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갑저수지로 이어지는 불갑천 둑에 선다. 맑은 생태하천에 눈이 시리도록 청명한 가을하늘이 투영돼 운치를 더한다. 생태하천을 따라 사부작사부작 걷는 탐방객의 모습도 정겹다. 드넓은 불갑사 관광지 주차장 아스팔트에 벼를 말리는 농부의 손길도 분주하다.
추수를 끝낸 논바닥의 벼 그루터기엔 그새 새싹이 파릇파릇 움텄다. 마을 언저리에 새로 조성 중인 마을도 고즈넉하다. 모악지구다. 영광군이 농촌에서 전원생활을 꿈꾸는 도시민을 유치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만든 곳이다. 영광군 불갑면 사산마을의 늦가을 풍경이다.
천년고찰 불갑사와 인접해 빼어난 자연환경을 이루고 있다. 전라남도 유기농 생태마을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융복합산업 인증 마을이기도 하다.
유기 농사 지으며 어우렁더우렁
사산마을은 76가구가 어우렁더우렁 살고 있다. 농촌임에도 농사짓는 세대가 많지 않다. 33가구가 벼와 들깨, 블루베리, 옥수수, 땅콩, 포도 등을 재배한다. 나머지 43가구는 농사짓지 않는다. 나이 들어 농사일을 놓은 어르신과 빼어난 자연환경에 반해 귀촌한 이들이다.
사산마을 주민들은 2013년부터 친환경 농사를 시작했다. 무농약으로 시작해 2017년부터 유기농업으로 전환했다. 유기 인증 면적은 11.5ha. 전라남도의 유기농 생태마을 지정 기준(10ha 이상)을 가까스로 넘겼지만, 유기농업에 대한 의식은 여느 농촌 못지않다.
“우리 동네는 농지가 적어 대부분 소농이지만 농사짓는 주민 한 명만 빼고 전부 유기농 벼농사를 하제. 그 한 명도 논이 멀리 떨어져 있어 못하는 것이여. 우리 단지(금계·모악 단지)에 논이 있었으믄 유기농을 했을 것이구먼.”
금계·모악 친환경농업단지 대표 김길중 어르신의 말이다. 주민들은 우렁이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는다. 병해충 방제는 전문업체에 맡긴다.
“값도 더 받고 좋은디, 고약한 것은 논둑에 풀을 베는 것이어. 1년에 네댓 번은 비어야 수확하는 디, 우리같이 나이 먹은 사람이 하기가 쉽지 않아. 전문 업체에 맡기고 싶은 디 너무 비싸. 하루 25~30만 원은 줘야 해.”
김 대표의 아쉬움이다. 수확한 벼는 유기농 전문 영농조합에 출하한다.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카페에 팔기도 한다.
‘주민들이 운영하는 카페’라는 말이 귀에 꽂힌다. 불갑천을 가로지르는 연실교를 건너 ‘불갑산 모싯잎 송편 체험&카페’로 향했다. 모싯잎 송편 전시·체험·판매 융복합 공간으로 주민 소득 증대와 마을 공동체 형성에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
유기농 생태마을 본보기 손색없어
카페에서는 모싯잎 송편 만들기 체험이 한창이다. 라오스 방비엥 소수민족 학교 학생들이 ‘2024글로컬 전남국제교류 프로그램’ 하나로 모싯잎 송편 만들기 체험에 나선 것. 양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처음 접해본 음식 때문일까. 학생들의 얼굴엔 긴장한 빛이 역력하다. 모싯잎 피에 동부 속을 넣고 갈무리하는 앳된 손길도 조심스럽다.
“한 손으로 말랑말랑한 피를 천천히 돌려가면서 다른 손으로 이렇게 다섯 번 오므리면서 모양을 만들면 돼요.”
강사로 나선 정명옥 이장의 목소리가 나긋하다. 체험이 진행되는 동안 카페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카페는 모싯잎 송편 생산실과 전시·판매장, 방문객이 모싯잎 송편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실로 이뤄져 있다.
“근래 들어 모싯잎 송편 만들기 체험을 하려는 이들이 많이 찾고 있어요.” 계산대에서 일하던 어르신이 체험을 방해할까봐 귀엣말로 소곤거린다.
카페는 주민 47명이 십시일반 출자해 설립한 ‘불갑유통영농조합법인’이 운영한다. 주민들이 조를 편성해 2~3년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근무한다. 카페에서 만드는 모싯잎 송편의 재료는 주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쓴다. 지난해 유기농쌀 15톤, 모싯잎 6톤, 통동부 2톤을 우선 구매해 사용했다.
“사산마을 모싯잎 송편은 옛날 할머니께서 손수 만들어주시던 맛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가족이 먹는다는 마음으로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카페 대표 정명옥 이장의 말이다. 주민들은 카페를 운영해 지난해 3억 3000만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수익금은 마을 주민을 위해 쓴다. 조합원에게 배당금을 지급하고, 조합원 자녀에게 장학금도 준다. 마을 발전기금도 낸다. 지난해엔 500만 원을 냈다.
올해는 집집이 난방비도 지원했다. 마을 당산제에도 보탰다. 어버이날과 추석 때 주민 선물도 마련해 자축하기도 한다. 전라남도 유기농 생태마을의 본보기로 손색이 없다.
주민 일자리도 만들고 있다. 두 사람이 상시 근무한다. 상사화가 피는 계절엔 10여 명이 달라붙어 모싯잎 송편을 빚기도 한다.
“맛있는 모싯잎 송편과 따듯한 차 한잔 드시러 불갑산 모싯잎 송편 카페로 놀러 오세요”
정 이장의 불갑산 모싯잎송편 카페로의 초대다. ☎061-351-2155
(58564)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 오룡길 1 전남새뜸편집실 TEL : 061-286-2072 FAX :061-286-4722 copyright(c) jeollanamdo,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