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달천 너머로 비봉산 자락이 붉게 물들더니 이젠 맑아진다. 곧 해가 떠오른다는 징후다. 포구 가장자리에 중년여성 넷이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기다린다. 날씨가 추워야 아침에 떠오르는 해는 더 맑고 명징하다.
여자만에서 일출 명소로 꼽는 순천시 별량면 화포다. 이곳부터 해룡면 와온까지를 흔히 순천만이라 부른다. 순천만은 항아리 모양의 여자만 남쪽에 위치한 내만의 내만이다.
순천만과 여자만의 명칭을 두고 설왕설래했다. 과거 향토지에서 ‘순천만’이라는 기록을 찾기 어려운 탓이다. 대신 <낙안읍지>에는 순천만 일대를 ‘여자만’이라 표기했다. 순천만의 규모는 여자만 전체 면적 318.17㎢의 10%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순천만이 여자만의 이름을 대신할 만큼 명성을 얻은 것은 순천만을 지키려는 시민사회의 노력과 국가정원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일관된 시책의 결과다. 오히려 여자도를 품고 여자만이라는 공식 이름의 주인을 주장하는 지자체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이제 여자만보다 순천만이라 해야 할 정도로 익숙한 지명이 되었다.
순천만과 함께 세인에 널리 알려진 곳이 와온이다. 순천만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일몰이 아름답다. 화포를 찾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와온을 찾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많다.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해변이다.
산 위로 뜨는 화포 일출 '명소'
화포는 조계산 기운을 받은 산자락이 봉화산을 거쳐 여자만으로 내려오다 멈춘 형국이다. 이렇게 바다로 튀어나온 지형을 ‘곶’이라 한다. 갯벌이 발달한 마을에서는 이런 곳이 썰물에도 배를 접안할 수 있는 장소다.
옛날에는 육지로 만입한 ‘구미’ 혹은 ‘금’에 배를 접안했지만, 지금은 곶을 포구로 이용한다. 파도와 바람을 이겨내는 자재가 개발되고, 방파제 축조 기술도 발달한 덕이다. 이런 포구를 ‘개’라 하기도 한다.
화포를 우리말로 풀면 ‘곶개’쯤 될 것이다. 곶은 꽃이 되고, 한자로 ‘화’로 바뀌었다. 개는 포구를 의미하는 ‘포’가 되어 ‘화포’가 된 것이다.
화포 서쪽으로 무풍리와 마산리가 있다. 마산리에 속하는 거차마을이 보성군 벌교읍 용두마을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쪽으로는 학산리와 우산리를 지나 순천만습지로 이어진다. 학산리는 짱뚱어 마을이 있다. 철이 되면 짱뚱어 잡는 체험은 물론 짱뚱어 음식도 맛볼 수 있다. 짱뚱어 마을 앞 폐염전을 습지로 복원했다.
화포 일출은 동해안처럼 바다로 뜨는 해가 아니다. 뭍에서 보는 해와 다를 바 없이 산 위로 떠오른다. 그럼에도 일출 명소가 된 것은 여자만에 비춘 붉은 햇살이 있어서다. 맞은편 와온에서 보는 노을도 매한가지다.
여건이 되면 화포마을 봉화산에 올라 일출을 보는 것도 좋다. 봉화산에서 와온마을까지 이어지는 산책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해안으로는 순천만에서 벌교 갈대밭까지 이어지는 남파랑길도 좋다.
일출을 보았다면,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해 우명마을과 짱뚱어마을을 지나 순천만으로 이동하길 권한다. 천천히 이동하면서 빈 논을 살피면 많은 오리나 기러기 그리고 순천만 겨울 진객인 두루미를 만날 수 있다.
오리류는 떼를 지어 있지만, 두루미는 가족 단위로 움직인다. 알곡을 찾는 어린 흑두루미는 머리와 목이 황갈색이다. 몸의 크기가 비슷해 겉으로 보면 구별이 어렵다.
30년 가꿔온 순천만 ‘시선 전환’
조심스럽게 갓길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열지 않은 채 기다리면 먹이활동을 하는 두루미를 볼 수 있다. 아침 해를 보고 집으로 오는 길에 30마리 정도를 만났다. 부부 흑두루미, 부부와 어린 개체 한 마리, 혹은 두 마리 가족단위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논을 오가며 알곡을 찾는다. 어린 두루미를 거느린 부부는 수시로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핀다.
흑두루미는 낮에 먹이를 찾아 순천만 외에 벌교, 여수, 고흥 등 여자만 인근 갯벌과 논으로 이동한다. 밤이 되면 육상동물이 접근하기 어려운 가장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잠을 잔다. 물이 잘 들지 않는 갯골이나 사람이 살지 않는 갯벌 안 무인도 등을 좋아한다. 최근 순천만에 많은 철새들이 찾는 이유다.
더욱이 순천만 복원과 철새 이동에 장애가 되는 전봇대를 제거하고, 벼농사를 짓고 나서 알곡을 남겨 놓는다. 오늘날의 순천만을 가꾸는 데 무려 30여 년이 걸린 셈이다.
겉치레만 하며 한두 해, 아니 4∼5년 만에 성과를 낼 수 없다. 사람도 그럴진대, 하물며 자연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세계자연유산이나 국가해양생태공원을 바라보는 행정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김준/ 전남대학교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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