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장산이 마을을 감쌌다. 마을 앞으로는 드넓은 간척지와 고흥만이 펼쳐졌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길지임을 직감한다.
커다란 자연석 위에 쌓은 돌담이 멋스럽다. 고샅을 따라 이어지는 돌담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돌담을 휘감은 마삭나무 줄기에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150살 먹은 노거수 팽나무도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보성군 조성면 수촌마을이다. ‘산수가 빼어나고 땅이 비옥’해 붙여진 이름이다. 전라남도 마을공동체 우수마을이자 ‘청정전남 으뜸마을’이다. 37가구 69명의 주민이 어우렁더우렁 살고 있다.
산수 빼어나고 땅 비옥해 ‘수촌’
마을이 정갈하다. 농촌에서 흔한 농사용 비닐 조각 하나 보이질 않는다. 청정전남 우수마을답다. 청정전남 으뜸마을은 주민이 직접 ‘내 마을은 내 손으로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특화 사업이다. 주민 화합과 공동체 회복에도 큰 힘이 되고 있다.
마을 지킴이 당산나무에 기댄 우산각에 서자 고흥만과 접한 드넓은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들녘 한 가운데에 우뚝 솟은 기상관측탑(307m)이 도드라졌다. ‘에펠탑’에 버금가는 높이다.
마을문화센터(마을회관) 앞 벽화도 멋스럽다. 담장 위로 솟은 감나무 줄기를 배경 삼아 감 따는 아이들의 모습을 묘사했다. 신안 암태도 기동마을 삼거리에 있는 ‘동백꽃 할머니 할아버지 파마머리 벽화’을 연상케 한다.
마을 곳곳에 있는 커다란 바위도 이채롭다. “예부터 마을에 크나큰 바위가 많았는데 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바위들을 발파해 돌담 기초석으로 사용했다”는 어르신의 전언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돌담이 멋스러운 이유다.
80살 이상 어르신들로 구성된 ‘9988(구구팔팔)반’이 관리하는 ‘돌담숲길 꽃밭’에 놓인 고무신과 등산화 화분이 깜찍하다. 마을 명물인 돌담과 마삭줄을 그려 넣은 우편함도 앙증맞다.
“우리 마을 이쁘지라. 찾아온 사람마다 ‘멋지다’고 난리여. 이사 오고 싶다는 사람도 많아. 다 우리 이장 덕분이제. 사고 치는 데는 선수여. 오늘은 또 무슨 사고를 치고 왔는지 모르겠구먼.”
어르신의 농익은 한마디에 모두 박장대소한다. 마을회관을 들었다 놓는다.
‘돌담숲길 환경보호 운동’ 진행
수촌마을의 변화는 3년 전인 2022년부터 시작됐다. 정년퇴직하고 고향에 정착한 주광중 씨가 이장을 맡으면서부터다.
“자칫 마을이 사라지게 생겼더라고요. 뭘 하긴 해야겠는데 또렷한 계획은 떠오르지 않지…. 그때 전라남도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를 만났어요. 컨설팅과 교육을 받고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인 ‘새싹’ 단계부터 시작했죠.”
주 이장의 말이다. 뜻을 같이하는 주민들과 머리를 맞댔다. 마을공동체 사업을 전담할 ‘수촌마을복지회’도 조직하고 목적의식적으로 공모사업에 도전했다. 청정전남 으뜸만들기, 보성 600사업, 어르신 소득창출 사업 등을 통해 마을을 조금씩 바꿔갔다.
위태위태하던 돌담을 정비하고, 비만 오면 토사가 흘러내리는 곳도 다시 쌓았다. 마을 자원을 조사하고, 마을 역사를 담은 이야기 지도도 만들었다. 쓰레기로 가득하던 공터를 치우고 꽃을 가꿨다. 메밀도 심어 메밀묵을 만들어 나눠 먹으며, 결속과 화합을 다졌다.
뿐만 아니다. 성인문해학교와 이웃 동네 주민과 즐기는 ‘소리 어울룸축제’도 열어 함께 어울렸다. 마을 브랜드 ‘돌담숲길’도 개발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을의 변화가 피부에 와닿았다. 바뀐 건 마을 풍경만이 아니다. 주민들 마음가짐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2023년과 2024년 연속 청정전남 우수마을로 선정됐어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게 가장 큰 소득입니다.”
주 이장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수촌마을의 진화는 올해도 계속된다. 올해 핵심 사업은 탄소중립이다. 마을의 미래를 친환경에서 찾겠다는 주민 의지를 담았다. 마을이 품은 아름다운 자연을 보전해 다음 세대에 수려한 삶의 터전을 물려주겠다는 포부도 담았다.
구체적인 계획도 이미 실행 중이다. 개인별로 공기정화 식물 ‘스킨답서스’를 키우고, 일명 ‘지구를 지키는 돌담숲길 환경보호 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요일마다 임무를 수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월요일은 종이 아껴 쓰기, 화요일은 물 아껴 쓰기, 수요일은 에너지 절약하기다. 목요일은 음식물 아끼기, 금요일은 일회용품 안 쓰기, 토요일은 소비 절약이다. ‘쓰레기 소각 금지’는 날마다 주어지는 임무다.
임무를 완료할 때마다 마을회관에 있는 포도송이에 스티커를 붙인다. 15가구가 참여하고 있다. ESG 마을공동체 역량강화, 업사이클링, ESG 실천 이웃마을 네트워크 나눔축제 등도 준비하고 있다.
장기적으론 마을 전체를 하나의 정원으로 꾸며갈 계획이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동네, 활기찬 동네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우산각 주변을 쉼터로 꾸미고, 주변 숲속엔 무인카페와 숲속 작은 도서관도 지을 예정이다. 집 마당에 잔디를 입힐 계획은 진행 중이다. 이미 10가구가 잔디를 깔았다.
“누구나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드는 것이 목표지만 시급한 것은 문화생활관(마을회관)에 주민 생활관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혹서기와 혹한기에 어르신들이 함께 지낼 공간이 필요합니다.”
주 이장의 지원 요청이다.
(58564)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 오룡길 1 전남새뜸편집실 TEL : 061-286-2072 FAX :061-286-4722 copyright(c) jeollanamdo,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