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에서 출발한 트럭은 삼거리에서 대풍리로 접어들었다. 도로 양쪽으로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우거진 숲을 달리다 멈췄다.
숲으로 들어섰다.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업할 후박나무만 보고 길을 만들어 들어갔다. 한 주민이 작은 톱과 낫 그리고 껍질을 벗기는 도구를 챙겨 앞장섰다.
후박나무는 5월부터 6월까지가 제철이다. 아이러니하게 비가 내린 뒤에는 껍질을 벗기기가 더 어렵다고 했다. 날씨가 좋은 날을 택해 작업을 한다.
1970∼80년대 후박나무는 가거도 주민들의 생계는 물론 아이들 유학을 보내는 데 큰 보탬이 되었다. 그래서 ‘대학나무’라는 별칭도 얻었다.
후박나무는 울릉도, 제주도, 가거도, 완도 등 우리나라 서남해안 섬에 자라는 녹나무과 상록교목이다. <본초강목>에는 ‘그 나무가 질박하고 껍질이 두터우며 맛은 맵고 세찬데 그 색이 적자색이다. 후박, 열박, 적박이라는 여러 이름이 있다.’고 했다. 중국목련이나 일본목련을 후박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 후박과 다른 종이다. 가거도에서는 ‘누룩나무’라고도 불렀다.
후박나무는 임의로 채취하거나 훼손할 수 없으며 모두 해당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산림자원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해안은 바위, 섬은 후박나무 숲
후박나무는 염기에 강하고 높이 20미터 지름 1미터까지 자란다. 가지가 사방으로 뻗는 상록활엽수라 남쪽 연안이나 섬에서 방풍림으로 많이 이용했다. 관매도에서는 신목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특히 완도군 소안면 맹선리,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등은 바람을 막아야 마을을 이루고, 농사도 지을 수 있었다. 진도 관매도, 통영 추도, 부안 격포리, 통영 우도, 남해 창선도, 울릉도 사동, 저동, 장흥 삼산리의 후박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마을에서도 여수 대횡간도, 고흥 애도, 울릉도 남양동, 신안 반월도처럼 당숲으로 지정해 보호하기도 했다.
가거도는 우리나라 서쪽 끝에 있는 유인도다. 제주도 한라산, 울릉도 성인봉에 이어 다리로 연결되지 않는 섬 중에서 세 번째로 높은 독실산(639m)이 있다. 이 산을 중심으로 산줄기는 동쪽과 서쪽과 남쪽 마을로 이어져 있다.
해안은 바위이고 섬은 숲이다. 골짜기는 숲을 이루고, 겨우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옴팡진 곳에 큰마을 대리와 작은 마을 항리와 대풍리가 자리를 잡았다. 숲은 후박나무가 우점종이다. 처음부터 후박나무가 대세를 이룬 것은 아니었다. 후박나무 열매를 좋아하는 흑비둘기가 옮긴 것도 있고, 돈이 되면서 잡목을 베어내고 심은 것도 있다. 감자, 고구마 등을 심던 밭에도 후박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값싼 중국산 약재들이 수입되면서 가거도에서 후박나무 껍질을 벗기는 일도 멈췄다. 밭에 심은 후박나무는 우거져 숲이 되었다. 마치 숲이 마을로 내려온 모습이 되었다.
후박나무 껍질 벗겨 자식 키워
후박나무는 열매가 떨어지면 발아가 잘 되고, 껍질을 얻기 위해 잘라낸 자리에서 여러 개의 순이 자라면서 수세가 강해진 점도 있다. 가거도에서는 껍질을 벗겨낸 나무를 이용해 난방과 조리용 화목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가뭄에도 식수가 고갈되지 않는 건 후박나무 숲과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가거도 돌미역이 양식미역 등장으로 뒷전으로 밀려나 후박나무 역할은 더욱 컸다.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출산 인구가 급감하면서 미역 소비가 감소한 영향도 있었다. 게다가 베이비붐 세대들이 자라서 뭍으로 나가는 시기라 현금이 필요했다. 올해 70대 중반 김 씨도 물질로 미역을 채취하다 그만두고 후박나무로 자식을 키우고 생계를 이었다.
한때 우리나라에 공급되는 약재용 후박나무 껍질의 70%가 가거도에서 공급되기도 했다. 당시에는 마을주민들이 봄철이면 모두 산으로 올라가 작업을 했다. 산이 없는 주민들은 일을 해주고 일당이나 껍질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간간이 주문이 들어오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도 드물다. 고령으로 일할 사람도 많지 않다.
이렇게 가거도는 한 세대가 후박나무에 의지해 살았다. 자원이 한정된 섬에서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하는 일이 쉽지 않다. 설령 자원이 충분하더라도 뭍으로 나오는 길이 불편한 절해고도에서는 수없이 많은 장벽을 넘어야 한다. 사람이 살만한 섬 가거도, 또 어떤 장벽을 넘어야 할까.
김준 / 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원 연구교수
(58564)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 오룡길 1 전남새뜸편집실 TEL : 061-286-2072 FAX :061-286-4722 copyright(c) jeollanamdo,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