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탕을 먹고 싶으면 녹동항으로, 삼치회를 좋아하면 나로도항으로 가야 한다. 어느 쪽이든 15번 국도를 따라 벌교를 지나 남쪽으로 향해야 한다.
육질이 탄탄하고 기름진 삼치를 기다리면서, 짧은 가을이 저무는 계절에 장어탕을 택했다. 장어탕은 한국인이 몸을 보할 때 가장 많이 택하는 음식이다. 겨울을 나는 모든 생명은 가을에 겨우살이를 준비한다. 보양식이라고 여름만 제철인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장어탕을 파는 식당이 가장 많은 포구는 녹동항이다.
고흥은 동쪽으로 여자만, 서쪽으로는 득량만 그리고 남쪽엔 거금도와 나로도 등 17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둘러싸여 있다. 고흥군 도양읍에 있는 녹동항은 두 개의 만과 섬과 바다가 만나는 도로 끝이자 바닷길 출발점이다.
광주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고, 바다와 접한 벌교에서도 1시간을 더 남쪽으로 달려야 한다. 1980년대만 해도 광주에서 3시간 거리였으니, 주민들은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2시간이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광주에서 서울까지 갈 수 있다. 외지인은 물론 남도사람들도 고흥을 심리적이나 물리적이나 먼 곳으로 인식한다.
보성 벌교를 지나 고흥 땅으로 들어가는 나들목 동강면과 대서면에 이른다. 그곳이 고흥을 육지와 간당간당하게 이어준 가는 목이다. 녹동항에 큰 파도라도 칠라치면 물방울이 떨어지듯 섬이 될 듯 위태롭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섬으로 인식해 ‘녹도’라 부르기도 했고, 중죄인 유배지였다. 지형과 지세는 조선은 물론 한말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근현대 고흥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했다.
고흥 농수산물 유통과 수탈의 포구
녹동항은 섬과 고흥반도를 잇는 포구다. 소록도 동쪽과 소록대교 사이가 녹동항의 어항구역이다. 이곳은 바다와 갯벌로 둘러싸인 고흥에서 수심, 조차, 파도, 위치 등 다양한 조건을 고려할 때 최적의 항구다. 무엇보다 소록도와 거금도가 파도와 바람을 막고, 멀리 금당도, 평일도, 생일도 등이 외해의 파랑을 잠재워 주는 천연 양항이다.
녹동항과 가까운 곳에 풍남항이 있고, 우주발사기지로 가는 길에 나로도항도 있다. 일제강점기 고흥 농산물과 수산물은 이 세 항구를 통해 유통되고 수탈도 되었다. 녹동항은 여자만을 사이에 두고 여수항을 거쳐 부산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고흥을 사이에 두고 부산과 목포를 오가는 여객선은 1911년 나로항과 녹동항을 기항했고, 1925년 풍남항에 취항하기도 했다.
녹동항이 주목받았던 것은 인근 섬과 바다와 육지에서 생산되는 물산이 녹동으로 모여들고, 일제가 추진한 이주어촌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해태 양식은 거금도가 중심이었고, 굴양식은 해창만이 이끌었다. 역시 그 집산지가 녹동항이었다.
다기능 어항으로 다시 주목받는 항구
녹동으로 가는 도로가 1971년 국도로 승격되고, 같은 시기 녹동항이 국가가 관리하는 어항으로 지정되면서 새로운 계기를 맞았다. 당시 전국에 제1종어항 47개소와 제3종어항 25개소 등 62개 어항이 국가가 관리하는 어항으로 지정 고시되었다. 이들 어항은 이후 국가어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90년 6월 여러 일간신문에 ‘녹동항의 새역사가 시작되었습다.’라는 큰 광고가 게재되었다. 녹동항이 13만5000평의 공유수면을 매립하고 현대적인 항구도시로 탄생되었으니, 투자하라는 내용이었다.
녹동항은 신항과 구항으로 나누어져 있다. 구항엔 녹동재래시장이 있고, 소록도 선착장과 마주하는 신항에는 여객선터미널과 화물선 물양장이 있다. 제주와 녹동항을 잇는 항로가 개설된 것은 1995년 7월이다. 당시 여객선 ‘선비치호’는 하루 1회 왕복 운항하며 승객 607명, 승용차 150대를 동시 수송할 수 있는 규모였다. 당시 인천과 제주, 속초와 울릉 항로도 시작되었다.
녹동항은 수산물뿐 아니라 육지로 나가는 제주도산 밀감 등 특산물이 유통되는 곳이고 시산도, 초도, 손죽도, 거문도와 득량만의 수산물이 모여드는 곳이다. 소록대교와 거금대교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거금도의 양파와 마늘, 석재 등이 유통되었다. 낚시어선 100여 척과 일부 유람선도 정박하고 출항하는 곳이다.
2000년대 들어 해양관광, 수산유통 등 복합적 기능을 수행하는 다기능 어항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녹동항 바다정원 등을 조성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고흥군은 매년 녹동항에서 불꽃축제와 드론쇼를 개최하고 있다.
김준 / 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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