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에 열댓 명이 올랐다. 여수에서 거문도로 가는 쾌속선이다. 이 뱃길은 탈도 많고 말도 많은 항로다. 겨우 선사와 조율해 하루 2회 운항하지만, 언제 중단될지 모른다. 섬 주민은 불안하고, 여행객은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여수에서 거문도까지는 54㎞, 중간에 나로도항을 거쳐 손죽도, 초도를 경유한다. 말이 여객선이지 섬 주민에게 필요한 대부분 생필품도 쾌속선에 실린다. 여객선 공영화가 필요한 이유다.
나로도항을 출발한 쾌속선은 민간정원으로 유명한 쑥섬을 지나 손죽도로 향했다. 손죽도는 섬이 곧 정원이다. 집집마다 손수 가꾼 화단과 아기자기하게 꾸민 골목골목은 섬마을 정원으로 손색이 없다.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는 정원을 ‘식물, 토석, 시설물 등을 전시·배치하거나 재배·가꾸기 등을 통하여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규정한다. 만드는 주체에 따라 국가정원, 민간정원, 공동체정원이 있다. 주제와 기능에 따라 교육정원, 치유정원, 실습정원, 모델정원 등으로 구분한다. 공공기관이 유휴공간에 조성하는 개방형 정원인 생활정원도 있다. 그렇다면 섬마을 정원은 어디에 속할까.
섬 정원을 생각하면 먼저 거제 외도가 떠오른다. 한 부부가 섬을 매입해 수십 년을 가꾼 정원이다. 많은 지자체가 외도를 모델로 여행객이 찾는 섬을 가꾸려 했다. 하지만 긴 시간과 노력 그리고 비용이 투자되어야 하기에, 임기 중에 성과를 내야 하는 행정이 따라 하기 어렵다.
한류열풍을 시작한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로 일본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남이섬도 좋은 사례다. 왜 섬 정원은 생태와 예술이 접목해야 하고, 전문가의 경영이 필요한가 잘 보여준다. 덕분에 남이섬은 지금도 문화콘텐츠로 진화 중이다.
집집마다 화단 어우러진 마을정원
목적지 손죽도에 도착하자, 일행을 포함해 열댓 명이 내렸다. 작은 섬치고 하선한 사람이 많다. 그중 몇 명은 기다리던 섬사랑호에 올라 소거문도, 평도, 광도로 향했다. 이곳에도 최근 풍력발전 시설 영향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손죽도의 가장 큰 자랑은 마을풍경이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우리나라 제1호 섬마을 정원을 꼽는다면 단연 손죽도다. 손죽도 둘레길도 이 마을정원에서 시작된다. 둘레길 거리는 2.4㎞로 짧지만, 결코 감동은 작지 않다. ‘백섬100길’에 소개된 손죽도 둘레길 설명을 보자.
‘손죽도 둘레길은 손죽도항에서 시작해 봉화산, 깃대봉을 거쳐 삼각산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이 주 노선이다. 능선을 따라 동서남북으로 옮겨가며 어디하나 막힌 데 없는 파노라마 경관을 연출한다.
손죽도 마을길 투어도 재밌다. 손죽도는 집집마다 조그만 정원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허름한 집일망정 나무와 꽃을 가꾼다. 골목 쌈지 공간과 지지미재로 가는 길가에도 꽃 천지다.’
그렇다. 손죽도 둘레길이 특별한 것은 마을정원 덕이다. 집집마다 꾸며 놓은 화단이 어우러져 마을 정원을 이룬다.
어디처럼 행정이 나서서 만든 것도 아니고, 어느 섬처럼 기업이 큰돈을 투자한 것도 아니다. 주민들이 담 밑에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었을 뿐이다. 돌로 담장을 쌓고, 텃밭에 상추 모종을, 그 옆에 참나리를 심어 가꾼 것이다.
그러니 보라색, 노란색, 붉은색으로 통일되지 않았고, 다양한 색의 지붕과 어울려 각양각색이다. 모름지기 정원의 백미는 자연스러움 아니던가. 인위적으로 만들었지만, 자연과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경관이다. 섬을 찾는 이유다.
골목만 돌아봐도 지루하지 않아
지지미재나 삼각산, 깃대봉까지 가지 않아도 좋다.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즐길 수 있다. 배안에서 만난 여행객들이 초도 상산봉을 다녀온 후, 손죽도 삼각산에 올랐다가 내려와 골목길을 스치듯 살펴보고, 아쉬워 다시 찾겠다고 한다. 어떤 여행객은 골목길을 몇 바퀴째 도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고 즐겁다며 얼굴이 환하다.
오래된 돌담에 켜켜이 쌓인 이끼와 풀들에 눈을 맞추며 걷는다면 어느새 쌓인 응어리들이 사르르 녹아내릴 것 같다.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만큼 좁은 골목도 남아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다 깨금발로 고개를 들어 담장너머 집안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렇다고 사생활 침해라고 나무라는 사람도 없다.
손죽도 섬마을 정원은 공동체 정원이자, 여행객에게 힐링을 선사하는 치유정원이다.
김준 / 전남대학교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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