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서울과 중국, 직선거리로 보면 어디가 더 멀까’, 동행한 대학생 몇 명에게 가거도항에서 질문을 했다. 장난스레 함께 걷던 마을 주민에게도 ‘혹시 중국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들어 보셨어요’라고 물었다.
사실 서울보다 중국이 더 가깝다지만, 닭 우는 소리가 들리겠는가? 가거도는 절해고도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망망대해, 그 바다가 가거도 사람에게 고립을 선물했다.
그 고립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다. 무관심은 편견과 오해를 수반한다. 무관심과 편견을 버티며 섬살이를 할 있었던 것은 미역 덕분이다. 고립을 가져다 준 바다의 선물이 섬사람의 생명줄이기도 했다.
돌미역은 진도 맹골도나 독거도가 유명하지만, 신안 가거도와 만재도에도 못지 않는 미역이 있다. 두 지역은 모두 바다가 거칠고 해안이 단단한 돌로 이루어져 있고, 뭍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맹골도나 독거도 돌미역은 물이 빠지면 낫으로 베지만, 가거도나 만재도는 물질로 미역을 채취한다.
이제 옛날처럼 미역으로 생계를 이을 만큼 채취할 사람도 없고, 남은 분도 고령이다. 신안·진도 돌미역 채취어업은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먼 섬일수록 해조류 의존 높아
가거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서남쪽에 있으며, 우리나라 영해의 시작을 알리는 영해기점이 네 곳에 표시된 기점도서다. 세인들은 흑산도라 하면 홍어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주민들 삶 깊이 들어와 있는 해산물은 돌미역이다.
울릉도나 제주도가 그렇듯이 뭍에서 멀리 떨어진 섬일수록 미역 등 해조류 의존도가 높았다. 왜일까?
우선 좋은 미역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다. 좋은 미역은 줄기에 살이 꽉 차 있고 단단하며 가늘고 긴 ‘가새미역’이다. 같은 돌미역이지만 거칠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넙미역’은 줄기가 넓다.
넙미역은 부드러워 조리 시간이 짧지만 가새미역은 사골처럼 푹 끓여야 국물이 뽀얗고 부드러워진다. 식감도 흐물흐물하지 않고 씹는 맛을 느낄 수 있다.
양식미역이 등장하면서 돌미역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래도 가거도나 만재도나 흑산도를 찾은 여행객들은 곧잘 어른 키만큼 긴 산모곽을 들고 배에 오른다.
산모곽은 미역 가닥을 꺾지 않고 길게 오롯이 잘 말린 것이다. 진도 조도지역이나 신안 흑산지역에 특별하게 산모곽을 주문하는 사람도 있다.
가거도에서 미역을 채취하는 사람을 ‘물에꾼’이라 한다.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물질을 했다. 이들이 물밖으로 나올 때 내는 소리를 ‘휘께소리’라고 한다.
미역밭은 큰마을(대리)에 밧면과 안면이라 부르는 2개, 목여(항리)는 1개, 대풍리 1개가 있다. 특히 대리는 동구와 서구 두 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반이 밧면과 안면을 1년 주기로 번갈아 가면서 미역밭을 관리하고 채취했다. 어느 마을이건 미역으로 먹고 살 때는 ‘금장’이라 부르는 미역밭 지킴이를 두었다. 그만큼 미역밭이 중요했다.
미역밭은 섬사람들 사회보장 창구
가거도에는 신안에서 가장 높은 독실산이 있다. 산이 높으면 바다도 깊다. 물이 빠지면 갯바위에 붙은 난미역을 낫으로 베고, 물속에 잠긴 속미역은 물질을 해서 채취했다. 난미역은 썰물에 겨울부터 봄까지 낫으로 베고, 속미역은 봄부터 여름까지 채취했다.
배를 가지고 나온 집은 2몫, 물질을 하는 사람은 1몫, 배 위에서 미역을 담은 그물주머니를 올려주고 내려 주는 사람은 1몫씩 나누었다.
문제는 몸이 성치 않거나, 고령으로 미역채취에 나오지 못한 주민이다. 이런 집은 ‘애호’라고 해서 반짓을 배분했다. 미역이 아니면 쌀을 바꾸거나 생필품을 구할 수 없었기에 최소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마을 규칙을 정한 것이다. 미역밭이 오늘날 민생지원자금이나 사회보장제도 같은 역할을 했다.
가거도는 논이 없다. 갯벌이 없으니 소금도 얻기 어렵다. 모두 섬 밖에서 구입한다. 이때 미역을 화폐처럼 이용했다.
이제 기후변화로 미역도 옛날만큼 자라지 않는다. 인구와 출산 감소로 미역 소비도 크게 줄었다. 직항로가 만들어져 5시간 가까이 걸리던 뱃시간이 3시간 대로 줄었지만, 여전히 먼 섬이다. 뱃길이 험하고 결항도 많아 여행자가 머물기도 쉽지 않다.
돌미역의 영화는 약해졌지만, 반건조한 생선으로 시난고난한 섬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이렇다 할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가거도 생활은 여전히 바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김준 / 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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