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나아가 죽기로 싸운다면 해볼 만 하옵니다. 만일 수군을 철폐한다면 적(敵)이 만 번 다행으로 여기는 일일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적은 충청도를 거쳐 한강까지 갈 것입니다. 신은 그것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전선 수는 비록 적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로 요약되는 이순신의 장계다. 장계(狀啓)는 장수나 지방관이 왕에게 올리는 보고 문서를 가리킨다.
장계에는 이순신의 조선수군 재건에 대한 자신감이 배어있고, 일본군은 바다에서 무찔러야 한다는 당위가 담겨 있다. 불리한 전세이지만, 불굴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장계는 지금으로부터 428년 전인 1597년 이맘때, 이순신이 조선수군을 재건하며 보성에서 썼다.
‘수군 파하고 육군에 합류하라’ 날벼락
8월 14일(음력), 궂은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들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금세 빗줄기가 굵어졌다. 천둥소리도 가까이서 귓전을 때렸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왔다. 사방이 을씨년스러웠다.
비는 이튿날 늦은 오후 그쳤다. 하늘도 갰다. 이순신은 선전관 박천봉으로부터 선조의 유지를 받았다. ‘수군을 파하고 육군에 합류하라!’ 수군 철폐령이다.
뭍에서 권율 도원수를 도우라는 글이었다. 빈약한 수군으로 일본군을 감당하지 못할 것을 예견한 명령이었다.
이순신은 허망했다. ‘일본군과의 일전을 준비하며 모은 병사가 몇 명인데?’ ‘나를 믿고 따라준 군사들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동안 확보한 군량미는 또 얼마인데?’
지금껏 재건해 온 수군과 함께 절대 성원해 준 호남 백성이 떠올랐다.
‘저녁에 밝은 달이 수루 위를 비추니, 심회가 편치 않았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잠을 자지 못했다.’ _〈난중일기〉8월 15일.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이순신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붓을 들었다. 그리고 하얀 종이에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써 내려갔다. 今臣戰船 尙有十二….
이순신은 다시 수군 재건에 박차를 가했다. 보성군청 무기고를 접수하고, 군사의 군기를 점검했다. 전선 12척을 움직이고 있는 경상우수사 배설에게도 전령을 보냈다. 이순신은 보성읍성을 나서 남쪽 바닷가로 향했다. 추석 이틀 뒤인 8월 17일(음력)의 일이었다.
만약 이순신이 선조의 명령대로 육군에 편입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명량대첩은 없었을 테고,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지….
역사·문화 체험형 생활 공원 새단장 중
열선루(列仙樓)는 이순신이 왕명을 거부하고 전투를 결단한 곳이다. 당시 정면 5칸, 측면 4칸 누각이었다. 전란 때 불에 탄 것을 1610년 다시 지었다. ‘열선정’으로도 불리며 보성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 초기 읍성 성곽을 철거할 때 함께 사라졌다.
열선루를 품은 보성읍성은 낮은 구릉을 연결해 쌓은 평산성으로 둘레 895m, 높이 2.7m 규모였다. 지금의 보성군청과 보성초등학교 자리다. 초등학교 담장 너머에 이순신공원이 만들어진 이유다. 장계 쓰는 이순신 동상을 만나고, 보성에서의 수군 재건 행적도 엿볼 수 있다.
열선루는 신흥동산에 다시 지었다. 2009년 보성초등학교 신축 공사장에서 열선루 초석 일부가 나온 것이 계기였다. 보성군은 열선루의 상징성을 고려해 읍내 한가운데 신흥동산에 부지를 마련했다. 중건된 열선루는 진주 촉석루, 울산 태화루 등 조선 중기 대형 누각 형식을 따랐다. 크기는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본디 모양새와 같다. 아래 기단 위에 우물마루와 겹처마, 팔작지붕을 올렸다. 철저한 고증에다 품격을 더했다.
보성군은 열선루 일대를 역사〮문화 체험형 생활 공원으로 꾸미고 있다. 잔디광장, 전망 휴게공간, 산책로 등을 설치했다. 일상에서 역사를 접할 수 있도록 호국전시관과 성곽도 만들 예정이다. 이름도 ‘열선루공원’으로 바꿨다.
보성군은 이곳에서 10월 24∼26일 역사와 차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열선루 통합축제도 연다. 축제는 이순신 주제 공연, 장계 쓰기, 역사 강연과 차 품평회, 티-아트 페스티벌, 학생 차예절 경연, 포럼 등으로 진행된다. 이순신의 장계를 흉내 내는 장계 쓰기도 눈과 귀를 쏠리게 한다.
이순신공원, 방진관, 오충사 연계
열선루 주변에 발품 팔아 눈도장 찍을 데도 많다. 보성초등학교 옆에 이순신공원이 있다. 정유재란 때 9박 10일 보성에 머문 이순신의 조선수군 재건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방진관에선 이순신과 방씨부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순신의 장인 방진의 이름을 딴 전시관이다.
오충사는 선윤지, 선거이 등 보성선씨 충신 5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선윤지는 고려 때 왜구 소탕에 큰 공을 세웠다. 선거이는 이순신과 함께 여진족을 무찌르고, 임진왜란 땐 한산도대첩 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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