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이라 바닷물 수위가 오를 대로 올랐다. 배가 선착장에 접안했지만, 사다리를 놓아야 오를 수 있을 만큼 뱃머리가 치솟았다. 젊은 사람도 사다리를 타고 배에 오르는 일이 쉽지 않다. 하물며 짐을 들고 배에 오르는 나이 많은 주민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여자만의 중심인 여자도로 가는 선착장 풍경이다. 배는 낡았고, 냄새도 났다. 함께 배에 오른 주민들은 하루에 네 번 배가 운항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했다. 10여 년 전이라면 그럴 수 있다. 섬에서 주민들의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다면, 섬밥상에 감동하지 않았다면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동지섣달 긴긴밤이 지났다. 이제 시나브로 밤은 짧아지고 낮이 길어질 것이다. 마파지 마을 길을 지나는 길에 만난 텃밭에는 배추와 무가 월동 중이다. 따뜻한 남쪽 섬마을의 특권이다.
여자만은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있는 내만이다. 입구는 좁고 안쪽 바다는 넓다. 남북 길이 30㎞ 넘고, 동서 길이가 20㎞ 이상이다. 북쪽으로 순천만과 보성벌교갯벌이 있다.
동천, 이사천, 벌교천 등 하천을 따라 내려온 물이 여자만에서 바다와 만난다. 그곳에 펄갯벌을 만들고, 꼬막과 피조개와 새조개와 키조개를 키우고, 숭어와 물메기와 꽃게와 전어와 낙지를 부른다. 망둑어와 짱뚱어와 낙지를 머물게 한다.
두 번째 기회, 과오 반복 안돼
올해 9월부터 11월까지 여수에서 ‘섬, 바다와 미래를 잇다’를 주제로 여수세계섬박람회가 개최된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도 섬 박람회가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여수에서 개최되지만, 백령도에서 가거도, 울릉도와 독도에서 마라도까지 우리나라 3400여 개의 섬을 대표하는 국제행사다.
우리 섬 주민이 살아온 삶, 섬과 바다의 생태적 가치 등을 국민은 물론 세계인에게 알리고, 기후변화에 대응해 바다와 섬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기회다. 무엇보다 여수의 섬과 섬 주민의 생활, 지역사회와 여수시가 보여주는 모습이 섬의 위치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는 셈이다.
여수시는 이미 2012년 여수엑스포 때 ‘살아 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을 통해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찾아온 방문객만 카운트하다 말았다. 결과는 사후 활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10년 넘도록 반복하고 있다.
천운처럼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10년 전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누구에게 물어볼지 깜깜하다. 뜻있는 여수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덧붙여 이번에도 방문객 숫자만 헤아리다가 폭죽을 터뜨릴 것 같다고 한다.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여수 시민사회의 몫이 될 것이다.
섬 가치, 섬문화는 섬살이에서 출발
늦었지만, 여자만을 주목한다. 대여자도에서 송여자도(소여자도)까지 걷는 둘레길에는 인위적인 조형물이 없어 좋다. 본래 섬의 모습이다. 때로는 마을 골목으로, 때로는 해안을 따라 걷는다. 두 섬을 잇는 다리도 여자만과 조화롭다. 숙박과 식사가 걱정이지만, 마을에서 운영하는 숙소와 식당이 있다.
여자도로 여행와 인심과 경치에 반해 눌러앉은 제주댁이 내놓는 섬밥상이 너무 좋아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아쉽게 학교는 지난해 문을 닫았지만, 활용 방법을 잘 찾는다면 새옹지마처럼 섬에 활기를 넣을 수 있다.
여자만 순천갯벌과 보성벌교갯벌은 2021년 ‘한국의 갯벌’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때 여자만 여수갯벌과 고흥갯벌은 해당 지자체가 지역 주민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등재 신청에 제외시켜 줄 것을 요청해 빠졌다.
다행스럽게 2단계 ‘한국의 갯벌’ 유산구역 확대에 참여해 최근 현장실사를 받았다. 올해 7월 결정된다. 그리고 순천갯벌과 보성벌교갯벌을 포함한 여자만 국가해양생태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섬은 대부분 갯벌로 둘러싸여 있다. 곧 섬의 가치는 곧 갯벌의 가치이고, 섬문화는 섬살이에서 출발한다. 여자만과 여자도는 여수세계섬박람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섬 주민들에게 여수세계섬박람회는 이웃집 잔치에 불과하다.
여수시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여수만 르네상스에 이번 박람회만큼 좋은 기회가 있을까. 우리 국민과 세계시민들에게 여수의 섬과 바다를 알릴 수 있는 이보다 좋은 기회가 있을까. 만시지탄이지만 여수 지역사회가 남은 기간에 매진해야 한다.
김준 / 전남대학교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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