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정문을 통과하자 높디높은 건물이 막아선다. 길이 190미터, 높이 22미터에 달하는 대형 실내 선박건조장이다. 아파트 8층 높이와 맞먹는다. 까마득한 높이에 고개가 뻐근해진다. 건조 중인 선박 주위로 층층이 설치된 안전대와 비계들이 마치 아파트 건설 현장을 연상케 한다.
드넓은 작업장에선 요란한 망치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푸르스름한 용접 불꽃도 여기저기서 번쩍인다.
“서남권에서 이 정도 실내건조장을 보유한 조선소는 손가락으로 꼽습니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연중 작업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작업 효율만 좋은 게 아닙니다. 직원들이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작업해야 품질도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마중 나온 윤박영 마케팅본부장의 설명에 고개가 절로 끄떡여진다. 영암 대불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중앙해양중공업의 한낮 풍경이다.
고교생 공동실습선 ‘해누리호’ 건조
중앙해양중공업은 친환경 선박 건조 전문기업이다. 선박 설계부터 건조, 진수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인프라를 자랑한다. 중소형 조선소로는 보기 드물게 진수 설비인 ‘플로팅도크’까지 갖추고 있다.
신생 조선사이지만 친환경 선박 건조 분야에선 명성이 자자하다. 수산계 고교생들의 공동실습선인 ‘해누리호’를 건조하며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해누리호는 전기추진 하이브리드 선박이다. 입출항이나 연안에서는 전기로, 먼바다에서는 동력의 힘으로 운항한다.
한국해양수산연구원이 발주해 지난해 12월 인도했다. 전국 5개 시도교육청(전남광주, 인천, 충남, 경남, 경북)이 공동 운영하고 있다. 올 3월, 부산항을 출발해 일본 오사카와 기타큐슈 등지를 오가며 고교생들의 승선실습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도 했다.
해누리호는 조난 대비 생존훈련장과 어군 탐지용 드론 교육시설, 실제 바다 상황과 같은 선박조정 시뮬레이터 등 다양한 스마트 교육 장비를 갖추고 있다. 특히 바다 한가운데서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저궤도 위성통신인 ‘스타링크’를 장착한 점이 실습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후문이다.
중앙해양중공업은 현재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이 발주한 900톤급 하이브리드 국가어업지도선 3척을 건조 중이다. 700억 원대에 이르는 대규모 사업이다. 어업지도선 역시 해누리호와 마찬가지로 친환경 전기추진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했다.
“현재 서남권에서 HD현대삼호나 대한조선을 제외하고, 이 정도 규모의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곳은 우리 중앙해양중공업이 유일할 것입니다.”
김준영 오프쇼어팀 이사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국가 어업지도선 3척 건조 중
지금은 친환경 선박 건조 기업으로 이름이 높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대형 조선소가 발주한 선박 블록을 제작해 납품하던 회사였다.
“블록 제작은 발주처인 대형 조선소가 설계 도면과 자재까지 전부 대줍니다. 우리는 그저 도면대로 만들기만 하면 됐죠. 말이 블록 제조업체지, 인력 공급 회사나 다름없었습니다. 회사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어요.”
윤 본부장의 회상이다. 하청 구조의 한계를 탈피하지 못하면 조선업에 불황이 닥쳐오면 가장 먼저 타격받을 것이 자명했다. 과감한 사업 전환이 필요했다. 주목한 먹거리는 세계적인 흐름에 맞춘 ‘친환경 선박 건조’였다.
“정말 무지하게 고생했습니다. 밤낮없이 하이브리드 선박 건조 기술 한 우물만 팠어요. 기술력만큼은 최고라고 자부했지만, 신생 업체라는 편견 때문에 실력을 보여줄 기회조차 잡기 어려웠습니다.”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발주 기관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기술력을 설명하고 시연을 거듭했다. 눈물겨운 노력은 수백억 원 규모의 ‘해누리호’ 수주로 이어졌다. 동종업계에서는 ‘걸음마를 갓 뗀 신생 조선사가 대어를 낚았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모해 보였던 도전은 블록 제조 기업에서 선박 건조 기업으로의 사업 대전환 신호탄이 됐다.
국내 굴지의 기업과 어깨 나란히
친환경 선박 건조 분야에서 폭풍 성장하고 있는 중앙해양중공업은 신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전북 부안 해역에 건설 중인 ‘서남권 해상풍력 확산단지1’ 800㎿(메가와트)급 공공 공모해역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수원 컨소시엄’ 일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컨소시엄에는 동서발전, 한전KPS, 한국전력기술, 한화오션, 두산에너빌리티, IBK금융그룹, 삼일C&S 등 국내 굴지의 기업이 망라돼 있다.
중앙해양중공업은 해상풍력 사업 진출을 발판 삼아 연관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해상풍력 지원선(SOV)’ 건조다. SOV는 해상풍력 발전기의 운용과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들이 바다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작업할 수 있도록 돕는 특수 선박이다.
중앙해양중공업은 SOV를 통해 차별화된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미 국내 해상 환경과 실정에 맞춘 독자적인 선박 설계도 마쳤다. ‘바다 위 호텔’로 건조할 계획이다. 여기에 해상풍력에 투입되는 특수선을 위한 ‘특수선 전용 부두 건설’이라는 로드맵도 수립했다.
“대만에 타이중이라는 작은 도시에 해상풍력 기지가 들어서면서 주변에 메트로시티가 조성되는 등 활기찬 도시로 변모했습니다. 서남권이 타이중처럼 됐으면 좋겠습니다. 중앙해양중공업이 일조하겠습니다.”
윤 본부장이 그리는 중앙해양중공업의 청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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