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았던 시골에는 막걸리를 빚는 주조장이 있었다. 아버지는 ‘도갓집’이라 불렀다. 식당이나 연쇄점 그리고 20여 개에 이르는 마을 구판장에 막걸리를 공급하는데, 주조장은 단 한 곳이었다.
가정에서 막걸리를 마음대로 만들어 먹을 수도 없던 시절이라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주조장만 쳐다봤다. 술을 몰래 빚었다가 발각되면 큰 경을 치러야 했다. 순경들은 불시에 마을에 들어와 마당이나 곳간은 물론 인근 밭 등을 돌아다니며 쇠꼬챙이로 푹푹 찔러 술독이 있는지 검사했다.
도도하기로 소문난 주조장 주인이지만, 술을 빚기 위해 물맛이 좋고 양이 많은 우리 마을 ‘큰샘’에서 물을 담아 갈 때면 막걸리 한 통을 회관에 내려놓고 갔다. 그날은 마을회관에서 막걸리 잔치가 벌어졌다. 당시 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을 다녀오며 몰래 한 모금 마셨던 그 맛을 다시 만난 곳이 손죽도였다.
뱃속에 담아 가는 것은 돈 안 받아
손죽도에 가면 가장 먼저 묻는 것이 막걸리를 빚는 어르신 안부다. 일제강점기 주세법으로 가양주를 금지하기 전까지 집집마다 손죽도처럼 술을 빚었다. 막걸리를 빚는 곳이 가정에서 주조장으로 바뀐 후 1960년대에도 전국에 4000여 개의 양조장이 있었다. 1960년대 후반 쌀부족으로 밀막걸리가 등장하기도 했다.
주조장이 없는 섬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막걸리를 직접 빚었다. 특히 광도, 손죽도, 초도 등은 최근까지 막걸리를 직접 만들어 마시고 있다. 언젠가 광도를 찾았다가 학공치를 안주로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먹었던 막걸리를 잊을 수 없다.
아쉽게 막걸리를 빚던 섬 주민이 나이 들어 명맥이 끊어지고 있다. 손죽도도 그랬다. 손죽도는 한때 여러 집에서 막걸리를 빚었지만, 지금은 두 집만 만들고 있다. 한 집은 섬에 최고령 어르신이 전해 내려오는 대로, 또 한집은 섬에서 나는 약초를 더해 약주를 만들고 있다.
손죽도 마을펜션에 자리를 잡자마자 막걸리 빚는 어르신의 안부부터 물었다. 바로 전화를 걸어 막걸리를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골목을 산책하다 그 어르신을 만나 따라 나섰다.
좁은 돌담길을 따라 보행기에 의지해 집에 도착한 할머니는 익숙한 몸짓으로 잘 발효된 막걸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자꾸 눈길이 머무는 곳은 할머니의 흰 머리카락과 술을 걸러내는 채였다. 마을에서 최고령 어르신이란 말을 들었기에 짐작은 했지만, 건강한 모습과 유쾌한 입담, 흰머리가 멋졌다.
술을 내려 병에 담은 후, 한 바가지를 떠서 권주가까지 멋지게 부르시더니 맛보라고 주셨다. ‘병에 담는 것은 돈을 받지만, 뱃속에 담아 가는 것은 돈을 받지 않는다’는 멋진 농담까지 하실 줄 아는 분이다.
한때 안강망 배를 부려 부족한 줄 모르고 살다가 간 영감님은 당신이 빚은 술을 좋아했다. 술을 거르는 채가 그때부터 사용한 것이다. 손죽도는 어장이 활발했던 섬이다. 여수 안강망 어업은 손죽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만큼 유명했다. 한때 60여 척의 안강망 배가 있었다. 주민들은 물론 외지에서도 배를 타기 위해 섬에 들어왔다.
이제 영감님도 떠났고, 안강망 어선도 손죽도에 남아 있지 않다. 할머니가 막걸리를 빚기 시작하면서 손죽도 막걸리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섬살이에 맞는 법과 제도 개선 필요
최근 막걸리 카페를 오픈해 오래된 한옥에서 맛을 볼 수 있는 곳도 있다. 몸이 아파 고향으로 내려와 정착한 후 섬과 바다에서 나는 것으로 몸을 치료한 부부다. 이 부부는 자신의 몸을 치료한 효소를 이용해 막걸리를 빚는다.
어느 쪽이든 현행법으로는 가양주로 만든 막걸리를 외부로 유통 판매할 수 없다. 섬밥상이 그렇듯 섬에서만 맛볼 수 있다. 그렇다고 어르신에게 손맛을 식품위생법에 맞게 갖춰달라고 요청할 수 없다.
섬 밥상이든 막걸리든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가능한 시간이라도 지속될 수 있도록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섬을 찾는 큰 이유가 섬마을 골목을 구경하는 것이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여기에 밥상과 술이 빠질 수 없다. 도시나 육지에서 만날 수 있는 그런 맛이나 이야기가 아니라 섬다움이 가득한 밥상을 만나고 싶어 한다. 이러한 밥상과 술을 법과 제도에 맞추는 순간 섬다움은 사라진다. 섬의 환경, 섬살이에 맞게 법과 제도를 바꾸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여수세계섬박람회를 찾아 섬에 들어온 사람이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김준 / 전남대학교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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