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백야곶을 지나 다리를 건너 질주하듯 백야도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등대에 이르렀다. 잠시 쉬어가는 듯하다. 여자만 남파랑길을 따라 와온을 지나 순천만으로 가는 길인지, 낭도와 적금도를 잇는 다리를 건너 섬섬백리길을 따라 고흥곶으로 건너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어느 해 봄에 본 모습이다. 조만간 매화가 터지고, 벚꽃이 날리는 날이면 볼 수 있으리라. 등대 너머로 제도와 개도까지 잇는 다리 공사가 한창이다. 섬박람회가 개최되는 가을이면 백야곶은 안포리가 아니라 개도 청석포가 끝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여수는 등대가 많다. 남해안에 처음 불을 밝힌 거문도등대(1905)를 시작으로 소리도등대(1910), 백야도등대(1928) 그리고 가깝게는 1952년 불을 밝힌 오동도등대가 있다.
거문도등대는 등대문화유산이며, 인근 수월산 일원은 명승(2025)으로 지정됐다. 소리도등대는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등대문화유산이다. 오동도등대는 여수 시민만 아니라 많은 중장년층 추억의 장소이며, 남해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한 지역이 이렇게 많은 등대가 있는 곳이 있던가.
시내버스 타고 가는 백야도등대
등대는 대부분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에 세워졌다. 일반인이 등대에 가려면 배를 타고 섬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최근 GPS가 발달하면서 무인등대가 늘어가지만, 등대를 찾는 여행객은 더 많아지고 가는 길이 개선되었다. 일부 등대에서는 등대체험 숙소를 운영하기도 한다.
여전히 등대는 섬과 바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겐 꿈꾸는 여행지이며, 가기 어려운 곳이다. 하지만 백야도등대나 오동도등대처럼 시내버스를 타고 다녀올 수 있는 곳도 있다. 백야도는 다리가 놓였지만, 섬이다.
백야도등대는 1928년 불을 밝혔다. 초기에는 무인등대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9년 유인등대로 전환했다. 그리고 2009년 다시 무인등대가 되었다. 무인등대로 전환되자 주민들은 항로표지원이 생활하던 관사를 활용한 ‘추억의 백야도등대 살리기’ 등을 추진하기도 했다.
등대 아래 절벽으로 전망데크를 만들고 생태탐방로 등을 조성하면서, 항로표지원의 삶이 켜켜이 쌓여 등대 생활사를 살펴볼 관사를 무너뜨렸다. 보기 싫어서였을까, 관리하기 귀찮아서였을까. 등대로 가는 길에 다리가 놓이고 포장까지 되었는데, 예전처럼 가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잊히고 무시되는 섬살이 아쉬워
백야도등대는 유인등대 시절 모두 3명이 근무했다. 초기에는 자가발전을 통해 불을 밝혔다. 여수로 들어오는 모든 배들은 소리도등대를 거쳐 백야도에서 불빛을 받고, 오동도등대의 안내를 받아 들어왔다. 도시와 가까운 곳임에도 일찍 등대가 설치된 이유다.
대한해협을 건너 서해와 남해로 들어올 때 가장 먼저 만나는 등대가 통영 홍도등대다. 그리고 여수로 들어오려면 반드시 백야도등대를 지나야 한다. 목포나 서해로 가려면 소리도등대를 지나 거문도등대의 불빛을 따라 당사도등대, 하조도등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1960년대 한 신문을 보면 백야도등대의 도움을 받은 선박은 발동선 6889척, 기선 3929척, 범선 3844척 등 모두 2만4662척이나 된다.(경향, 1961. 12. 14.) 등대는 먼바다에서 섬이나 육지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탓에 항로 안내뿐 아니라 수상한 어선, 해상사고, 밀수 선박 등도 감시했다. 그래서 ‘바다의 교통순경’이라 했나.
당시 항로표지원들은 한 달에 두 번 절벽 아래로 보급선이 날라주는 주식과 작은 텃밭에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고 해초를 뜯어 해결했다. 보급품을 운반하던 낡고 가파른 계단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문제는 식수였다. 우물이 팔 수도 없는 곳이라 빗물을 받아 저장해 여과한 후 사용했다. 그 흔적도 사라졌고, 사라져 가고 있다.
등대가 있기 전이나 설치되지 않는 지역은 지형지물을 이용하거나 불을 올려 귀항할 곳을 알려주기도 했다. 등대가 없던 시절에는 백호산이 등대였을 것이다. 여수세계섬박람회 슬로건 ‘섬 바다와 미래를 잇다’를 생각하니 등대만 한 것이 없다. 박람회를 앞두고 잊혀지고 무시되는 섬살이가 더욱 아쉽고 절실하다.
김준/전남대학교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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