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가득한 교정에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흥을 주체하지 못한 동백꽃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다시 붉게 꽃을 피웠다. 오랜만에 제대로 핀 동백을 본다. 동백꽃 너머에 윤종하 선생님과 예향이가 있다. 막 수업을 마친 뒤였다. 너른 교실과 교정을 지키는 이는 둘뿐이다.
이를 확인하듯 교실 입구에 ‘4학년 1반 윤종하 선생님, 남학생 0, 여학생 1, 총계 1명’이라는 학급 안내가 적혀 있다. 학급특색 ‘질문하며 책 읽기를 통한 창의적 사고력 기르기’라고 소개되어 있다. 예향이 안내로 교실로 들어섰다.
외딴섬 서거차도 조도초교 거차분교
전남도에는 섬 지역에 110개 학교가 있다.(2024. 4. 1. 기준) 이는 전남 전체 866개 학교 중 12.7%에 해당한다. 학생 수는 3208명으로 전체 17만6092명의 1.8%를 차지한다. 이들 학교 중 분교는 34개, 본교 76개다. 분교는 초등학교가 31개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거차분교는 그 분교 중 하나다.
진도군 조도면에는 먼 섬 거차군도와 맹골군도가 있다. 맹골군도에는 맹골도, 곽도, 죽도 등 3개 유인도가 있다. 맹골수로를 사이에 두고 동거차도, 서거차도, 상죽도, 하죽도 등 4개의 유인도가 거차군도를 이루고 있다. 먼 섬에는 거차분교만 남아 있다. 거차분교가 문을 닫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다.
섬에서 학교는 교육기관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자존심으로 통했다. 과거에는 ‘도서벽지’라는 수식어가 꼭 붙었다. 1970년대 도서벽지에 근무하는 교사는 선생님은 물론 지도자의 상징이었다. 당시 한 조사에서는 도서 학교 교사가 갖춰야 할 능력과 태도로 ‘고난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인내심’이 27.1%로 가장 높고, 다음이 원만한 인간성과 사회성 17.1%였다. 섬에서 바라보는 교사상으로는 열성있는 교사가 55.4%였다.(1972, 도서벽지교육, 문교부).
1970년대 섬 학교 교사는 가르치는 것은 물론 풍금 수리, 과학실험 교구 만들기, 새마을 교육 등도 했다. 어느 어촌에서는 굴 양식, 돼지 기르기 등 어업과 축산 기술을 배워 주민에 보급하기도 했다.
거차분교는 1941년 조도 국민학교 거차분교로 설립되었다가 1944년 거차국민학교로 승격, 1994년 조도국민학교 거차분교로 격하되었다. 지금은 조도초등학교에 속한 거차분교이다.
예향이가 가장 좋아하는 모래미해변
예향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매일 아침 등교하면 선생님에게 제일 먼저 ‘전학온다는 학생 없냐’고 묻는다. 남학생이 오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인다.
섬에 아이는 혼자뿐이다. 그래서 외롭다. 교실 뒤쪽 게시판에는 예향이가 직접 그린 그림이 붙어 있다. 거차도를 상징하는 캐릭터 ‘거차리’다. 거차리는 서거차도 특산물인 전복, 돌미역, 고둥 등을 소개하고 있다.
예향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미술과 국어다. 수학은 빼고 음악도 좋아한다. 서거차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모래미 해변이다. 그곳은 수영할 수 있고, 고둥을 따 삶아 먹을 수도 있어 좋다.
윤 선생님이 거차분교 생활에서 어려운 점은 1대1 수업이다. 처음에는 옆에 앉아서 가르치다 과외수업 분위기라 그만두었다. 그래서 학생이 많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수업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을 택했다. 칠판에 적어 설명하고, 묻고 답하는 식으로 수업하고 있다. 나중에 상급학교에 진학할 예향이를 위해서도 필요했다.
다만 대부분 교과서가 친구와 역할놀이를 하는 방식으로 꾸며져 선생님이 친구 역할을 해야 한다. 섬에서 예향이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없기에 수업 준비도 큰 학교에서 하는 것 못지않게 한다. 정말 어려운 점은 학교관리이다. 시설이 오래되어 안전하고 쾌적하게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 예산이 있다면 마을주민과 계약하여 학교관리를 부탁하면 좋을 텐데, 그것도 쉽지 않다.
강진에 근무할 때 농촌유학센터를 운영하며 농촌교육 현실을 실감했고, 조도초등학교에서는 자진해 거차분교로 들어왔다. 23년 교직 생활 중 강진이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처럼, 이후에는 거차분교가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번 기회 아니면 언제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싶어 지원했다. 예향이는 딱 어울리는 선생님이 오셔서 행복하다.전남대학교 김준 / 호남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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