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적금도 당집 언덕에 서 있다. 남쪽으로 봇돌바다가 펼쳐지고 북쪽으로 여자만이 보기 좋다. 서쪽으로 다리 건너 고개를 내민 팔영산은 고흥이다. 조선조에는 모두 전라좌수영이었다. 마을주민도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는 금기의 장소에 도로가 놓여 자동차가 질주하고 당집에 쉼터가 마련됐다. 관광객을 부르는 ‘백리섬섬길’이다.
백리섬섬길은 여수 돌산읍 신복리에서 시작해 화태도, 월호도, 개도, 제도, 백야도를 건너 백야곶을 지나 조발도, 둔병도, 낭도, 적금도를 지나 고흥 영남면 우천리에 닿는 39.1㎞ 길이다. 여수곶과 고흥곶을 잇는 이 길은 가막만, 장수만, 여자만, 봇돌바다를 11개 다리로 연결한다. 일부는 완공되었고, 일부는 진행 중이다. 가장 먼저 완공된 다리가 팔영대교다.
한 가족이 승용차 2대에서 내려 당집 옆에 생긴 카페로 들어선다. 음료를 주문하고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봇돌바다 윤슬이 밤하늘 별처럼 반짝인다. 이미 매화는 피고 지고, 벚나무도 물이 오르고, 꽃망울이 부풀어 올랐다.
금년은 여수세계섬박람회가 개최된다. 이 시기에 맞춰 백야도에서 제도를 지나 개도로 이어지는 다리 공사가 한창이다. 나머지 개도에서 월호도를 잇는 다리가 놓이면 백리섬섬길은 완공된다. 그 길이 광양만과 노량바다를 이어 남해도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연도교 놓인 뒤 외려 사각지대 방치
섬 주민에게 육지와 잇는 다리는 숙원사업이고, 정치인에게는 표를 얻는 가장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운 좋게 다리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섬 주민에게 천지개벽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리 공사가 시작되기 전 집과 묘지를 제외하고 섬 땅은 외지인이 먼저 차지한다. 일부 땅을 가진 주민들이 간혹 목돈을 만지지만 이것도 자신의 노후생활 자금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쓰나미처럼 부동산 바람이 불고, 다리가 완공된 후 섬은 정치인이나 행정에서 뒷전이다. 차를 타면 쉽게 오갈 수 있는 섬이 되었지만, 사각지대가 되어 버린다. 이제 섬이니 이러저러한 서비스를 해 달라는 명분이 없다. 섬 노인들에게는 뱃길보다 불편한 것이 시내버스다. 백리섬섬길을 보면서 떠오른 단상이다.
다리가 놓여도 섬이다. 물리적으로는 육지와 이어져 있지만 사회심리적․경제적으로 여전히 섬이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들이 연결되었지만 서로 오가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다리가 없을 때보다 가는 일이 적다. 여행객만 기웃거리다 ‘식당이 없네, 카페가 없네, 청소도 하지 않느냐’는 등 툭 한마디 내뱉고 떠난다. 여행객이 많이 오가는 낭도 같은 섬과 달리 조발도, 둔병도 등 작은 섬은 상대적 고립도가 훨씬 커졌다.
섬 주민보다 여행객 중심으로 서비스가 제공되는 탓이다. 섬에 다리가 놓인다고 섬 주민의 연령대가 젊어지지 않는다. 정책은 세밀하고 친절해야 성공 가능성이 크다. 다리는 섬과 섬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수단이다. 서로 갖고 있는 자원을 공유하고 교류하기 위한 것이다.
수단은 마련했는데 목적에 이르기 위한 정책이나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그걸 섬 노인들이 스스로 만들어 보라는 것인가. 다리가 없을 때는 섬을 연결한 통합서비스가 어렵다고 손사래를 치더니 이제는….
섬을 통합해 운영할 체계를 만드는 일은 행정의 몫이다. 행정이 좋아하는 효율성에도 맞는다. 여행객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에는 관대하면서 섬 주민을 위한 통합 복지서비스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육지와 연결됐지만 여전히 섬
아침 해가 섬을 가장 먼저 비춘다는 조발도에서는 주민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둔병도에서는 마을버스에서 내려 가파른 길을 보행기에 의지해 올라가는 할머니를 만났다. 젊은 사람도 걸어가기 힘들 정도로 가파르다.
상대적으로 주민이 많이 살고, 여행객이 많이 오는 낭도는 마을 앞 진입로를 확포장하고 사도까지 이어지는 인도교도 계획 중이다. 한때 남해안 최고의 바지락 서식지이자 종패로 주목받았던 적금도도 적막하고 고요하다.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작은 섬에도 사람 소리가 들렸고, 멸치도 삶고, 바지락도 캐고, 굴뚝에 연기도 피어올랐다. 섬마을은 다리가 놓이기 전보다 활기찼다. 다리가 놓인 섬이 이러할진대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은 오죽할까.
김준 / 전남대학교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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