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을 생각하면 맛있는 섬 밥상과 시인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그래서 배를 탈 때부터 설렌다. 느리게 가는 ‘섬사랑호’는 목포항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해 도초도를 거쳐 우이도까지 간다.
쾌속선을 타면 비금도나 도초도에 내려 기다렸다가 뒤를 쫓아오는 ‘섬사랑호’로 옮겨타야 한다. 느린 배를 타는 게 좋다. 우이도에 닿을 때까지 언제라도 선실에서 나와 밖을 구경할 수 있고,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다.
그때도 그랬다. 삼삼오오 모여서 바위 절벽에 기대어 자란 소나무, 얼굴바위, 여름을 알리는 원추리꽃 등을 구경했다. 시인은 내내 밖에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섬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돈목해변을 지나 성촌해변까지 걸었다. 모래밭을 걸으면서 시인은 말했다.
‘김박사, 이제 자연과 대화를 해보세요. 모래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생각해 보니 그는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대화하는 중이었다. 그들이 섬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래해변과 모래언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두 마을에 이생진 시인의 시비가 있다. 시인은 그 시비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돌로 쌓은 제방보다 더 강한 사구식물
그 사이 섬사랑호는 돈목선창에 도착했다. 불과 일 년 만에 오는 길인데, 역시 설렌다. 시비는 그 자리에 있고, 마중 나온 박씨 부부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때처럼 돈목해변을 걸었다. 파도와 바람이 옮겨온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모래 언덕에도 올랐다. 그 사이 산책로를 표시한 경계목이 모래에 묻히고, 조림한 소나무도 반 이상이 덮였다. 어른 키만큼 쌓인 모래 언덕을 헤치고 순비기나무와 통보리사초가 고개를 내밀었다. 사구식물은 돈목을 지키는 주민처럼 강하다. 박씨 부부의 거친 손이 떠올랐다.
모래는 바람에 따라 움직인다. 봄가을에 쌓이고 겨울에 빠져나간다. 계절 따라 해안선이 바뀌는 것이 자연스럽다.
해안선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이다. 이 변화를 줄여 인간이 머물 수 있고, 농사도 지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순비기나무와 통보리사초와 갯방풍이었다. 여리고 순해 보이는 사구식물이 큰 돌을 옮겨와 쌓은 제방보다 강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사구식물이 해안에서 모래가 사라지는 것을 막는 최고의 방책이라고 말한다.
해변을 걷다 돌아보니, 어느 틈에 박씨 부부가 모래밭을 일구고 있었다. 아침에 시원하게 끓일 조개를 캐러 나온 것이다.
우이도 돈목해변에는 서남해에서 드물게 비단조개가 많이 서식한다. 모래밭에 서식하는 비단조개, ‘민들조개’가 표준명이다. 혼합갯벌이 발달한 서해에 바지락이 있다면, 모래갯벌이 발달한 동해에는 민들조개다. 조갯살이 잘고, 조개 크기도 백합은 물론 바지락보다 작아 강원도에서는 ‘째째하고 보잘것없다’고 ‘째복’이라 부르기도 한다.
섬에 존재하는 작은 것들에 큰 관심을
하지만 국물만큼은 바지락에 뒤지지 않는다. 바지락탕은 비릿한 감칠맛이 섞였다면, 민들조개탕은 아주 깔끔한 감칠맛이다. 여기에 텁텁하지 않은 칼칼한 맛을 원하면 매운 고추를 더하면 좋다. 동해안처럼 우이도 돈목에서는 민들조개를 넣어 칼국수를 끓이고 조개젓을 만든다.
이뿐 아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한 집에 한두 마리, 많은 집은 서너 마리의 소를 키웠다. 아이들은 소를 모래 언덕에 풀어 놓고 해수욕을 즐겼다. 덕분에 모래 언덕에 자라는 사구식물은 크게 자라지 않아 적정상태가 유지되었다.
지금은 사초식물이 자라는 곳에 소나무와 잡목이 자라면서 육상화가 진행되고 있다.
모래 언덕은 해수욕장에 끊임없이 모래를 공급한다. 그리고 마을이나 육상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아 준다. 마을이 모래 언덕 안쪽에 마을이 자리한 이유이다. 또 우이도 최고봉인 상산봉에서 내려오는 민물을 저장해 식수를 해결할 수 있었다. 주민들은 모래밭을 일궈 마늘과 상추를 심고, 보리와 고구마를 심어 식량에 보탰다.
모래는 구석구석에 내려앉는 불청객이지만, 덕분에 외딴섬에 사람이 머물 수 있었다. 이렇게 섬에 작은 돌 하나 풀 한 포기도 존재 이유가 있다. 사실 섬을 지킨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우이도 돈목처럼 모래가 큰 역할을 했다.
여행객은 섬으로 들어오고, 주민은 섬을 떠나는 현실에서 섬에 존재하는 작은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여수세계섬박람회가 인간을 위한 잔치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다.
김준 / 전남대학교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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