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맛깔스럽다. 톡 튀는 청량감도 남다르다. 깔끔한 뒷맛은 덤이다. 산뜻한 맛이 또 한잔을 부른다. 절로 헤벌쭉해진다.
생막걸리 ‘안양동동주’다. 광산김씨 종가의 가양주를 제품화한 술이다. ‘천년종가주’로도 불린다. 수입 밀 누룩을 사용했음에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장려상을 받으며 주위를 놀라게 했다. 국가지정 술 품질인증(가-213)도 받았다. 자타가 인정하는 장흥 대표 생막걸리다.
생막걸리 ‘햇쌀이하늘수’도 유별나다. 젊은층 입맛에 맞춰 안양동동주를 조금 변형했다. 2009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진행한 ‘햅쌀 막걸리 프로젝트’ 참가를 위해 만들었다.
“안양동동주와 햇쌀이하늘수는 제가 직접 농사지은 친환경 햅쌀과 찹쌀에 누룩을 넣어 저온 발효와 저온 숙성해 양조합니다. 저온에서 10일간 발효하고 0~1도에서 15일간 숙성하죠. 풍미가 좋아지고, 부드러움은 배가 됩니다. 잡내도 잘 빠지고요. 술맛의 절반을 결정하는 물은 지하 200m에서 끌어올린 천연 암반수를 씁니다. 우리 양조장이 90년간 한자리에 있는 이유입니다.”
안양동동주와 햇쌀이하늘수를 빚는 안양주조장 채창헌(54) 대표의 설명이다. 채 대표는 전남전통주생산자협회장과 한국술생산자협회 광주전남지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안양주조장은 장흥군 안양면 주교마을에 있다.
전남전통주생산자협회장으로 활동
채 대표는 양조장 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중학교 때부터 서울에서 생활했다.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남부럽지 않게 생활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술과 인연을 맺었을까.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전통주업계에는 ‘한파’가 휘몰아쳤다. 소주·맥주에 밀려 매출이 급감하고 농촌인구 감소, 지역 제한에 묶여 극심한 경영난을 겪어야 했다. 전통주업계 암흑기였다.
안양주조장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혈혈단신으로 고군분투하던 어머니(김연초)는 경영난 타개를 위해 ‘종갓집 가양주 제품화’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어머니께서 광산김씨 종가에서 자랐어요. 종가에서 명절과 제사 때 빚던 동동주 양조법 그대로, 쌀과 찹쌀로 막걸리를 빚었죠. 조금이라도 매출을 높여보려는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채 대표가 말하는 안양동동주의 탄생 배경이다. 당시만 해도 막걸리는 밀가루로 빚는 것이 대세였다. 쌀 막걸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안양동동주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지만 지역 제한의 벽은 난공불락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애면글면하던 어머니는 결국 막내아들인 채 대표에게 SOS를 보냈다. 채 대표가 서울 생활을 접고 장흥으로 내려온 까닭이다. 그가 26살이 되던 해였다.
“연락을 받고 급히 집에 와 보니 예상보다 심각했어요. 양조장 한 달 매출이 제 월급보다 적더라고요. 부도 직전이었어요. 어머니를 두고 서울로 올라갈 수 없었어요. 전화로 일단 사표부터 냈죠.”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막막하기만 했다. 폐업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야반도주’하는 이들의 심정이 이해됐다. 하지만 부도낼 수는 없었다. 어머니를 믿고 보증 선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버틸 수밖에 없었다. 낮에는 농사에 전념하고, 저녁이면 양조장에서 술과 씨름했다. 되풀이되는 일상이었다.
그렇게 3년을 생활하며 지낸 어느 날,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막걸리 지역 제한폐지였다. 양조장으로 전화가 빗발쳤다. ‘가게로 막걸리를 갖다 달라’고.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삽시간에 장흥을 점령하고 인근 강진, 보성에까지 영역을 넓혀갔다. 종갓집 막걸리의 힘이었다.
“안양주조장 거래처가 500곳이 넘지만, 영업을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마케팅보다는 제품의 힘을 믿습니다.’”
전통주연구원 설립해 연구 매진
주조장이 활기를 되찾자 채 대표는 술에 집중했다. 부채를 갚아가며, 다른 한편으론 양조장 환경 변화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양조장을 리모델링하고, 장비도 현대식으로 교체했다. 위생에 중점을 뒀다. 저온창고도 새로 마련했다.
밀가루 막걸리 양조는 멈추고 쌀 동동주에 집중했다. 브랜드 이미지 개선을 위해 ‘전통주 면허’ 획득에도 도전했다. 주세 감면과 온라인 판매를 통한 전국 진출, 안양주조장 홍보에 도움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수입 밀 누룩 1%가 발목을 잡았어요. 전통주 면허는 100% 국산 원료를 사용해야 받을 수 있거든요. 누룩만 바꾸면 전통주 면허를 받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누룩을 바꾸면 맛이 달라지거든요. 어머니께서 평생을 바쳐 만든 술인데…. ‘기업이 철학을 잃으면 그 기업은 망한다’는 수업 시간 교수님 말이 떠오르더라고요.”
채 대표는 안양주조장의 정체성을 위해 전통주 면허를 과감하게 포기했다. 대신 전통주 연구 중심의 자회사를 설립했다. 해썹(HACCP·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시설을 갖춘 ‘복덩이전통주연구원’이었다.
복덩이전통주연구원은 양조장 속의 양조장이다. 그는 이곳에서 생막걸리를 비롯해 약주, 청주, 소주 양조법을 연구하고 있다.
“새로운 술을 빚어 전통주 인증도 받았습니다. 시음회를 통해 미진한 부분도 보완했고요. 이들 전통주는 온라인에서만 선보이려 합니다. 쇼핑몰 제작이 거의 끝나갑니다. 곧 찾아뵙겠습니다.”
채 대표의 말에 자신감이 흠뻑 배어 있다.안양주조장 ☎061-862-6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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