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문동나루터에 섰다. 드넓은 갯밭 너머로 대전해변이 손이 잡힐 듯하다. 우도 주변에 반짝이는 윤슬도 아름답다. 짭조름한 내음을 실어오는 마파람도 시원하다.
득량 바다와 접한 노해에 널따란(6930여㎡) 스마트 온실이 도드라졌다. 유러피안 채소를 재배하는 ‘거북이농장’이다. 고흥군 대서면 신기거북이마을에 있다. 어촌체험마을로 명성이 자자한 동네다.
농장에는 유러피안 채소가 푸름을 뽐낸다. 은은한 단맛이 자랑인 버터헤드, 줄기가 아삭한 조커리, 청량감이 뛰어난 바타비아, 샐러드용으로 좋은 아카네, 샌드위치에 넣어 먹는 프릴라이스가 ‘틀밭’을 따라 줄을 지었다.
수확을 앞둔 넓적한 버터헤드 잎 하나를 따서 입에 넣었다. 쌉싸름하면서도 아삭한 식감이 남다르다. 달곰삼삼하기도 하다. ‘씹을수록 맛이 깊다’는 쇼핑몰 댓글이 떠오른다.
폐각 듬뿍 넣은 ‘틀밭’ 구축 재배
거북이농장은 주위에서 흔히 보는 수경(양액)스마트 온실이 아니다. 스마트팜에 토경(흙)을 접목한 하이브리드 온실이다. 거북이농장의 유러피안 채소는 흙 속의 영양분을 먹고 자란다. 소비자들이 호평하는 이유 중 하나다.
거북이농장은 이를 위해 3km에 달하는 토경 틀밭(너비 120cm×높이 40cm)을 구축했다. 폐각을 듬뿍 넣어 땅심을 높이고, 뿌리 건강을 위해 코코피트(코코넛 껍질)를 혼합해 넣었다.
가온(난방)하지 않는 저탄소 농업도 실천하고 있다. 온화한 고흥의 자연환경 덕분이다. 고약한 겨울 날씨에도 보온 커튼 하나로 거뜬히 겨울을 난다.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요즘 소비 트렌드와 궤를 같이한다.
친환경 농업도 실천하고 있다. 병해충은 친환경 약제로 방제한다. 잡초는 일일이 손으로 뽑는다. 농사 기간이 일천해 아직 ‘친환경인증’을 받지 못했다. 인증 자격이 주어지는 9월에는 인증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비자에게 보내는 채소는 ‘당일 수확·당일 발송’이 철칙이다. 주문이 들어오는 순간 수확해 2~3시간 큐어링 과정(수확 시 발생한 상처 치유 과정)을 거쳐 배송한다. 신선도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거북이농장 채소는 포기로 배송됩니다. 잘린 줄기 단면에서 진액이 흘러나오는데,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수확 즉시 큐어링 과정을 거칩니다. 상처가 치유되면서 절단면이 적갈색으로 변하게 되죠. 간혹 오염된 게 아니냐고 묻는 고객이 있는데, 오히려 신선함을 증명하는 흔적이니 안심해도 됩니다.”
택배 포장을 하던 신정빈 대표의 말이다. 생산량 대부분은 직거래로 팔린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로도 많이 나간다. ‘거북이농장 채소’로 검색하면 쉽게 만날 수 있다. 온라인 첫 런칭 기념으로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고흥군 쇼핑몰 ‘고흥몰’에서도 만날 수 있다. 전화로도 주문할 수 있다.
취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네이버 스토어에서 주문해 봤다. 이틀 후 도착한 유러피안 채소는 농장에서 접했던 싱싱함 그대로다. 보랭제로 생수를 얼려 넣은 마음씀씀이도 예쁘다.
지역과 상생하는 농업회사 만들 터
신기거북이마을에서 나고 자란 신 대표는 초보 농부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농사를 거들며 자랐지만 자기 농사는 처음이다.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기업 경영을 배우면서 진로를 수정했다. 셀러리맨에서 농업인으로. 채소 농사를 지으며 농업에 경영을 접목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농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대학을 마치고 곧바로 첨단 농업 교육기관인 고흥 스마트팜혁신벨리에 입학했다. 안타깝게도 혁신벨리에는 잎채소 과정이 없었다. 가장 대중적인 작목인 토마토를 선택해 주야로 스마트팜 기술을 익혔다.
2022년 20개월 교육 과정을 마치고, 독학으로 잎채소류 공부를 시작했다. 전국의 이름난 잎채소 재배 농가를 찾아다니며 벤치마킹했다. 동시에 시험 농업을 병행하며 차근차근 준비했다. 자신감이 생기자 지원 사업을 신청해 지난해 12월 스마트온실을 완공했다.
“재배 방법을 결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견학을 다닌 곳 대부분이 수경재배하더라고요. 일의 효율성에서는 수경재배, 채소 질은 토경 재배가 좋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장단점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시험재배에 들어갔다. 4개월 간의 시험재배결과 수경재배는 손이 덜 가고 편했다. 물과 양액으로 양분을 공급하고, 재배 기간도 짧았다. 생산성도 좋았다. 반면, 토경재배는 손이 많이 갔다. 허리를 굽혀 일해야 하는 탓에 고달프기까지 했다. 재배기간도 길었다.
“그럼에도 토경 재배를 선택했어요.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만류하는 이도 있었죠. 그런데 대지의 힘, 땅심이 만들어낸 격차는 대단했어요. 채소가 아삭하고 맛이 좋았어요. 저장성도 뛰어났고요. 허리를 굽히고 일하는 단점은 틀밭을 높여 보완했죠. 지금 생각해도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흙에서 자란 채소만 찾는 마니아층이 두텁다는 점도 한몫했다. ‘후발주자인만큼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속내도 숨어 있었다. 모종을 2주 간격으로 심어 365일 내내 고품질의 유러피안 채소를 수확하는 생산 체계도 완성했다.
“유리피안 채소 생산에 국한하지 않겠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키우는 유자와 마늘 등 지역 특산물을 결합해 지역 농가와 상생하는 농업회사로 키우고 싶습니다.”
신정빈 대표가 그리는 거북이농장의 청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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