 잡스런 해적(海賊) 무리들에게 짓밟힌 아시아 특히 그 중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반추(反芻)하게 한다.
그 나라 渤海를 중국은 ‘바다 동쪽의 낙낙한 나라’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고 불렀다. 이는 평가(評價)이면서 동시에 경계(警戒)의 심사였겠다. 발해의 경우처럼, 중국이 내내 주목한 우리 대한(大韓)은 ‘바다의 나라’였다. 거상(巨商) 장보고, 충무공 이순신 등 우리 역사에 해양대국의 휘황한 이름을 떨친 이들이 여럿이다.
미국의 트럼프 씨가 백악관에 다시 들어서면서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캠페인의 하나로 멕시코만(灣)의 이름을 미국만(灣) 즉 아메리카灣으로 바꿨다. 구글 지도는 곧 그새 이름을 달았다. 파나마운하나 그린란드 등에 대한 의욕과 비슷하리라 본다.
‘왜소해진 미국’을 다시금 ‘예전의 그 아메리카’로 바꿔 놓겠다는 뜻이리라. 허나 위력(威力)만으로 될까? 문명연구가 김선흥 선생의 역저 ‘1402 강리도’(네잎클로바, 2022년刊)의 한 챕터 ‘시야(視野)가 운명을 결정한다’는 제목을 생각한다. 우리의 視野는 어떤가.
‘우리나라 바다’가 있는가. 다만 동해(東海), 남해(南海), 서해(西海)는 있다. 냉소적 언명(言明)이지만, 운명을 결정하는 시야의 표출(表出)인 ‘이름’에 나라 이름 ‘대한’이 없다. 기껏 부산-대마도 사이 작은 바다에 대한해협(海峽) 이름이 달려있을 뿐.
독도는 동쪽 바다 東海에 있다. 멋진 이름이지만. 역사성 살피자면 중국이 ‘중국의 동쪽’이라고 불러준 이름을 굳이 깃발 세울 일인가? 더구나 왜(倭 일본)는 대나무도 없는 독도(獨島)를 ‘일본해의 죽도(竹島 다케시마)’라고 부르며 도둑질 버릇에 안달하지 않는가.
과거 침략의 역사나마 꽃단장해 장사짓에 써먹겠다는 속셈 모르는 바 아니나, 아닌 건 아니다. 그때마다 잘못 지적하며 혼내주지 않으면 일본은 하릴없이 2류 국가로 살아갈 것이니... ‘윤석열 정부’의 대(對)일본 행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놔두면 안중근 장군의 고귀한 마음까지 더럽힐 참이었겠다. 오늘도 홍범도 장군의 영령에 면목이 없다.
동해는, 중국이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의 4방 이민족을 깔보던 이름과 연결되는 이미지다. 왜인(倭人)들은 저기를 일본해라고 부르고 싶어 한다. 응당 저 동쪽 바다의 이름은 ‘대한국바다’ ‘대한해(大韓海)’ ‘한국해’ 중 하나가 되어야 하리라.
‘마가 운동가’ 트럼프 씨의 ‘멕시코灣의 아메리카灣 개칭’ 논리에 ‘독도의 동해’를 한국해로 바꿔야 한다는 국제해양학계나 한국의 의욕이 비중 있게 인용됐다고 한다. 韓國海로의 개칭을 아전인수(我田引水)로만 여길 일이 아니다. 이 뜻으로 국제 관습과 외교상 권리를 챙기자.
그런데, 그리하여 미국은 다시 위대한 나라가 될까? ‘트럼프의 미국’도 있지만, 인류사 어떤 (중요) 의미로서의 미국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 뜻에서 트럼프의 카운터파트(상대역)인 시진핑 씨의 중국도 우리는 주목한다.
‘무한질주’의 치킨게임과 ‘나만 (잘) 살자’는 패권주의가 오직 저들의 방법론일진대, ‘겸허(謙虛)의 철학’ 헤르만 헤세나 ‘절제와 관용의 도리’ 장자(莊子)는 현대의 이 문명을 멸시하리라.
강상헌 / 슬기나무언어원 원장·언론인
토막새김
…나의 작은 땅에 경계선이 사라지는 날/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희망들을 가득 담겠지/ 난 지금 평화와 사랑을 바래요/ 젊은 우리 힘들이 모이면 세상을 흔들 수 있고/ 우리가 서로 손을 잡은 것으로 큰 힘인데/ 우리 몸을 반을 가른 채... (1994년 ‘발해를 꿈꾸며’)
구호나 이념의 예리한 낱말은 없지만 이 착한 은유(隱喩)는 뜻이 크다. 지금 사회의 중추가 된 이들이 청소년 때 마음 주었던 그 서태지다. ‘세상 흔들’ 저 꿈 잃고 말았을까? 발해를 (되)찾는 건 지금도 뜻깊은 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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