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를 끝낸 들녘이 싱그럽다. 논에서 우렁이와 올챙이가 노닐고 있다. 논물에 반영돼 비치는 마을과 산세도 멋스럽다.
논길을 따라 늘어선 방풍림도 운치를 더한다. 하늘을 가릴 듯 넓게 펼쳐진 가지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준다. 가을날 황금빛 들판과 형형색색 단풍도 환상이겠다.
수백 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당산나무 흔적이 길섶에 남아 있다. 당산나무는 마을의 크고작은 일은 물론 격동기를 다 지켜본 산증인이다. 하지만 여러 해 전, 태풍의 직격탄을 맞고 말았다.
방풍림을 따라 마을로 발걸음을 옮긴다. 고만고만한 집들과 골목을 서성이던 산들바람이 길손을 맞는다. 군데군데 빈터는 개망초와 자리공꽃으로 빼곡하다. 인기척을 느낀 뽕나무도 담장을 기웃거리며 반겨준다. 열매를 매단 집안의 층층나무도 깨금발을 하고 바깥구경을 한다.
‘나비’로 이름을 알린 함평의 나산면 초포리 사산마을이다. 함평이씨(咸平李氏)가 모여 사는 동네다. 초포리는 초포, 사촌, 환곡, 사산, 입석 등 5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옛날에 작은 포구가 있던 초포(草浦), 지형이 말의 옥(玉)고리 모양새라고 환곡(環谷), 뒷산의 형세가 활처럼 생겼다고 사산(射山), 선 돌이 있다고 입석(立石), 모래밭이 있다고 사촌(沙村)으로 이름 붙었다.
사촌에선 청동기 유물이 든 돌널무덤이 발견됐다. 1987년 2월 마을 진입로 공사 현장에서다. 인부들이 발견하고 전문가들이 발굴한 유물은 청동검, 세형동검, 창, 방울, 도끼, 장신구 등 26점이었다.
유적은 기원전 3~2세기에 만든 적석목곽묘였다. 깊이 판 땅에 목관을 두고, 그 위를 돌로 채운 무덤이다. 무덤과 부장 유물로 미뤄 제사장이고, 최고 권력자였을 것으로 추정됐다.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함평이씨 이건풍 가옥과 이규행 가옥
사산은 조선 중종 때 진사를 지낸 함평이씨 순지(舜枝)가 정착한 뒤 자작일촌을 이뤘다고 전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엔 사산(士山)으로 표기했다. ‘사정뫼’로도 불렸다. 마을 입구에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함평이씨 시조 이언의 13세손 이순지가 500여 년 전 자리 잡았다고 새겨져 있다.
유래비 옆에 정자도 있다. 왼편으로 줄지어 선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활시위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마을 복판에 사산사(射山祠)가 있다. 함평이씨 사당이다. 함평이씨는 고려 건국에 참여한 함풍군 이언을 시조로 하고 있다. 5세 이광봉은 고려 충숙왕 때 함풍부원군에 봉해졌다. 10세손 이춘수가 함평에 터를 잡았다.
극진한 효행과 학덕을 지닌 11세손 이접이 ‘효우공’으로 불렸다. 이접의 손자 순화·순지가 마을에 들어와 효우공파를 열었다. 효우공파 제실 영사재(永思齋)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백야산 자락에 있다.
효우공파 이순화가 만호를 지냈다. 그의 집이 ‘만호공종가’로 불리는 이유다. 그때 지은 집을 후손들이 지키며 대를 이어 살아왔다. 지금의 ‘이건풍 가옥’이다. 초포리에 정착한 함평이씨의 종가다.
이건풍 가옥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집이 여러 차례 고쳐지고 지붕이 개량됐다. 건물은 높은 기단 위에 들어선 안채와 사당, 헛간채로 이뤄져 있다. 사랑채 2동은 50여 년 전에 사라졌다고 한다.
안채가 서쪽을 바라보며 ㄷ자형 평면구조를 하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에 대청 2칸이 배치됐다. 홑처마에 팔작지붕이다. 남도에서 일반적인 一자형이 아니다. 독특하다.
이재형, 이근행, 이건풍으로 이어진 종손이 모두 함평향교의 전교를 지낸 것도 별나다. 3대가 연이어 전교를 맡은 사례는 매우 드물다. 전교는 지역에서 으뜸가는 학자가 맡는다. 지위와 영향력이 수령 다음으로 높았다.
바로 옆에 이규행 가옥도 있다. 정유재란 때 순절한 이충인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예전엔 꽤 규모가 있는 집이었다. 지금은 안채만 남아 있다. 7칸 접집이다. 상량문에 적힌 연호로 17∼18세기 지어진 것으로 추측한다. 300여 년 됐다. 그럼에도 기둥 등 주요 자재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고택 텃밭도 풍성하다. 나무와 꽃이 무성하다. 지역문화와 유산에 큰 관심을 갖고있는 이건종이 살며 관리하고 있다. 문화관광해설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건종은 여러 가지 차를 만들고 술을 담가 지인들에게 준다. 선조의 나눔과 덕을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다.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 앞장선 사람들
초포리를 품은 나산면은 조선시대 모평현에 속했다. 1409년 인근의 함풍현과 모평현이 합해져 함평현이 됐다. 함평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중심에 섰다. 강골촌으로 꼽는 3성(장성, 곡성, 보성)·3평(함평, 남평, 창평)의 거점이었다.
함평이씨는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운동에도 앞장섰다. 이칠헌, 이계동을 비롯 이권범, 이도범, 이양범, 이인행, 이윤행, 이행록이 함평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5·18민주항쟁 때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킨 시민군 이양현도 사산마을 사람이다. 그는 항쟁지도부 기획위원으로 활동하며 불의한 신군부에 맞서 끝까지 싸웠다. 이양현은 이규행 가옥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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