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는 선창으로 가는 길부터 예사롭지 않다. 강진 마량을 지나 고금대교를 건너, 좁은 마을 골목과 인적 드문 해안에 이르러 멈췄다. 몇 해 전 겨울, 감태를 채취하는 내동마을 주민을 만나기 위해 찾았던 곳이다.
내동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도선을 뒤로 하고, 마을에서 준비해 준 배를 타고 초완도로 향했다. 초완도를 오가는 여객선은 없다. 거주하는 주민 수가 적다. 고금도 큰 섬에서 2㎞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다. 주변에 강진, 장흥 등 육지와 지척이다.
초완도처럼 섬에 상시 거주하는 주민이 있지만, 오가는 배가 없는 섬을 해양수산부는 ‘소외도서’로 분류한다. 2024년 1월 말 기준 전국 소외도서는 74개이다. 완도 15개, 여수 7개, 신안 4개, 고흥 4개 등 전라남도에 40개가 있다. 정주기반이 열악한 작은 섬이 소외도서로 변하고 있어 최근 80여 개가 되었다.
정부가 2027년까지 ‘소외도서 제로화’를 선언했지만, 지자체가 나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유인도가 가장 많지만 ‘여객선 공영제’를 시행하는 신안이 상대적으로 소외도서가 적은 것이 이를 입증한다. 완도군이 넙도를 경유해 초완도를 운항하는 도선을 마련했지만, 접안이 어렵고 이용객도 적어 실효성이 없다. 주민들은 차라리 ‘기름값을 직접 주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혼합갯벌 덕에 김양식과 해산물 채취
초완도는 풀과 나무가 무성해 ‘푸랭이’라고 불렀다.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섬은 서쪽이 완만하며 만입한 바다에 혼합갯벌이 발달했다. 동쪽은 직선 해안에 자갈과 바위가 많다. 마을이 서쪽 만입한 곳에 형성된 것은 고금도와 약산도 등 큰 섬이 바람과 파도를 막아 주고, 해안에 갯벌이 발달해 지주식 김 양식은 물론 바지락과 낙지 등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쪽 바위 해안은 채석해 강진 마량 선착장 공사에 활용하기도 했다.
큰바다로 나가는 길목인 동쪽해안의 파도와 바람이 거세고 비탈지다. 그곳 동쪽에서 부는 바람이 닿는 곳에 ‘샛다지’라는 지명도 있다. 다만 서쪽 마을에서 ‘목너미’ 고개를 넘어 동쪽해안에서 미역 등 해산물을 채취해 오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남쪽 용도리와 딸린 섬 장고도 인근에서 멸치를 잡기도 했다.
초완도가 등장한 것은 1872년 <강진현고금도진지도>에서다. 이 지도에는 고금도와 조약도(약산도)는 물론 잉도(넙도), 원도, 초안도 등이 그려져 있다.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은 서해에서 전열을 가다듬어 1598년(선조31) 고금도 덕동에 수군 본영을 설치했다.
초완도로 들어오는 내동선착장 남쪽 충무사가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는 명나라 장수 진린과 수군도 머물렀다. 당시 조명연합 수군이 고흥과 여수 그리고 남해로 나가려면 반드시 초완도를 지나야 했다.
바다자원 따라 흥망성쇠 정해지는 섬
초완도는 주민등록상 5가구 9명이 거주하고 있지만, 상시거주자는 3가구 5명이다. 1976년 국토지리원 항공사진을 보면, 섬 서남쪽 해안에 10여 집이 거주한 것을 알 수 있다.
완도에 속했지만 완도보다는 장흥이 가까웠고,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장흥 대덕에 작은 집이라도 마련해 뭍으로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 완도군 고금도, 약산도, 금당도 일대는 장흥생활권이었다.
초완도를 둘러싼 완도 고금도와 약산도, 강진 마량, 장흥 대덕과 회진 등이 우리나라 최고 매생이 양식지이다. 초완도 역시 지주식 김 양식 이후 매생이 양식을 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잘 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김 양식이 잘되어, 김값이 호황일 때는 매생이로 넙도보다 부자로 살았다. 지주식 김 양식이 활발한 1970∼80년대 초완도는 10여 가구 50여 명이 살았다.
작은 섬은 주변 바다 자원에 따라 흥망성쇠가 이루어진다. 초완도는 김 양식은 물론 톳, 매생이, 청각, 소라, 바지락, 전복, 꼬막, 키조개, 굴 등 바다가 풍요로웠다. 당시에는 작은 배를 이용해 문어와 숭어를 잡고 농어와 도미 그리고 장어를 잡기도 했다.
제주도나 울릉도처럼 큰 섬도 그렇지만 작은 섬은 산이 섬이고, 섬이 산이다. 초완도처럼 높지 않지만 가파르게 솟은 섬은 땅보다 갯벌이나 바다가 중요하다. 산비탈을 일궈 고구마와 보리를 심어 얻은 곡식으로는 석 달도 버티질 못했다. 나머지는 김 양식과 매생이 양식을 하고, 해산물을 채취해 생필품을 구입했다.
작은 섬이 소외도서가 되지 않고 무인도가 되지 않으려면 뱃길이 열리고, 바다 생태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섬 정책과 어촌 정책, 수산 정책이 같은 방향을 지향해야 하는 이유다.
김준 / 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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