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이 선호하는 면(面)입니다. 그중에서도 흑석은 정 많고 심성 고운 분들이 사는 마을입니다. 외지인들도 쉽게 받아들이고, 전혀 상업적이지 않은 곳이에요. 언제 찾아도 편안한 마을입니다.”
김하나 곡성군 행정과 팀장의 말이다. 김 팀장은 6년 전 입면에서 근무했단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마음 편하게 해주는 흑석마을이라고 했다.
담양에서 시집와 지금껏 살고 있다는 담양댁 양현숙 어르신이 맞장구를 친다.
“다 좋은 곳이요. 여기서 50∼60년 살았는디. 사람 좋고, 산도 좋고, 들도 좋고. 내집도 편안허고. 광주 가깝고, 순창 남원도 가깝고. 교통도 좋은 동네여라.”
김 팀장과 담양댁이 칭찬한 흑석마을은 곡성군 입면에 속한다. 입면 소재지에서 가깝지만, ‘두메산골’ ‘오지(奧地)’라고들 한다. 마을에 검은 돌이 있다고 ‘검은들’ ‘금평(琴坪)’으로 불렸다. 금평이 ‘검은들’로 변하고, 검은들이 ‘검은돌’로 잘못 인식되면서 ‘흑석(黑石)’이 됐다고 전한다.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싼 산골
마을은 400여 년 전 옥천조씨가 들어와 살면서 이뤄졌다. 선조 때 청송심씨 심민겸이 정착하면서 자작일촌을 이뤘다. 흑석마을은 지리적으로 입면의 가운데에 자리한다. 상대적으로 넓은 들을 갖고 있다. 산골이지만 지세가 평탄한 편이다.
마을 뒤로는 해발 735m의 동악산이 자리하고 있다. 동악산은 암반과 계곡이 아름답다. 그만큼 산세가 험하다. 동악산에서 이어지는 형제봉, 서리봉, 마산봉이 병풍처럼 흑석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마을이 분지 형태를 보인다. 마을은 서쪽을 향하고 있다. 주민은 50여 가구, 80여 명이 산다. 특별한 소득작목 없이 벼농사를 주업으로 삼고 있다.
농산촌임에도 마을이 풍요롭다. 저수지 덕분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이른바 ‘쌍둥이 저수지’다. 흑석저수지와 매월저수지다. 마을주민들이 농업용수로 쓰던 흑석저수지는 1945년 준공됐다. 유효저수량이 44만 톤으로 많지 않았다. 가뭄이 들면 주민들 맘고생이 심했다.
저수지 활용법을 고민하던 농어촌공사가 아이디어를 냈다. 작은 산을 사이에 두고 자리한 흑석저수지와 매월저수지의 연결을 제안했다. 1998년 농업기반 정비사업이 추진됐다. 사업비만 수백억 원 투입됐다.
사업 시작 6년 만에 두 저수지가 터널로 연결됐다. 유효저수량 총 479만 톤에 달하는 큰 저수지로 거듭났다. 당초 흑석저수지의 10배가 넘는 저수량이다. 농번기 때 물이 부족하면 섬진강 물을 끌어다 저수지를 채우는 구조도 만들었다.
엔간한 가뭄에도 끄떡없이 농사지을 수 있는 물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몸집을 키운 저수지는 홍수 조절 능력도 커졌다. 짧은 시간 많은 비가 내려도 편하게 지켜볼 수 있게 됐다.
‘쌍둥이 저수지’로부터 농업용수를 받는 수혜면적이 넓다. 둔치 아래 흑석마을과 입면은 물론 겸면, 옥과면까지 1000여㏊에 이른다.
“쌍둥이 저수지를 개축할 때 우리마을 사람들이 협조 많이 했습니다. 농어촌공사의 토지 매입을 적극 도왔어요. 대신, 마을을 관통하는 수로 이설을 요구했죠. 덕분에 농사용 물 걱정을 덜고, 홍수 때 물난리가 나 밤잠을 설치는 일도 사라졌습니다. 상부상조한 거죠.” 심형섭 흑석마을 이장의 말이다.
흑석마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심 이장은 6만6000여㎡에 농사를 지으며 한우를 키우고 있다.
소득보다 주민 자긍심 더 높은 마을
저수지 주변 등산로 개설 등 수변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마을에 체육공원이 들어선 것도 그 덕분이다. 이후 전망대와 유산각이 건립되고, 재활용 쓰레기 배출장도 설치됐다.
몇 년 전엔 골목 담장에 벽화도 그렸다. 옛 작두질에서부터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풍경, 말뚝박기 놀이, 참새와 허수아비 등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덧칠된 그림이 눈에 거슬린다.
“저작권 침해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처음에 미처 거기까지 살피지 못한 잘못이죠. 근데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색깔을 덧입혀서 가렸습니다.”
심 이장의 얘기다. 요즘 마구잡이로 그려지는 마을벽화가 많은데,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마을에 특별한 문화유산이나 볼거리는 없다. 수령 150년 된 팽나무가 마을과 어우러져 있다. 마을 면적도 넓지 않다. 작은 행정마을 가운데 하나다.
그럼에도 새봄을 맞은 농기계 소리가 고요를 깨운다. 마을주민들의 자긍심이 높다. 출향인들도 ‘살기 좋은 내고향’이라며 엄지척을 한다. 풍경과 마을, 사람과 사람들의 마음결까지 하나같이 넉넉한 산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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