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룩 특유의 내음이 코끝을 간질인다. 아낙네 10여 명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치대기에 열중이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큼지막한 대야에 멥쌀과 누룩을 넣고 연신 저어댄다.
‘어떻게 치댔는가에 따라 술맛이 달라진다’는 강사의 말에 손놀림이 더욱 빨라진다. 청일점 팔뚝에도 핏대가 도드라졌다. 치대기는 체험객이 하나둘 기진맥진해질 즈음에야 끝났다. 30분이 훌쩍 지나간 후였다. 대야 속 멥쌀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멥쌀과 누룩도 걸쭉해졌다.
“보통 일이 아닌데요. 여럿이 함께 하니까 했지, 혼자 하라고 하면 못 하겠는데요.”
한 체험객의 너스레에 모두 고개를 끄떡이며 맞장구를 친다. 농업회사법인 ‘예랑혜랑’의 ‘전통주만들기 체험’ 현장이다. 예랑혜랑은 화순군 청풍면 풍암마을 옛 입교역 터에 자리하고 있다. 전국 최대를 자랑하는 ‘화순파크골프장’ 부근에 있다. 2년을 기다려야 맛볼 수 있는 남도전통주 ‘깃듬정 쌍화주’를 빚는 곳이다.
아홉 가지 한약재 구증구포해 빚어
남도전통주 ‘깃듬정 쌍화주’는 화순군 제1호 지역특산주다. ‘정성이 깃든 술’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전통음식 명인이자, 대한민국 치유음식대가인 이미숙 명인이 빚는다.
“종갓집에서 자랐어요.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도와 조청과 한과를 만들고 어깨너머로 술 빚는 법도 배웠죠. 술이 몸에 좋을 리 없겠지만 기왕 마신다면 조금이라도 좋은 술을 마시는 게 낫지 않겠나 싶어 한약재를 넣어 만들게 됐죠.”
이 명인의 말이다. 쌍화주는 한약재를 넣어 빚은 약주다. 찹쌀이 뿜어내는 달보드레한 맛이 매력적이다. 알코올 도수 15도임에도 목 넘김이 부드럽다. 풀 내음과 꽃 향 섞인 은은한 향도 고혹적이다. 쌍화차 내음도 엷게 배어있다. 쌍화주를 맛본 이들의 이구동성이다.
쌍화주는 유기농쌀과 전통누룩에 유자쌍화차를 넣어 빚는다. 유자쌍화차는 당귀, 감초, 생강, 대추, 계피 등 아홉 가지 한약재를 특성에 맞게 손질해 구증구포한 후 유자에 넣어 1년 이상 숙성했다. 유기농쌀은 예랑혜랑의 최성수 대표가 직접 재배한다. 최 대표는 술을 빚기 전까지 유기농 복숭아 재배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쌍화주를 빚는 과정은 지난하다. 쌀을 씻는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5~6시간 물에 담가 불린 다음 깨끗이 씻는다. 쌀눈도 없앤다. 맛있는 술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되는 단백질 등을 없애기 위함이다.
색다른 점은 치댄다는 것이다. 고두밥을 하고 누룩과 물을 넣어 1시간 정도 저어댄다. 술을 빚는 단계 중 손이 많이 가고 가장 힘든 과정이다.
“치대는 과정이 중요해요. 효모가 고두밥에 빨리 스며들게 하고, 발효 시간을 단축하는 역할도 하죠. 힘들지만 어떻게 치댔는가에 따라 술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소홀할 수 없어요.”
이 명인의 말이다. 치대는 중간에 다양한 재료를 넣어준다. 국화를 넣고 치대면 ‘국화주’, 장미를 넣어주면 ‘장미주’가 탄생한다. 치대는 작업이 끝나면 항아리에 담아 발효에 들어간다. 이때 항아리 입구는 당목과 고무줄로 틈이 생기지 않게 꽁꽁 싸맨다. 초파리가 생기는 현상을 막기 위함이다. 옛날 어머니가 당국의 눈을 피해 막걸리를 담그던 방법 그대로다.
지금부터는 효모의 시간. 발효실에서 사나흘 보낸 후 뚜껑을 열어 젓고다시 발효에 들어간다. 후발효가 끝나면 저온에서 1년간 장기 숙성에 들어간다. 유자쌍화차를 만드는 데 1년, 발효와 숙성에 1년. 2년을 기다려야 맛볼 수 있는 쌍화주의 탄생 스토리다.
안타깝게도 생산량은 많지 않다.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는 탓이다. 한 독에 많아야 40리터밖에 나오질 않는다. 가격이 비싼 이유다. 한 병에 5만 5000원이다.
“서울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가격이 왜 이리 비싸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들이 술을 음미해 보곤 술을 더 사 가더라고요. 우리 부스를 찾는 한 외국인은 ‘여기 술이 제일’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데,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최성수 대표의 회상이다. 쌍화주는 40~50대 주부와 격식 있는 자리에 내놓으려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명절 선물용으로도 잘 나간다.
인터넷 판매가 가능한 지역특산주이지만 온라인 판매는 꿈도 못 꾼다. 백화점에서도 납품을 요구하고 있지만 맞추질 못하고 있다.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체험이 아닌 술 빚기 교육(?)
예랑혜랑은 전통문화 체험장으로도 이름이 높다. 설립 2년 만에 ‘2024국가무형유산 공동체종목 지역연계 지원사업’인 ‘꽃을 입은 막걸리, 누룩을 입은 떡’을 진행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체험이라고 대충 하지 않아요. 예랑혜랑의 술 비법을 알려줍니다. 많은 사람이 술을 빚어 나눠 마시면 좋잖아요. 우리 선조들이 지켜온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일이기도 하고요.”
최 대표가 체험에 진심인 이유다. 쌀 씻는 방법에서부터 누룩 혼합, 발효·숙성 요령, 술 거르는 시기와 방법까지 상세히 알려주는 연유이기도하다.
“체험 후 ‘집에서 술을 빚었다’며 평가해 달라고 술을 가져오는 체험객이 가끔 있는데, 마셔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그 짧은 시간에 술을 배워 어떻게 그렇게 맛있게 만들었는지….”
이 명인의 전언이다. 예랑혜랑의 전통주 만들기 체험이 ‘체험이 아닌 술 학교 교육’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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