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역광장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목포민중항쟁의 중심부였다. 22일 목포시민민주투쟁위원회가 결성되어 23일 새벽까지 수만명의 시민들이 모여 ‘계엄령철폐’, ‘김대중 석방’ 등을 외치며 매일 수차례의 집회와 횃불시위를 진행하였다. 항쟁이후 5·18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는 투쟁의 현장이었으며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열망하는 시민들의 의지를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목포역 광장에 있는 ‘전라남도 5·18 사적지 목포 1호’ 비문이다. 목포역 광장처럼 1980년 오월항쟁 당시 민주주의를 부르짖은 역사적인 현장이 5·18민중항쟁 사적지로 지정돼 있다. 광주에는 전남대학교 등 32곳이 지정돼 있다. 전남에는 목포역광장을 비롯해 해군3함대사령부 헌병대 옛터, 화순 너릿재, 해남 우슬재, 무안 버스터미널 등 29곳이 지정돼 있다.
이들 사적지에는 빠짐없이 5·18민중항쟁 사적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1980년 오월항쟁 당시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군부에 항거했던 시민군 등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커다란 돌로 세워진 표지석에는 오월항쟁 당시 사적지의 상황, 사적지 번호 등이 한글과 영문으로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장소와 사적지 번호가 국문과 영문으로 표기돼 있다.
표지석엔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 오월항쟁 45주년을 앞두고 드는 의문이다. 표지석을 제작한 이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아쉽게도 표지석에서 제작한 이의 이름은 찾을 수 없다. 수소문 끝에 제작자를 만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취재를 온 작가도 표지석 제작자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하더라고. 지금이라도 표지석에 이름을 새겼으면 좋겠다고….”
오월정신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길
5·18민중항쟁 사적지 표지석을 구상하고 디자인한 이는 김왕현(71) 전 동신대학교 교수다. 전국조각작가협회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한 원로 조각가다. 몇 해 전 강단을 떠나 지금은 나주시 산포면에서 ‘금비 김왕현미술관’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김 작가와 함께 나주공고 사적지를 찾았다. ‘전라남도 5·18사적지 나주 4호’로 지정된 곳이다.
= 표지석이 타원형입니다.
“도시 대부분의 건축물이 직선과 직면이거든요. 도시와 조화를 이루고, 시각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타원형으로 제작한 겁니다. 조각에서 타원은 ‘아름다운 조형’이라고 합니다. 돌은 화강석 원석을 사용했고요. 오랜 세월 보존될 수 있도록 돌을 붙이지 않고 원석을 깎았어요. 무게 중심을 위해 밑은 두껍게, 위쪽은 조금 얇게 깎았죠. 안정감을 더하기 위해 좌대도 팠고요. 글씨는 국민과 영문을 타원에 어울리게 배치하되 세월이 흘러도 낡거나 녹슬지 않게 동판을 사용했습니다.”
= 중앙의 구멍에서 방상형으로 뻗어 나오는 5개의 선은 사람의 모습인데요
“맞습니다. 사람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중앙의 구멍은 총탄을 맞은 시민의 가슴이고요. 가슴에서 시작된 5개의 선은 사람의 머리와 두 팔, 두 다리를 표현한 것입니다.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지면서도 두 팔을 높이 쳐들고 ‘민주화’를 외쳤던 시민의 모습을 새긴 것입니다.”
= 가슴의 둥근 문양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여러 개의 둥근 문양이 안에서 바깥쪽으로 커지게 조각했습니다. 광주·전남에서 시작한 민주화의 빛이 전국으로,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밑에 있는 청동 횃불은 뜨겁게 타오르는 민주화를 상징하고요.”
= 어떻게 제작하게 됐습니까?
“학교(동신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였어요. 1996년으로 기억됩니다. 5·18묘역 성역화 사업의 하나인 ‘3·1마당’ 조형물을 공모하더라고요. 응모해 당선됐어요. 1998년엔 ‘5·18민주나무 헌수기념비’를 제작 설치했어요. 그것이 인연이 돼 ‘5·18 민주화운동 사적지 표지석 제작 설치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가 표지석 구상과 디자인까지 하게 됐죠. 사적지에 설치된 바로 이 모양이죠.”
=직접 돌을 다듬었습니까.
“(내가) 스케치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광주시에서 설계사무소에 의뢰해 도면을 만들고 입찰에 부쳤어요. 감수자로도 참여했는데 작업자들이 ‘실물모형이 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사비를 털어 1m짜리 실물도 만들어 줬죠. 바로 이 모양이죠.”
= 표지석을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표지석에서는 작가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어요.
“이름을 새기기가 미안했어요.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리는 기념물에 이름을 새긴다는 것이 마치 내 광고하려는 것 같고….”
김대중 전 대통령 동상도 제작
오월항쟁의 굵직한 서사가 투영된 작품 중 여러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쳤다. 국립5·18묘역 성역화사업 부조 조형물 ‘3·1마당’과 5·18민주나무 ‘헌수기념비’를 비롯해, 안병하 치안감의 흉상(전남경찰청 앞)도 김 작가의 작품이다. 안병하 치안감은 오월항쟁 당시 전남도경국장(현 전남지방경찰청장)으로 재직하다 신군부의 강경 진압 명령을 거부해 보안사에 끌려가 당한 혹독한 고문 후유증 고생하다 세상을 떴다.
오월항쟁과 뗄수 없는 김대중 전 대통령동상(전남도청 앞 남악중앙공원‧높이 450cm)도 김 작가의 작품이다. 당시 제작했던 동상틀은 여전히 그의 작업실에 보관 중이다.
전남을 빛낸 12인의 흉상, 아덴만 여명작전 전적비, 목포현충탑도 그의 손을 거쳐서 탄생했다. 공공미술작품 제작자로도 이름이 높은 연유다.
신안군 비금면에서 나고 자란 김 작가는 목포에서 중고교를 나온 뒤 조선대학교 미술학과와 동국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수많은 개인전과 그룹전, 헝가리·폴란드·독일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조각에 입문한 지 50여 년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 최근 들어 새로운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기하학적인 추상 작품인 ‘Positive(포지티브) & Negative(네거티브)’ 시리즈다. 형태와 여백의 관계를 3차원으로 표현한 이지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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