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성(1894~1944)은 강진군 남성리 출신 독립운동가이다. 평양에서 유학하던 중 독립운동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일제 식민통치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그는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제기된 민족자결주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황호경 등 기독교인과 동경 유학 중 귀향한 김안식과 함께 3월 25일 강진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하지만 곧 일제에 발각되었으며, 다행히 은신하여 피해를 면하였다.
이후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갖고 귀향한 오승남을 만나 서울소식을 듣고 다시 한번 만세시위 계획에 착수하였다. 거사일은 4월 4일 강진읍 장날로 정하였다.
이기성은 읍내 남포리교회 강주형·박영옥·김춘석 등과 함께 거사를 논의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하였다. ▲작업장소를 분산하여 기독교회당, 이기성과 박영옥 집에서 작업을 진행한다. ▲각 작업장은 각자가 독립적인 활동을 취하여 상호연락을 신중히 한다. ▲여성을 구하여 외부의 경계와 일경의 움직임 등을 파악한다. 준비는 잘 되었다.
4월 4일 강진장날 5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이기성과 동지들은 태극기 300여 장과 독립선언서 70여 통, 독립가 20여 장을 배포하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거사 신호탄인 교회의 정오 종소리를 기점으로 김후식이 군청 뒤 산마루에 대형 태극기를 세웠다. 이기성 등은 장터에 모인 군중에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주며 독립만세 시위를 이끌었다.
이은표와 박일춘을 중심으로 한 강진보통학교 학생들도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시장으로 나와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에 합세하였다. 모여있던 군중들이 모두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긴급 출동한 일본 경찰과 헌병의 발포에 이은 무력 진압으로 시위는 중단되었다. 이기성은 주동자에 포함되어 체포되었고, 징역 2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기성은 강진지역 독립운동을 이끈 중심인물로, 그의 용기와 희생은 오늘날까지도 지역사회와 후손들에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강진군은 매년 4월 4일 ‘강진4․4 독립만세 운동’ 기념식을 개최하여 이기성을 비롯한 27인의 독립운동가를 추모하고 있다. 행사에는 지역주민과 유족이 참여하여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있다. 남포마을에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김남철 전남교육연구소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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